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2주 간 여행을 다녀왔다. 내 주변 환경을 환기시키고 다시금 활력을 찾기 위한 좋은 트리거가 될 것이란 기대감으로 다녀온 여행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 2주 동안 미 대륙을 횡단하는 여행. 내가 그동안 지내왔던 환경을 바꾸니 새로운 에너지가 넘쳐나는 듯했다.
샌프란시스코의 자랑 금문교, 차로 횡단하는 동안 끊이질 않았던 미 중서부 특유의 황폐미, 그리고 카지노와 각종 공연이 눈길을 사로잡는 라스베이거스까지 새로운 자극이 매일마다 넘쳐나다 보니 2주도 너무나 짧았던 그런 시간이랄까.
친구는 운전을 못했기에 나 혼자 2주간 독박 운전을 해야 했다. 하루에 적어도 2시간 많게는 6시간도 운전한 듯하다. 다행히 미서부 대자연의 경이로움이 내 눈을 즐겁게 해 준 덕에 그리 힘들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열흘이 지나고 나니 끝없이 이어지는 직선 도로가 지겨워지고 있었다. 몇 시간 동안 달리다가 겨우 마주친 반대편에서 오는 차량이 반가울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눈은 즐거웠고 기분은 새로웠다. 지루함은 간헐적이었을 뿐.
이글거리는 아지랑이가 지평선 인근에서 풍덩거리는 모습조차도 신기했다고 해야 할까. 영화에서만 보던 그 길이 내 눈앞에 펼쳐져있고, 가도 가도 끝나지 않을 것 만 같았던 지루한 일직선 도로가 어느새 끝나고 나에게 어느새 또 다른 거대한 풍경을 선사한다. 단조로우나 지루할 틈은 없었다. 오히려 내 머릿속은 이러했다. 복잡하고 생각하기도 싫은 고민과 생각 그리고 걱정거리들은 모래 바람과 함께 하늘 위로 둥둥 떠나니다가 산맥 너머로 사라라 지기를 반복했다.
어느새 약속한 2주가 지났다. 여행의 아쉬움을 느낄 새도 없이. 나는 돌아가고 싶어졌다. 이제 내가 즐길 여흥이 없기에 그런 것은 아니다. 미국에 실망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나를 충분히 환기시켰기 때문이었다.
집을 환기시키는 목적은 집 안에 쌓인 먼지와 냄새 그리고 온도를 조절하기 위함이다. 창문을 열면 우리가 집에 장만해 놓은 것들은 그대로. 창문 밖으로 환기시키는 것은 먼지와 꿉꿉한 공기다. 그리고 밖에서는 새로운 공기가 온기가 집 안으로 들어온다. 환기는 환경을 바꾼다기보다 분위기를 바꾸고 상황을 바꾸는 데 있다. 내가 만일 미 서중부의 어느 한 농부라고 가정해 보자. 과연 나는 내가 여행을 하며 지나온 그 황무지가 반가울까? 아마도 자동차 액셀을 최대로 밟고 속도를 내어 얼른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할 것이다.
우리는 힘들고 지칠 때, 혹은 새로운 변화를 원할 때, 제일 먼저 주변 환경을 환기를 시킨다. 직장을 바꾸고, 여행을 가고, 애인이 생기고, 어떤 방법으로든 일상에 낀 먼지와 냄새를 흘려보낸다. 새로운 환경에 자기 자신을 간헐적으로 노출시킴으로써 활력을 보충한다. 하지만 그 순간뿐일지 모른다. 여행은 생각보다 고된 행위이다. 일정을 짜고 짐을 꾸리고, 낯선 곳에서는 항상 일정 수준의 긴장감이 함께 한다. 돌아와서는 즐겁게 논 나머지 그 자리를 뒤덮은 헛헛함에 잠자리를 뒤적거리면서 현생의 벨런스를 잃어버린다. 그리고 일상을 정상화시키는데 간신히 보충한 활력을 낭비해 버린다. 그런 채로 다시 현실의 챗바퀴에 몸을 맡기고 만다.
우리가 환기시켜야 할 것은 우리 자신임을 우리는 쉽게 망각한다. 주변의 풍경을 잠시동안 바꾼다고, 새로운 문화를 잠시동안 즐긴다 해도, 새로운 사람들과 잠시동안 대화를 나눈다고 할지라도 결국 우리가 돌아와야 할 곳은 일상이다. 그곳, 그들, 그것은 우리가 잠시간만 품다가 돌려보내줘야 할 그들의 것이다.
내가 환기해야 할 것은 장소, 할 것, 탈 것들 따위가 아니다. 내 안에 소리 없이 쌓여간 분위기와 상황이다. 여행은 내 삶을 환기시키기 위한 수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괜히 집착하다가 다시금 돌아와야 할 일상을 망각하게 되면, 오히려 집에 돌아와 보니 쌓여있는 먼지와 매쾌한 공기, 그리고 회사에 쌓여있는 할 일들에 더 큰 한숨만 내뱉게 될 것이다.
생동감을 회복하고 삶의 재충전을 위해서는 나를 환기시켜야 한다. 분위기를 바꾸고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자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그것이 꼭 여행이 될 필요가 없다. 돈을 많이 들일 필요도 없거니와 여행이더라도 굳이 해외일 필요도 없다. 우리를 가슴 뛰게 만드는 무엇이든지 하면 된다. 혼자서 하기 어렵다면 함께, 융통할 돈이 없다면 때로는 과감하게 용기 내어 돈을 꾸어봐도 된다. 돈이 우선이 아니라면 무엇을 어떻게 절약해서 할지를 생각해 보자. 이 모든 것들이 가슴 뛰기 시작한다면, 그 안에서 약간의 불안과 걱정이 맴돈다면 그것은 너무도 감사한 일이다.
드디어 자신을 환기시킬 수 있는 좋은 조건을 만난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