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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인도네시아 May 29. 2024

부먹 찍먹 만큼이나 국민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닭죽

섞을래 말래?

1. 죽은 아플 때만 먹는 거다. 죽을 먹는 이유.


우리 집은 밥을 참 잘 먹었다. 삼 남매를 지극정성으로 해먹이신 전라도 손맛을 가진 어머니 때문이기도 하고, 앉은자리에서 달걀 한 판을 다 먹을 수 있는 아빠의 식성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밥 먹는 거 하나는 걱정 없이 먹었었다. 그렇다 보니 아프기라도 한 날에는 치킨을 시켜주셨다.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난다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죽은 죽기 전에 먹어서 죽'이라고 하셨다. 죽을 싫어하셔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도 있지만 아무튼 우리 집은 아프면 고기를 먹었지 죽은 안 먹었다.

그러다 소화기관이 약한 남편을 만났다. 건강하지 않은 건 아닌데, 스트레스받으면 위염으로 바로 올라오는 걸 보면 소화기관이 참 약하다. 그렇다 보니 아프면 잘 먹여야 한다는 부모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했다가 오히려 맘 상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프니까 정성스레 밥을 차려놓으면 '미음'을 달라는 남편에게 오히려 상처받기도 했었다. 아무 맛도 안나는 미음을 좋아하는 남편, 처음엔 너무 이해가 안 됐었다. 그런데 남편은 아플 땐 미음을 가장 좋아하고 건강할 땐 누룽지를 그렇게도 좋아한다. 소화하기도 좋고, 부담도 안되고... 좋은가보다.


2. 인도네시아의 죽


인도네시아에 와서 놀란 건 '죽'이 있다는 거였다. 물론 대부분의 나라들이 각자 나라의 주 곡식을 물에 불려 먹는 '죽'이 있지만, 한국과 이렇게나 비슷한 죽을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인도네시아인들은 죽을 참 좋아한다. 길거리에서 한 그릇씩 먹기도 하고 죽 전문점이 있어서 팔기도 한다. 흰쌀닭죽(bubur ayam)도 있고, 팥죽(bubur merah) 같은 녹두죽(bubur hijau/burjo)도 있다. 죽을 'bubur' 부 부르라고 부르는데 나는 왠지 그 말이 참 귀엽다. 아무튼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죽을 참 좋아한다. 녹두죽 같은 경우는 시원하게 먹기도 하고 따뜻하게 먹기도 하면서 간식처럼 먹기도 하고 혹은 건강식으로 먹기도 한다.


죽을 별로 안 좋아하는 나는 죽집에 가볼 일이 별로 없었다. 호텔에도 가끔 죽이 있는데, 죽을 안 좋아하는 사람이 그 많은 음식들을 놔두고 죽을 먹을 리 없다. 그러다 남편이 아픈 바람에 죽집에 가보기로 했다. 아침부터 사람들이 꽉꽉 차있는 걸 보니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아침으로 닭죽을 먹는 것 같다. 아플 때만 먹는 거라고 굳게 믿었던 나였지만, 닭죽을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들 속에 있으니 내가 왠지 잘못된 생각을 살아가고 있었나 싶다.


3. 섞을래? 말래?


닭죽을 시키니 이렇게 각종 고명을 올려준다. 생각보다 많은 종류의 고명들이다. 일단 비주얼은 합격이다. 잘게 찢어놓은 닭고기와 인도네시아의 자랑인 양파튀김, 고소하게 튀겨진 이 올라가 있고, 스페셜 메뉴에는 달걀노른자닭 내장(간)이 들어 있다. 그리고 옆에는 각종 소스들이 있어서 함께 곁들일 수 있었다. 특히나 매운 삼발소스가 있어서 매운맛까지 낼 수 있으니 완벽했다. 모든 종류의 소스들을 다 넣어 섞어 먹으니 내가 알던 죽과는 다른 하나의 특별한 요리를 먹는 느낌이 든다. 맛있다.

반면에 남편을 보아하니 고명들도 섞지 않고, 소스들도 넣지 않은 채 죽을 떠먹고 있다. 아이고... 각자의 입맛에 맞게 먹는 거긴 하지만... 정말 그냥 먹다니.. 남편에게 소스들을 권해줬는데 전혀 원하지 않는다.

그렇게 인도네시아 친구들에게 우리가 죽을 먹는 모습을 보여줬더니 친구들이 깔깔깔깔 웃는다. 이것이 인도네시아의 최대 쟁점이라는 것이다. 죽을 섞어먹을 것인가, 섞지 말 것인가! 한국에서 탕수육을 찍먹으로 할 것인가 부먹으로 할 것인가를 논하는 것처럼 중요한 문제라고 한다. 하하^^ 우리 부부에게서 그 모습이 정확하게 보였나 보다. 죽을 섞어먹으면 조금은... 보기에 좋지 않아 지고 섞지 않으면 하나의 맛이 아닌 게 되니,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 갑론을박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절대 싸우지 말란다. 이 문제로 싸우기 시작하면 원수가 된다고 ㅋㅋ 생각지도 못한 곳에 쟁점이 있었다.


재밌다. 이 단순한 죽 하나에 수많은 이야기들과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니. 하하^^ 뭐 이래 됐든 저래됐든 고소하고 매콤하고 짭짤하고 부드러운 부부르를 맛있게 먹었다. 죽을 어떻게 먹을지 얘기하다 원수가 되기 전에 남편에게 죽이나 한 그릇 더 사줘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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