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 참, 제목 한 번 거창하고 궁상맞네.'라고 생각하시겠지만, 맞다. 내가 봐도 그렇다. 빚내서 미국 여행 다녀오는 게 무슨 대수라고! 아니 어찌 보면 욕먹어 마땅한 일이 아니겠는가! 누군가가 나에게 빚을 내서 미국 여행을 2주간 다녀오겠노라 말한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나와 가까운 가족, 친구, 연인이라면 과연 뭐라고 생각을 했을까? 한심하다? 미쳤다? 나이 먹고 뭔 궁상이냐? 대체 인생을 어찌 살려고 하냐? 답이 없다? 등등 온갖 욕설 섞인 첨언이 입에서 튀어나올 듯하다. 그런 짓을 내가 하고 있다.
사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 정확히 말하면 25년 1월 초의 나는 아직 여전히 대한민국이다. 24년 9월, 잘만 다니던 회사를 뛰쳐나왔다. 남은 생, 내가 하고 싶은 것들만 하기에도 바빠 죽겠는데 회사 일해서 뭐 하겠어하는 생각을 해대며 나는 퇴사했다. 그리고 내가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것,
나태해지자.
아무것도 안 할래!
철없는 선언과 함께 제일 먼저 한 것은 내 남은 통장의 돈과 내 한 달 소비 패턴이었다. 백수는 돈을 갉아먹는 존재다. 돈을 벌지 않는 것이 아니라, 돈이 마이너스가 되어가는 기간이다. 고로 난 나의 런웨이 기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부터 인지할 필요가 있었다. 얼추 3개월, 저~엉~말 아껴 쓴다면 6개월도 가능은 한 돈이었다. 그래, 3개월, 올 해가 떠나는 그 마지막 날까지는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것들, 미뤄왔던 것들 다 해보자.
나태함이 만연한 시간 속에서도 내가 바라고 있던 작은 꿈, 작가. 작가가 되기 위해, 소설가가 되기 위해, 내가 선택한 길은 등단이었다. 브런치에 그동안 써 온 글들을 탈고하고 공모전에 응모했다. 연말에 있을 신춘문예를 바라보며 연초부터 기획하고 써 온 소설과 시를 다듬고 다듬었다. 그러다 보니 한 달은 훌쩍 지나갔다. 뭐야, 나태하게 살겠다더니 벌써 열심히야?라고 속단하지 마시길. 글 쓰는 시간 외에는 너무도 충만한 나태의 시간을 고스란히 즐겼다는 사실.
어느덧 11월, 날이 추워졌다. 난 겨울만 되면 온몸에 힘이 빠지고 밖에 나가기를 거부하며 무언가를 우악스럽게 해보기는 커녕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된다. 한 달간의 꽤 부지런한 글 작업을 거친 터라 24년의 11월은 유난히 더욱 나태했다. 온수매트를 켜고 침대에 눕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느새 내 생활 패턴은 올빼미가 되어 남들과는 180도 다른 시간을 지내는 날이 많아졌다. 한 마디로 11월은, 충실히 나의 목표를 잘 지키던 한 달이었다. 정말 아무 근심 걱정 없이 말이다.
12월 중순 어느 날이 되려 던 지 약 2주 정도 후부터 슬슬 나태함에 위기가 찾아왔다. 불안했다. 그렇다. 나태함에도 돈이 필요했다. 매달 말일, 10월과 11월 두 번 동안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것을 목격하고나서부터 나는 불안해했다. 등단을 못하면 나는 내년의 삶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아니 등단을 하더라도 바라는 삶이 찾아올는지,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인지, 30대 중반에 모아둔 돈 하나도 없이 바라는 것은 많고 그 많고 많은 바람 중에 제일 먼저 나태함을 선택한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지.
