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벚꽃은 3월의 늦은 중순부터 피어나기 시작하여 4월 초까지 절정을 이룸과 동시에 낙화하기 시작한다. 중학교에 갓 입학한 무렵의 이른 봄에 나의 감수성도 개화되었다. 학교를 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바삐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날, 봄과는 어울리지 않는 진한 가을의 멜로디가 내 귀에 들려왔다. 팝송이었다. 멜로디 외엔 제목도 가수도 알 수 없었지만 그 팝송을 가장 좋아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애써 찾으려 하지 않았다. 그저 ‘늦가을의 은행나무 숲 팝송’이라 멋대로 일컫고는 수년간을 흥얼거리기만 했다. 어쩌다 거리에서 듣게 되면 가던 길을 멈추고 한 곡을 다 듣고 나서야 발걸음을 떼었던 것이 기억이 난다.
러시아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하고 한참이 지나서야 ‘늦가을의 은행나무 숲 팝송’은 The Mamas & Papas가 부른 California dreamin’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화 ‘중경삼림’을 보고 나면 ost인 California dreamin’이 한층 더 진하게 들릴 것이라는 지인의 조언에 솔깃하여 영화도 보았다. 늦가을의 은행나무 숲 팝송 덕분에 왕가위 감독과 양조위라는 배우도 알게 되었으며 그들이 참여한 영화를 러시아 유학시절 동안 몇 번을 다시 돌려 보곤 했다. 할리우드의 전쟁 영화를 좋아하는 아내는 나 때문에 강제로 ‘중경삼림’과 ‘화영연화’를 관람했다. 나는 미묘한 감정성이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면서 어떠한 확실한 마무리 없이 진한 여운을 남기는 화양연화를 좋아했다. 반면 아내는 명쾌하면서도 밝은 느낌이 있는 중경삼림을 더 좋아했다.
“식사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정중하면서도 경쾌한 인사와 함께 종업원은 아내 앞으로는 자장면을, 내 앞으로는 게살볶음밥을 그리고 탕수육은 중앙에 두었다. 주문은 아내가 일괄적으로 하였는데 종업원은 어떻게 아내가 주문한 음식과 내가 주문한 음식을 정확하게 구분하여 서빙하였을까?
“종업원이 우리가 나눈 대화를 엿들었나?”
최대한 농담처럼 포장을 했지만 표정은 숨길 수 없었나 보다. 자장면을 비비던 아내는 면 사이로 젓가락을 쿡 찍으며 푸핫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 그거 농담한거 아니제? 종업원이 센스가 좋은 거지 뭘 그렇게까지 생각을 하노. 평소에 손님들을 많이 배려하시는 분이겠지”
정곡이 탁 찔리니 얼굴이 붉어지며 반사적으로 억지로 튀어나왔다.
“진짜 농담이었는데…… 당신한테는 앞으로 농담 안 할란다. 그리고 센스랑 배려는 또 무슨 상관이람?”
약간 날이 선 볼멘소리에도 아내는 아랑곳 않고 수저와 함께 물을 담은 컵을 다시금 가지런히 놓아주며 대답했다.
“크든 작든 상대방이 즐거움이나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신경 써주는 게 배려 아니겠나?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평소에 상대방을 잘 관찰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걸 잘 포착할 수 있다면 센스가 좋다고 할 수 있겠제?”
