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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진수 변호사 Jul 15. 2022

너와 나의 '뜨거운 역사'를 위하여

축구라는 마음자리



코로나19 유행으로 K리그 2020시즌은 무관중 경기로 진행되고 있다. 관중이 많지도 않았던 K리그지만, 관중이 없는 요즘 경기를 보고 있노라면 왠지 맥이 빠진다. 구단들은 관중의 빈자리를 여러 방식으로 채웠는데, 관중석에 ‘에인절 깃발’을 꽂기도 하고, 녹음된 팬들의 응원 소리를 틀며, 웹캠을 이용해서 ‘랜선 응원’을 펼치기도 했다. 국내 한 구단은 마네킹을 관중석에 뒀는데 그 마네킹이 성인용으로 밝혀져 곤란을 겪기도 했다.


K리그의 경기당 평균 관중은 8013명(K리그1 2019년 기준)으로 다른 스포츠에 비교하면 많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K리그 팬에게는 특별한 것이 있다. ‘서포터스’라고 불리는 K리그 축구클럽 지지자들은 유독 팀에 대한 애정이 깊고 충성심이 높다.



전례 없이 방문팀 관중이 딱 1명인 경기가 있었다. 바로 2015년 5월 18일에 있었던 강원FC와 경남FC의 경기다. 당시 경남FC는 2부 리그로 강등된 후 연패를 하고 있었는데, 이에 팬들은 응원 보이콧을 했다. 그러나 홍광욱 씨(경남FC 서포터스 연합회 전 회장)는 다섯 시간을 운전해서 속초 운동장에 갔고, ‘너와 나의 뜨거운 역사를 위하여’라는 빨간 걸개 뒤에서 홀로 응원했다. 단 한 명의 응원은 선수단에 큰 울림을 줬고, 경남FC는 연패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성남FC는 2013년 ‘성남일화’가 축구단 해체를 밝히며 연고지가 이전될 뻔했다. 당시 김재범 씨(성남FC 서포터스 황기청년단 전 단장)는 한 방송에서 “감독님 이하 선수단 여러분들, 당신들은 꼭 우리가 지킬 겁니다. 우리가 반드시 성남시장과 시의원을 설득할 테니, 여러분들은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 이에 연고 이전의 슬픔을 겪었던 부천FC1995와 FC안양 지지자를 비롯하여 K리그 팬이 구름처럼 성남시청으로 몰려들었다. 지지자들의 응원으로 연고를 지킨 성남FC는 이듬해 시민구단 최초로 FA컵 우승을 차지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죽어도 선덜랜드’나 영화 ‘피버 피치’(1997년)는 축구클럽 지지자를 주제로 한 것이다. 이 작품을 보면 축구클럽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은 비단 국내 지지자들만의 특징은 아닌 듯하다. 다만 왜 유독 축구클럽 지지자들만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누가 나에게 지지하는 축구클럽을 왜 사랑하느냐고 묻는다면, 마땅하게 할 대답도 없다.


그렇지만 나는 축구클럽을 사랑하는 건 꽤 근사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축구클럽은 나에게 평생 만날 인연이 없었던 형제자매들을 만들어 주었고, 사랑하는 기쁨을 알게 해줬으며, 삶을 다채롭게 해줬기 때문이다. 비단 축구클럽이 아니어도 좋으니, 이 글을 읽은 모든 이가 맹목적인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행복을 느껴봤으면 좋겠다. 파편화되고 경쟁이 익숙해진 요즘 시대에 마음 둘 곳 하나쯤 만드는 것이 어떨까 싶다. 그 ‘마음자리’는 삶의 일부가 되고, 더 나아가 뜨거운 역사가 될 것이다.



*동아일보에 2020.06.16 기고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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