참으로 모순적이게도 나는 불안에 떨수록 더욱 나태해졌다. 무기력해졌다는 게 더 맞는 말이겠다. 돈이라는 녀석이 메말라가는 것을 앎에도 그랬다. 직장을 다닐 때와 똑같은 소비 패턴을 유지했다. 술도 먹고, 배달 음식도 시키고, 추워서 택시도 타고, 커피도 마시고, 뭐 다 했다! 이 방탕함의 이유를 굳이 찾는다면, 이미 고착화된 내 소비 패턴을 바꾸기에는 난 유혹에 약한 인간이었고, 웃기게도 또다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여러분이 보기에는 근거가 없어 보이기도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나태했으며, 그 보상으로 불안해해야만 했다. 마치 앞으로 마주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장막의 그늘에서 더위를 피해 여유를 즐기는 한량 같다고나 할까.
반전스러운 일은 24년의 12월이 반쯤 흘러가던 때부터였다. 비로소 나는 조금씩 움직였다. 신춘문예와 브런치에는 당당히 탈락했지만 하루 잠깐 기운을 잃어하고 내가 쓴 글들을 조심스럽게 세상 밖으로 꺼내보기 시작했다. 그동안 머릿속으로만 생각해 두던 유튜브를 나름 열심히 시작했다. 여전히 더 부지런해지길 바라는 마음과 나태해지고 싶은 마음은 충돌했고 결국엔 나태함이 좀 더 우세한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나름의 성과를 기뻐하며 조금씩 해내고 있었다. 내가 선언한 3개월의 시간, 나태의 막바지에 다다르자 나는 조금씩 몸에 열을 내며 겨울을 저항하고 있었다.
참 우습게도 나태함을 불안해하는 것도, 나의 열기를 끓게 한 것도 모두가 돈이었다. 나라는 놈은 내가 제일 잘 아는데, 압박이 필요하다. 또한 압박에 약하기도 하다. 그래서 압박에 못 이겨해야 할 것들을 찾고, 그것들을 하다 보면 또 기뻐서 열심히 한다. 그러다가 압박이 심히 밀려올 때면 너무 부대끼는 나머지 못 이기고 손 놓아 버기도 한다. 압박은 나에게 모순 덩어리였고, 삶을 알아가는데 필요한 조건이기도 했다.
돈이 나에게 이런 압박을 줄 줄은 대학교 1학년 때 이후로는 처음인 듯하다. 내 인생의 재산의 크기가 시기에 따라 크게 요동치더라도 돈이 나에게 그리 큰 압박은 아니었는데, 당황스럽다. 돈은 있다가도 없다는 것을 내 삶이 일러주고 주변에서 배워왔던 30여 년이 허망하기까지도 하다. 그러나 희망적이었다. 여전히 나는 압박에 강하고 압박에 힘들어하다가도 금세 다시 열기를 되찾을 수 인간이란 것을 알았으니. 하나 그 존재가 돈이라는 것은 매우 께름칙하고 불편했다. 돈에 억 매어 살지 않겠노라 다짐을 했던 것도 어찌 보면 나약함에서 기원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나태와 불안을 반복하던 내 시간은 12월 말 즘부터 크게 요동친다. 돈이 나의 압박이라는 자괴감, 친한 형의 용기 섞인 쓴소리. 그리고 친구가 쏘아 올린 총알. 이런저런 일들이 몰려오면서 내 입장은 확실해졌다. 나는 압박을 즐길 수밖에 없는, 그리고 그 압박으로 힘들어하다가 다시 또 일어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 압박이 돈이 되는 것은 거부하겠다. 어쨌든 내 삶의 전반이 압박이라면 탈압박 또한 나의 몫이기에 돈으로 구차해지진 말자고. 돈 대신 다른 무언가로 압박을 느끼고 다시 일어서보자고.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내 남은 돈을 소진시키지 않으리. 내가 돈 말고도 충분히 나를 자극할 수 있는 무언가를 경험하리. 그래, 돈을 경험으로 치환하자. 경험이라. 어떤 경험이 좋을까? 적당히 두려우면서도 생동력을 얻을 수 있는 경험.
그래, 여행을 가자.
삶을 살아가는데 큰 의미는 없다. 그 삶에 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달려있다. 어라? 근데 미국 여행은 돈이 꽤나 드는구나.. 그래, 빚을 내서라도 다녀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