아내의 통찰에 감탄한 나는 아내에게 스스로의 비범한 관찰력과 센스를 보여줌으로 나도 배려를 할 줄 아는 사람임을 어필하여 호감을 사보리라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내 앞의 물컵에는 이미 물이 가득 차 있었다. 아쉬운 대로 탕수육과 찬거리를 아내 가까운 곳으로 슬며시 밀었다. 그러자 아내는 앞접시에 자장면을 한 젓가락 크게 덜어 나에게 밀었다. 예상치 못한 답례에 찰나의 순간 강렬한 고민에 시달려야 했다. 아내는 분명 나를 배려해서 자장면을 맛보라고 덜어준 것임이 틀림없을 게다. 이럴 땐 빨리 한입하고 자장면 맛에 대한 대략적인 개요를 알려주는 것이 아내의 식사를 즐겁게 해주는 것일까? 아니면 아내를 따라 앞접시에 볶음밥을 크게 덜어주는 것이 맞는 것일까? 아무래도 후자의 방법이 리스크가 적을 것만 같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식탁에는 더 이상 남은 빈 접시가 없었다. 사람도 생각이 과열되면 기계처럼 오작동을 일으키나 보다. 나의 행동은 다급하면서도 어설프게 이루어졌다. 아내가 덜어준 자장면을 후루룩 입에 한가득 털어놓고는 빈접시를 만들어 아내에게 덜어주고자 우물거리며 양파가 담긴 접시를 들어 단무지 접시로 우르르 쏟아부었다. 볶음밥을 만들어진 빈접시에 담으며 자장면의 맛에 대해 간략하게 알려주고자 급하게 입을 뗐다.
“우물우물…… 여기 자장면은 확실히…… 켁! 다른 보통의 자장…… 켈록켈록!”
“아이고! 여보! 갑자기 또 와이라노? 물부터 마셔라 말하지 말고!”
눈물이 맺혀 흐릿하게 보이는 아내 얼굴의 실루엣은 소스라치게 놀란 모습이었던 것 같다. 아슬아슬하게 지켜왔던 나름의 진지함과 근엄함을 잠시 잃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느 정도 진정되자 아내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손바닥으로 이마를 괴었다. 나는 재빨리 주위를 훑어본 후 아무도 아내 외엔 아무도 나의 해프닝을 알아채지 못했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요리사도 미식가도 아니지만 맛집 리뷰어로써 곧 태어날 아들의 분유값을 벌어보리라는 꿈을 품고 있던 나는 볶음밥을 조금 떠서 입에 넣고는 짐짓 신중한 채 지그시 눈을 감고 음식 씹는 리듬에 맞추어 이맛살과 눈썹을 올렸다 내렸다 해가며 나름 열심히 음식을 음미해 보았다. 아내는 황당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지만, 무슨 상관이랴? 나는 벌써 미식가가 되어 나만의 세상에서 유영 중이었던 것을……
우리가 주문한 자장면, 게살볶음밥 그리고 탕수육의 맛은 미세하게 기존의 중화요리와는 분명 다른 이색적인 맛이 있긴 했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보자면 여타 다른 가게의 중화요리 맛의 범위에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바삭함이 뛰어나다든지 겉은 바삭하나 속은 쫄깃하다든지 혹은 모 중화요리 주제의 만화에서처럼 입안에서 판다가 춤을 춘다든지 하는 특급 중화요리 장인의 그것은 아닌데 정의할 수 없는 미세한 이색의 맛이 자꾸만 여운처럼 입안에 맴돈다.
이제는 정말 고개를 이리저리 갸우뚱거리며 맛에 집중하는 찰나 영화 화양연화 포스터를 배경으로 디자인한 메뉴판이 다시금 눈에 들어왔다. 설마 여기 사장님이 지향하는 맛의 주제가 ‘여운’ 같은 것일까? 그래서 메뉴판도 맛에 따라 디자인한 걸까? 아내의 의견도 물어보고 싶은 강한 충동이 순간 강하게 일었지만 이제서야 온전히 식사하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는 잠시 억누르기로 했다. 허기에 장사 없다지만 포만감에도 장사 없다고 말하고 싶다. 칭춘의 다른 여러 메뉴 또한 공통된 요소 즉 ‘맛의 여운’을 남기는지 반드시 확인하고 싶었으나, 다음을 기약하며 아내의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식사는 맛있게 하셨나요?”
지극히 일상적인 질문이 었지만 나는 정성을 다해 답을 하려 했다.
