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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기쁨 Sep 20. 2023

"이만하면 잘 컸다"

아이들이 " 잘 컸다"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사람들을 만나면 종종 자녀들의 안부를 묻는다. 특히 아이들이 성인 되었을 경우에는 더욱 관심을 가지고 물어본다.


“ 아이들은 뭐해요?”


이 질문은 틀림없이 “당신의 자녀는 어떤 대학을 나와서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나요?”라는 내용의 질문이다.



 나 역시 이런 질문을 받으면 아이들의 출신학교나, 현재의 직업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답을 들은 후의 반응은 내용에 따라 다르다. 아이들이 비교적 빛나는 성과를 보이지 않을 경우 “아, 그렇구나~” 와 같은 반응이지만, 부모가 자랑스럽게 내놓을 만한 성과를 이룬 경우에는 “와~, 잘 컸네요.”라는 반응을 한다.


우리의 일반적인 대화가 거의 이렇다 보니, 너나없이 아이들을 ‘잘 키웠다’는 피드백을 기대하면서 좋은 대학을 보내고, 좋은 직장을 갖게 하기 위해 , 아이들을  밤낮없이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공부에 집중하게 하는 것이 이 시대의 현상이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나에게도 이런 질문 앞에서 아주 자랑스럽게 “우리 아이들은 xx 대학을 나왔고, xx에서 일해요.”라고 말하고 싶은 욕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마 그 질문에 당당하게 대답해 주고 싶은 마음 때문에 일찍이 홈스쿨을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나의 기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 아이들은 자라가면서 점점 그런 유의 아이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결과는 너무나도 평범한 아이들로 자랐다. 지방대학을 나오고, 지방의 작은 회사에서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 된 것이다.


그럼 우리 아이들은 잘 못 큰 것일까? 나는 아이들에 대해 무엇이라 소개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한 번씩 나에게 질문을 해 본다. “아이들이 잘 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그리고 이 질문을 품고 우리 아이들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았다.


 

 우리 아이들은 감사하게도 건강한 한 사람으로 잘 자라주었다. 사람들을 사랑할 줄 알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때 감사할 줄도 안다. 약자를 향한 배려심도 있고, 사람들을 향해 친절한 말을 건넬 줄도 알고, 무엇이 나와 공동체를 위한 좋은 선택인지를 잘 안다. 인생을 살아가다가 힘든 순간이나 화가 나고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순간을 만나게 될 때 의기소침해지기도 하지만 생각하고 마음을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다시 일어날 줄도 안다. 그리고 성인이 된 이후로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 가는 용기를 배웠고, 아직 성취를 향해 달려가게 하는 꿈이 있기 때문에 하루하루 열심히 자기에게 주어진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열거하고 보니, 이 모든 것은 우리 안에 사람이라면 당연히 갖추어져야 할 기본 중의 기본과 같은 것들이다. 너무나 당연히 기본이라 여겨지기 때문인지, 이런 요소들은  우리의 교육 과정에서 자주 소홀하게 다루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가 때로는 어둡고, 삭막하고, 안전하지 않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사람들이 당연히 갖추고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이 기본의 부재 때문임을 깨닫게 될 때가 아주 많은 것이 사실이다.



 아이들과 함께 홈스쿨을 하면서 나는 정말 무수히 많이 이 질문을 했던 것 같다.    

 

 “교육이란 무엇일까? 아이들에게 정말로 가르쳐야 할 것은 무엇이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또 겪으면서 나에게 주어진 결론은 

“교육의 목적은 상식적인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었다. 상식적인 사람.. 다른 말로는 정상적인 사람이다. 특출 난 것도 얼마든지 좋지만, 그러지 않다 할지라도,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상식적인 삶을 살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살아갈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도  함께 일하거나 어울릴 수 있고, 나아가 타인과 공동체를 위해서 봉사할 수 있는 안전한 사람으로 존재하도록 한 사람을 성장시켰다면 그 교육은 성공한 것이라고 믿는다.



     2016년 강릉 오죽헌에서 찍은 율곡 이이의 글, 교육의 진정한 목적에 대한 통찰을 주는 글이다.                                         



 아이들을 일렬로 줄을 세워서 내 아이가 몇 번째인지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한 세상에서는

자신의 역할을 성실하게 잘 담당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수많은 ‘상식적인 사람으로 잘 큰’ 아이들의 귀함이 가려져있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부모들의 일상에서의 작은 헌신은 슬프게도 결코 주목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 ‘상식적인 사람들’이 오늘날과 같은 경쟁사회의 피곤함을 치유하고 아직도 이 세상이 인간미 넘치는 세상이 되도록 한줄기 빛을 선사하는 존재들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누구나가 자신만의 아름다운 존재의 목적이 있고 잠재력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교육은 그것을 볼 수 있게 해 주고, 누리게 해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상위 1%만이 살아남는 수직적인 줄에서 벗어나 모든 아이들이 자신의 존재의 빛을 마음껏 드러내며 함께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수평적인 관계 안으로 인도하는 교육적 성과들이 더 많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래서 나는 친구나 지인들을 만나 그들의 아이들이 궁금할 때, 이제는 다르게 질문을 하려고 한다.     


 “댁의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이에요?”     


“뭐 해요?”라고 물을 때의 대답과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으면 답을 할 수 없는 질문이어서, 상대방이 때로는 당황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아이들에 대해 미처 해보지 않았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게 되는 유익한 질문이 될 때도 많다.


나도 이렇게 나에게 질문을 해보기 시작했을 때, 처음에는 생각보다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이 질문은 우리 아이들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내가 그다지 깊이 생각하지도 감탄하지도 않고 있다는 사실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이 질문을 받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엔 우리가 늘 하던 것처럼  대답한다. “뭐 해요?”에 대한 대답을 그저 익숙한 대로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 그렇군요, 그런데 그런 거 말고 어떤 아이예요?” 하고 다시 한번 물으면, 조금씩 아이들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열리게 된다.


 단순히 질문 하나를 바꿨을 뿐인데, 뭔가 기대한 만큼 잘 따라주지 않아서 실망스럽던 아이를 사랑스러움으로 다시 품게 되고, 아이 안에 있는 잠재력을 알아차리고, 다시 인내로 기다릴 힘을 얻게 된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다.

그들의 진지한 대답을 다 들은 후에 나는 이렇게 대답해 준다. "와, 잘 컸네요~"



 나는 우리의 홈스쿨의 여정이 이처럼 아이들 저마다의 특별하고 독특한 존재의 가치에 눈을 뜨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부모인 나에게 더욱 의미 있는 여정이었다. 부모인 내가 교육의 진정한 목적과 씨름하면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찾고자 하지 않았다면, 우리 아이들이 자기 스스로를 기뻐하고, 남들과 비교할 필요 없는 상식적이고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해 가는 일에 나는 엄청난 장애물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비록 그러기까지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말이다.


아슬아슬한 많은 순간들 속에서 오히려 한없이 부족한 엄마를 기다려주며 그 시간을 잘 지나온 우리 아이들이 너무나도 고맙고 그래서 진심으로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이만하면 잘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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