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옹기종기 Aug 20. 2023

천사 같던 전임자가 내게 짜증을 냈다

[PART 7]나는 왜 공직을 그만뒀을까?

 결국 동사무소 내에는 민방위와 관련해 아는 사람이 전혀 없어 어쩔 수 없이 구청으로 발령난 전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가고 나서 전화를 받은 전임자의 목소리는 눈에 띄게 긴장 돼 있었다.


 나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비로소 긴장이 풀렸는지, 전임자는 내게 친근한 목소리로 안부를 물었다.


 "아 주사님이구나. 휴. 할 만해요? 정신 없죠?"


 "네 아직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방금도 직장 민방위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아 그 OOO씨요? 아참 내가 말해주고 온다는 걸 깜빡했네. 그분 훈련 받았는데 누락된 거 맞아요. 전산 들어가서 수동으로 참석 처리만 해주면 돼요."


 "아 그렇군요. 다행이네요. 막 짜증을 내시길래 얼마나 당황했는지... 감사합니다 주사님."


 전임자는 전화를 끊으면서, 자신도 새로운 부서에 발령 나 나와 같은 동병상련의 아픔을 겪고 있다며 내게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 전화하라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기댈 곳 하나 없던 차에 전임자의 그 말 한 마디는 내게 마치 극한의 상황에 하늘에서 내려온 한 가닥 동앗줄과도 같이 느껴졌다.


 그때부터 나는 모르는 일이 생기면 일단 전임자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보고, 너무 사소한 것이다 싶을 때만 옆 동의 동사무소에 전화를 해 양해를 구하고 처리 방법을 물어보는 식으로 업무를 하나하나 처리해 나갔다.


 동시에 서무나 팀장에게 업무를 물어보는 빈도는 점점 줄어갔다.


 어차피 내 고유 업무에 대해 물어봐도 그들은 전혀 몰랐을 뿐더러, 바쁜 와중에 내 질문이 이어질수록 가끔은 '노골적으로' 그들이 내게 짜증을 내는 것이 조금씩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무단투기 과태료 처리 방법에 대해 물어보기 위해 전임자에게 평소처럼 전화를 걸었다.


 신호 연결음이 채 울리기도 전에 재깍 전화를 받은 전임자는 전화 수신 멘트조차 하지 않고 바로 내게 용무를 물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은 심사가 뒤틀린 듯한 목소리였다.


 "아... 네 이번엔 어떤 건가요. 주사님?"


 "아 주사님 바쁘시죠?... 죄송해요. 과태료 매겨야 할 건이 하나 생겼는데, 중간에 막히는 부분이 있어서요."


 "하... 그거는 음... 주사님. 그거는 제가 써드린 인수인계서 보시고, 컴퓨터에 저장된 매뉴얼 보시고 처리하시면 되구요... 하아... 주사님 정말 죄송한데 이렇게 간단한 것까지 매번 저한테 전화해서 물어보시면 제가 업무를 할 수가 없어요... 이제 2주 정도 되셨으면 얼추 알아서 하셔야 할 것 같아요..."


 "아 주사님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귀찮게 해드렸네요. 예 이제 웬만하면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진짜 죄송합니다. 주사님."


 전임자는 당시 구청 내에서도 가장 업무량이 많고, 업무 난이도가 있는 주요 부서로 발령이 난 상태였다.


 당시에는 전임자의 저 말 한 마디가 참으로 야속하게 다가왔지만,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면 전임자가 내게 베풀어준 배려는 꽤나 대단한 수준의 배려였다.


 고작 '동사무소 청소' 업무를 하면 구청 핵심 부서로 발령이 난 전임자에게 매일 같이 사소한 것을 묻고 앉아 있는 꼴이라니. 지금 생각하면 나는 개념 없는 신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좋은 마음에서 내게 업무를 알려주던 전임자는 점점 업무를 물어보는 정도가 심해지는 것 같으니 참다참다 내게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한 것이었다.


 아무튼 그날 이후, 나는 전임자에게 더이상 전화로 업무를 물어볼 수 없었다.


 이제 모든 것을 내 스스로 해결해나가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제 발령 2주차다. 앞으로 2년은 더 이곳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정말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렇게 하루하루 맨땅에 헤딩하는 나날이 이어지던 중, 어느날 갑자기 동장이 나를 큰소리로 불렀다.


 "야! OOO! 차키 가지고 잠깐 따라 나와봐. 저기 주유소 옆에 군부대 알지? 거기 좀 가보자."


 그러더니 동장은 능숙하게 관용 트럭 운전석에 올라타면서 내게 빨리 오라는 손짓을 했다. 동장의 표정을 보니 뭔가 굉장히 신나는 일이 생긴 듯한 눈치였다.


 나도 모르게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이 훅- 내 마음 속으로 끼쳐 들어왔다.


 (PART 8에서 이어집니다!)


 * 배경 출처: Tvn 드라마 <미생>

매거진의 이전글 신규 공무원이 일 배우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