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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기쁨 Jul 25. 2024

누구에게나 시작은 막막하다니까…

내 생애 첫 전시회 준비



"60이 되기 전에 전시회 열기"


2022년 글 쓰기를 처음 시작하면서 작성한 나의 버킷 리스트 10가지 중의 하나다. 그중에는 "브런치 작가 되기"도 있었는데 2022년이 끝나갈 즈음에 이 목표를 이루게 되면서 남은 목표들 역시 언젠가는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더욱 커졌다. 꿈꾸던 것을 하나하나 이루어 간다는 것은 특히 중년기에 접어든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삶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것같은 커다란 의미가 있는 일이다.


비전공자로서 취미로 그림을 그리면서 전시회까지 꿈꾼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일 테지만 나는 넉넉히 60살 까지라는 목표를 가지고 용기를 내어 "전시회 열기"를 나의 버킷 리스트에 추가했었다. 그런데 그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나에게 찾아왔고 믿기지 않지만 올 가을, 정확하게는 9월에 나의 첫 전시회를 열게 되었다.


나는 말했듯이 그림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고, 집안 형편이 넉넉했었던 중학교 시절까지는 당연히 미대를 가고 프랑스 파리로 유학도 가면서 평생을 그림을 그리며 사는 것 외엔 다른 꿈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파산으로 화가의 꿈은 좌절되고 말았고 그 이후로 제대로 된 그림교육을 받지 못한 채 그저 느껴지는 대로, 손 가는 대로, 시간이 날 때.. 혼자 끄적이며 지금까지 왔다. 나의 그림을 보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전공을 하지 못했다는 깊은 상실감은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혀 왔고 그래서 내 그림을 많은 이들에게 공개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그런 내 현실을 인정하고 나와 나의 그림을 스스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고 조금씩 내가 그린 그림을 사람들 앞에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30년 동안 선교단체 안에서 사역하면서 대학생들을 제자화하는 사역, 사역자들을 훈련하는 사역등을 하고 있으며 지금도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일들은 그림과는 전혀 무관한 일들이라 나의 재능을 펼칠 기회들이 많지 않지만 그래도 감사한 것은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하다 보면 감동이 있을 때가 많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은 욕구들이 일어날 때가 있다. 그때마다 패드를 열어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그림을 그리면 그릴수록 그림과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를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언젠가부터 내 그림으로 엽서를 만들고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조금씩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엽서를 받아 든 사람들의 기뻐하는 모습, 그림과 메시지에 감동을 받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 그림이 어디선가 쓸모 있게 제 역할을 할 수 있음에 감사했고 그것으로 족하다 여겼었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행사에서 만났던 한 선교사님 부부에게도 여느 때와 같이 인사를 나누고 내 엽서를 드렸는데, 엽서를 하나하나 보시던 선교사님이 뜬금없이 전시회를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하셨다. 서울의 한 교회에 갤러리 카페가 있는데, 영감 있는 크리스천 작가들의 그림을 전시할 기회가 열려있는 곳이며 원한다면 직접 연결해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어안이 벙벙했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너무나 비현실적인 일처럼 느껴졌다. 행사가 진행되는 날 동안 기도도 해보고, 남편과 의논도 해 보고 결국은 뭐든 한번 해보는 거지 하는 마음으로 선교사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갤러리와의 논의 끝에 2024년 9월 한 달 동안 나의 작품으로 전시회를 갖기로 일정을 잡았다. 1년이라는 기간이 있으니 급할 것도 없고 그동안 그려 놓은 그림들도 넉넉하고 천천히 새로운 작품을 그려가면 충분히 준비가 가능할 것 같았다.


이제 전시회까지 채 두 달이 남지 않았다. 준비를 하면할 수록 내가 전시회를 하겠다고 한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이었는지 여실히 깨닫게 된다. 이미 있는 그림들 중에서 몇 점 선별하고 적당히 확대해서 액자 만들고 이리저리 보기 좋게 배치하면 되는 거 아닌가 했던 생각이 참 안일하기 짝이 없었다. 전시회를 위해서는 치밀하게 준비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내 그림은 아이패드로 그리는 디지털 드로잉이라 실물로 옮겨 액자화하는 과정에서 아주 기술적이고도 물리적인 섬세한 작업의 도움이 필요한 것인데 그림을 그릴 줄만 알았지 그런 지식이 없어서 당황스러운 순간들을 여러 번 직면해야 했다. 벽에 가로막히면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이리저리 동분서주해 가며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내가 참으로 무모했다는 반성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몰랐으니 시작할 수 있었던 것 아니겠느냐 스스로를 응원하면서 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물론 덕분에 새로운 것을 많이 배우고 있다. 전시에 대해, 작가들의 세계에 대해 눈을 뜨고 배워가면서 더욱 지경이 넓어지는 것도 있고 동시에 좀 더 제대로 그림을 배울 수 있었다면.. 아니 최소한 더 부지런히 그림을 그렸었더라면 하는 후회, 그리고 타인과 비교하며 쪼그라드는 마음 등.. 하루에도 요동치는 수만 가지 감정을 대면하기도 한다. 전시회 준비를 하면서 전시 그 자체만이 아니라 가려져있던 나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가는 것 같은 지금 이 시간이 나는 참 좋다.


언제나 느끼는 것처럼 무엇이든 처음 시작은 어렵지만 용기를 가지고 계속 시도해 가다보면 그 길 끝에서 또 다른 새로운 기회의 문들과 만나게 된다. 지금 어설프게 시작하는 이 전시회가 나를 또 어디로 인도해갈지 모르기 때문에 어린 아이처럼 내 딛는 이 한 발짝이 다음 걸음을 위한 용기 있는 시작이 되었으면 좋겠다.



<강원국의 글쓰기> 제 1장


#비전공자전시회#전시회#버킷리스트#무모함#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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