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견례 장소를 가락시장 소줏집으로 정하는 ‘대참사’
나와 나의 아내는 1985년생 소띠로 동갑인데, 공교롭게도 아버지와 장인어른은 1958년생 개띠로 나이가 같다. 아버지와 장인어른은 단지 58년생 개띠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상견례 전 두 사람만의 술자리를 만들었고, 그 자리에서 상견례 장소를 가락시장 소줏집으로 정하는 ‘대참사’를 만들어냈다. 어머니와 장모님은 한껏 멋을 낸 상태로 횟감을 골랐고, 가락시장 소줏집에 앉아 당신들의 남편을 욕하는 것으로 첫 만남을 시작했다. 도대체 58년생 개띠의 정체성이 무엇이기에 이런 대참사가 벌어질 수 있는지 궁금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58년생 개띠는 이미 유명했다. ‘개띠 전쟁’이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도 있었고, ‘58년생 개띠 우리 아버지’라는 장편 소설도 있었다. 58년생 개띠는 한국전쟁 이후 태어나 보릿고개를 겪고, 눈부신 경제발전의 일선에 있었으며, 한편으로는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있었다. 58년생 개띠는 격동의 세월을 보내면서 개인의 행복, 개성, 취미 이런 것보다는 생계, 자녀를 위한 헌신 같은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아 쉼 없이 달려왔고,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지 못해 서로를 보듬으며 살고 있었다. 마음 한구석이 짠했다.
20대 시절, 나는 평범한 아들은 아니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내가 숨 쉬는 것조차 탐탁지 않아 했고, 나도 매사에 타박을 들으니 아버지가 별로 좋지 않았다. 아마 관심이 없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30대 들어 아버지는 당신의 거래처, 지인들을 내게 의뢰인으로 소개해 주었는데, 그런 사건은 아버지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 있어 수임률이 굉장히 높았다. 의뢰인들과 이런저런 아버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조금씩 변했고, 58년생 개띠인 아버지의 인생도 궁금해졌다.
아버지의 인생을 객관적으로 듣게 되니 조언을 얻을 일이 많아졌고, 아버지와 소주 한잔을 하는 날이 많아졌다. 어느 날 아버지는 환갑이 넘을 동안 쉼 없이 달려왔는데, 그렇게 세월을 보내고 나니 이제는 허망하다고 했다. 내가 아는 한 아버지는 전투적으로 생업에 종사해왔고, 인생의 대부분을 일로 보냈기 때문에 일이 없는 인생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걱정하는 눈치였다. 인생의 절반쯤을 한량으로 보낸 전문가가 앞에 앉아있으니 조언을 구해보라고 말씀드렸다. 욕먹을 각오로 한 농담이었는데 진지하게 경청하셔서 한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2019년을 돌아보면, 사회적으로 이런저런 갈등이 유독 많았던 한 해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사회적 갈등 중에서 가장 골이 깊지만 의외로 풀기 쉬운 것이 ‘세대 간 갈등’인 것 같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않아 발생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청년 세대가 아버지 세대에 먼저 손을 내밀어 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그렇게 하면 아마 새로운 해에는 영원한 내 편이자 든든한 친구가 하나 더 생길 것이다. 아버지 세대와 나누는 대화들은 생각보다 재미있고, 의외로 큰 도움이 된다.
*동아일보에 2019.12.31. 기고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