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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기종기 Aug 27. 2023

잡초 뽑는 공무원

[PART 8]나는 왜 공직을 그만뒀을까?

 동장이 트럭을 몰고 간 곳은 ○○동 앞에 있는 한 군부대 담장 앞이었다.


 당시 그 군부대 담장 앞엔 인도가 아닌 폭 10미터정도의 짜투리 땅이 담장을 따라 주욱 이어져 있었는데, 그 앞은 해당 구역에 대한 관리 주체가 명확히 정해져 있지 않아 몇년 째 그냥 방치 되어 있는 상태였다.


 담장을 따라 길게 뻗어 있는 땅 위에는 제멋대로 자라난 잡초가 무성했고, 이름 모를 사람들이 몰래 가져다 버린 생활 쓰레기가 여기저기서 나뒹굴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미간이 찌푸려지는, 그런 풍경이었다.


 동장은 트럭에서 내려 주변을 주욱- 둘러보더니,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야, 여기다 통반장들 불러서 꽃 심을 거니깐 군부대에 시키던지 니가 직접 하든지 해서 다음주 금요일까지 잡초랑 쓰레기 싹 치워 놔."


 "네? 여기를요?"


 "어. 군부대에다가 공문 하나 만들어서 보내면 되잖아. 뭘 다시 물어? 쯧."


 "아 그래도 이건 좀..."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하는 동장의 말투는, 마치 내게 이면지 한 장 가져다 달라고 하는 듯 가벼웠다.


 그가 내뱉은 말 속에는 그 어떤 고민도, 미안함도, 부끄러움도 담겨 있지 않았다.


 재차 묻는다고 해서 정상적인 대화가 될 상황은 아니었기에, 나는 일단 알겠다고 하고 동장이 모는 트럭에 올라타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상식적으로 뜬금 없이 그 넓은 공터를 치워달라고 하면 군부대에서 네네- 하면서 순순히 내 말에 따라줄까?'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생각하니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파왔다.


 며칠 후, 내가 보낸 정비 요청 공문에 대한 군부대의 반응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군부대 담장 앞 공터의 소유주는 구청이고 따라서 정비 의무는 구청에게 있으며 따라서 자신들이 그곳을 정비해줄 의무는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들의 말엔 틀린 지점이 하나도 없었다. 자기네 땅도 아닌데 바로 옆에 있다는 이유로 그들이 왜 그곳을 정비해줘야 하는걸까.


 군부대가 정비 작업에 난색을 표한 이상, 동장의 의중대로 그곳을 깨끗이 치울 주체는 동사무소뿐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일단 관련이 있을 법한 구청의 모든 부서에 연락을 돌렸다. 도시경관과, 청소과, 환경과 등등 구청 조직도를 켜놓고 생각나는 대로 협조 요청 공문을 돌렸다.


 하지만 구청 각 부서들의 반응은 군부대가 보여줬던 반응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자신들은 해당 건에 대한 관련이 없으며, 정 그렇게 하고 싶으면 동사무소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갑자기 아무 이유없이 뜬금없는 지역에 갑작스러운 정비를 요청하는데 적극적으로 응대하는 공무원이 대한민국 전체에 몇 명이나 있으랴.


 군부대의 도움도, 구청의 도움도 못받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안타깝게도 결국 딱 하나,


 '내가 직접 잡초를 뽑는 것'뿐이었다.


 땡볕이 내리 쬐는 6월 한낮에 나는 미화원 네 분과 함께 삽과 호미를 들고 묵묵히 동장이 말한 군부대 앞 공터에 나가 잡초를 잘라내고, 뽑아내고, 또 캐냈다.


 땀이 비오듯 쏟아졌고, 시간이 갈수록 미화원분들의 볼멘 소리는 커져만 갔다.


 미화원분들 달래랴, 삽질 하랴, 중간중간 걸려오는 동장의 재촉 전화에 응대하랴, 지옥과도 같은 시간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모든 작업을 끝내고 사무실로 돌아온 시간은 오후 여섯 시 반이었다.


 이미 다른 직원들은 모두 퇴근한 후였고, 텅 빈 사무실엔 그 일을 시킨 동장을 포함해 그 누구도 남아 있질 않았다.


 순간 오랜 시간 참아왔던 분노가 가슴 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훅- 끼쳐 들어왔다.


 결국 그 주 금요일, 지난 2주동안 내가 고생고생 해서 깨끗이 만들어 놓은 군부대 앞에선 '○○동 환경 정화의 날'이라는 명목 하에 통반장들과 지역 주민들의 '꽃 심기' 행사가 펼쳐졌다.


 지난 며칠 간 나의 고생에 대해 아는지 모르는지, 잘 다듬어진 공터 위에서 통반장들과 꽃을 심는 동장의 표정은 마냥 즐거워 보이기만 할 뿐이었다.


 (PART 9에서 이어집니다!)


 * 배경 출처: pexels 무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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