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나는 왜 공직에 들어왔을까...?
조금 지나서 쓰는 교행 일기
(PART 2에서 이어집니다!)
... 처음 시작이 문제였다. 시험 삼아 봤던 2016년 국가직 시험에서 비록 시간 내에 전과목을 다 풀진 못했지만 생전 배운적 없던 행정법을 제외한 나머지 4과목에서 모두 7~80점대의 점수를 받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점수였지만 그 당시의 나는 고작 그 점수를 받고도 근거없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정말이지 조금만 더하면 금방이라도 합격할 것만 같았다.
국가직 시험이 있던 4월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오면서 이런 근거없는 자신감과 함께 단단했던 내 결기는 스르륵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7시에서 시작했던 기상 시간이 8시..9시..12시로 점점 늦어졌고, 공부 스트레스를 푼다는 핑계로 폭식을 반복해 체중계에 찍힌 몸무게는 점차 고3 시절의 그것을 향해가고 있었다. 중간중간 기출문제를 풀면서 시간 내에 답을 못 찍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뭔가 단단히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느꼈지만, "에이 아깝게 틀렸네. 원래 아는 건데." "이런 문제가 또 나오겠어?" 라며, 시험이 다가올수록 공부는 하지 않고 쓸데없는 자기합리화만 반복했다. 그렇게 어영부영 두달이란 시간이 흘렀고 어느새 지방직, 서울시 두 개의 시험이 있는 6월이 되었다.
그 해 있었던 지방직과 서울시 시험에서,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던 나는 당연하게도 이미 결과가 정해져 있던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두 시험 모두 필기 합격선과는 30점 이상의 차이였다. 공무원 시험을 잘모르는 부모님은 아깝게 떨어졌다며 나를 위로하셨지만 실전 시험에서 드러난 액면 그대로의 점수를 받아든 나는 정말이지 어디라도 숨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어디라도 도망치고 싶었다. 그리고 그 때 처음으로 어쩌면 이 시험에 평생 합격하지 못할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갔다.
돌이켜보면 그 때는 합격을 해야한다는 생각보다는 대학 졸업도 했겠다 그냥 놀고 싶은 마음이 강했던 것 같다. 매일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었고 공부한다는 이유로 부모님께서는 용돈도 넉넉하게 챙겨주셨다. 연락 한 번이면 같이 피시방에 가서 게임하고 술 한잔할 친구들이 주변에 가득했다. 이십대 중반이란 나이는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리고 미숙한 나이다. 해야할 것은 안하고 하고 싶은 것만 해도 됐던 그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찬란한 그 시절을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흘려보내고만 있었다.
(PART 4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