“네, 음식이 다 여운이 남는데, 뭔가 특별히 맛이 있다는 건……”
“감사합니다. 덕분에 너무 맛있게 잘 먹었어요!”
아내는 계산서와 카드를 내밀며 다급하지만 차분하게 나의 말허리를 잘랐다. 종업원은 빙긋 웃으며 어 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가게 문을 열고나오며 나는 참아왔던 질문을 했다.
“여기 가게는 음식이 화양연화 맛이다 그렇제?”
질문에 두서가 없었음을 알아챈 후 아내가 되묻기 전에 재빨리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니까 내 말은 여기가 맛은 있긴 한데 특급 호텔 같은 정통중화요리의 그런 거는 아닌데…… 미묘하게 산뜻한 맛이랄까…… 여하튼 여운이 남는다는 말이지? 어쨌든 기름이 베이스가 되는 중화요리로 맑고 그윽한 맛을 내는 건 불가능이야. 안그렇나?”
아내는 대답 대신 한껏 봄의 따스함을 느끼며 걷고 있었다. 이럴 때면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다.
“여보 이 마을은 참 특이하다. 건물들이 각기 개성도 있는데 여기에는 작은 규모의 음식점들이 다양하게 참 많다. 사장님들도 다들 젊으신 분들인 것 같고…… 해운대 배달의 절반은 다 이 작은 동네에서 나오는 것 같네."
내 생각에 대한 답변을 듣고 말아야 한다는 강박 때문일까? 오산마을에 대한 아내의 분석은 반대쪽 귀로 모두 빠져나갔다. 재차 다시 물어보려고 하는 찰나 아내가 나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메뉴판부터 가게 인테리어 그리고 사장님이랑 종업원 차림새부터 특색이 확실하더라. 그리고 당신이 저 가게에서 뭔가 다름을 조금이라도 느꼈다면 칭춘 사장님은 성공하셨네. 어설프든 아니든 간에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가게 전반적인 분위기뿐 아니라 요리에도 일관되게 잘 나타내셨다는 거니까. 칭춘이 어떤 가게인지 느낌은 확실히 온다 아이가.”
아내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정통 중화요리를 맛보고 싶었다면 서울의 유명 셰프의 가게를 갔으면 되었을 일이다. 왜 나는 굳이 칭춘 사장님이 추구하는 칭춘의 중화요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중화요리란 어떠어떠해야 하는데 라며 마음속으로 굳이 훈수를 두어야만 했을까?
찰나의 자책이 끝나자 비로소 오산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과연 아내의 분석대로다. 좁은 골목에 조그마한 음식점과 카페 그리고 상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지만 이 마을에는 어느 가게 하나 같은 가게가 없다. 손님들은 많이 없어 보이는데도 이곳의 젊은 사장님들은 다들 분주하다. 마치 골목 안이 각자의 개성들로 넘실거리는 것만 같다.
“아까 했던 당신 소감대로 확실히 이 동네는 건물 외형부터 가게들까지 전부 개성이 확실하네. 사장님들도 젊으신 것 같고. 그런데 손님들도 많이 없는데 분주하네. 다들 어설프다는 이야기지. 마치 나처럼……”
아내는 나의 팔짱을 낀 채로 걷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나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나는 아내와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우두커니서서 나의 감상을 이어나갔다.
“개성도 있고 활력도 넘치지만 뭔가 어설프다. 근데 어설프니까 청춘 아니겠나? 어설퍼도 열정은 있고 그러니까 많이 헤매고……. 나도 아직은 청춘인 갑다. 근데 있다아이가, 나는 평생 청춘으로 살까 봐 겁난다.”
“영감보다는 청춘 남편이랑 사는 게 낫다. 청춘까지는 내가 안내했으니까 집으로 가는 길은 당신이 안내해라”
오산마을의 청춘을 찾아 헤메이던 초봄의 신혼 부부, 오산마을의 청춘들을 목격하고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