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는 결핍이다
비워진 곳에서 쓰인다
시 안의 글자, 띄어쓰기, 쉼표 하나하나에는
무수히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다
너무 많아서 결국 비워진 상태로
그 민낯을 내게 비춘다
나는 그 결핍을 사랑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리라
해석하지 않고, 그 여백을
사랑하리라
단 몇 글자를 위하여 치열한 삶을
견디어 낸 그대의 시를
나는 비어있는 눈으로 바라보리라
천천히 그대를 읊조리리라
'김주환 교수의 내면소통' 5장에서는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법에 대해 설명한다. 바로 '능동적 추론'이다. 내가 이해한 바는 다음과 같다. 오감을 통해 감각이 들어온다, 감각들을 확률에 따라 통합되며 '지각 편린'이 되고, 이는 기존에 우리가 갖고 있던 사전지식, 내적모델과 맞물리며 하나의 스토리가 된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아닌 우리 뇌가 만들어낸 하나의 스토리를 살아간다. 다시 말해, 우리 눈이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뇌가 보는 것이기도 하다. 부정적인 내적모델을 가졌다면, 부정적인 스토리를 만들어 낼 것이고 당연히 불행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이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마음근력 키우기이다. 이는 감각, 오감에 집중함으로써 스토리가 덧입혀지기 전 실재를 경험하는 것을 도와준다. 구체적 방법론으로는 명상이 있다. 수십 년 간 체화된 내적 모델을 바꾸는 것은 어렵지만 우리 힘으로 가능한 영역이다.
여러분은 타인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나요? 그 사람의 말과 표정, 눈빛,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를 판단하고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으신지요. 어쩌면 당연한 이치일지 모르겠습니다. 유기적인 우리가 맺는 관계 역시 유기적일 수밖에 없지 않나 싶어요. 조금 좋았다가 많이 싫었다가,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지 이해해보려고 했다가 더 크게 실망도 합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기도 해요. 아시다시피 저는 타고난 스토리텔러입니다. (저의 글 '배웁시다 사랑도 - 엔트로피 법칙을 따르는 사랑처럼'을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본능이기도 하고, 뇌과학의 법칙이기도 한 스토리텔링은 우리 마음대로 멈출 수 없습니다. 무의식 중에 계속 일어나는 일이니까요. 직장 동료, 가족, 사랑하는 연인에 이르기까지, 험한 이 세상 함께 발맞춰 간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알고 보니 각자의 이야기에 빠져 있었다니. 단 한 번도 같은 세계를 공유한 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니. 슬프네요. 우리가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제가 추천하는 방법이 있는데 들어보실래요?(읽어보실래요?)
판단과 서열화는 우리의 본능입니다. 무의식적이지요. 타인의 말, 사소한 어투, 미세히 바뀌는 표정까지 우리는 이것들을 재료로 우리는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나한테 왜 저러지? 쟤는 진짜 이해할 수가 없다, 쯧쯧.' 이렇게요. 본능을 없애라는 말은 못 하겠습니다. 다만 이 사실을 기억해 주세요. 내가 항상 스토리를 만들어내듯 그이도 어떤 스토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요. 극작가가 아닌 관람객이 되어 상대 마음에서 상영 중인 스토리로 잠시 시선을 옮겨보는 거예요. 그 사람이 아니라면, 내가 엄청난 애정과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알 수 없는 그이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이지요. 어쩌면 우리는 감춰진 명작을 알게 될 수도 있습니다. 티켓은 이 세 마디면 됩니다. "왜 그래요? 어떤 사연이 있나요? 그랬군요." 글을 읽고 난 후 첫 대화에서 판단 없이 딱 이 세 마디만 실천해 보세요.
인간관계도 사랑도 별 게 없음을 우린 다 압니다. 내가 평생 써 온 스토리이니까요. 하지만 다른 작품에 눈을 돌린다면 어떨까요? 그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오늘도 행복한 스토리텔러, 관객이 되는 여러분이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