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에게 패소 이야기는 생계와 직결될 수도 있지만..
나도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요즘 인터넷을 보면 변호사들이 홈페이지, 블로그에 ‘성공사례’를 골라 올려둔 글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모든 소송엔 필연적으로 승소가 있으면 패소도 있다. 승소한 변호사만큼 패소한 변호사도 있는 셈이다. 그러나 나를 포함하여 변호사는 패소 글은 쓰지 않는다.
형사소송에서 의뢰인의 편은 변호인밖에 없지만, 변호인에게도 법정에서 유일한 편은 의뢰인뿐이다. 변호인석은 피고인석과 바로 붙어 있기 때문에 변호인에게는 재판 내내 의뢰인의 호흡, 몸의 떨림, 체온 등이 전해진다. 특히 구속 사건의 경우 변호인은 의뢰인과 그 가족의 연결 다리가 되고, 양형 변론을 준비하다 보면 의뢰인의 인생을 알게 된다. 그래서 변호인은 의뢰인의 혐의가 뭐든 의뢰인에게 애틋함을 느낀다.
구치소에서 수감자들의 주된 관심은 ‘형량’이다. 접견하러 가면 의뢰인은 꼭 동료 수감자의 의견을 덧붙여 ‘형량’을 묻는다. 수의를 입은 채 나를 바라보는 의뢰인의 간절한 눈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조건부로 희망을 조금 섞어 이야기하게 된다. 선의의 마음으로 내어줬던 희망은 늘 악령처럼 선고 기일까지 날 물고 늘어졌기 때문에, 지금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연차가 더 쌓이면 괜찮아질지 모르겠으나, 좀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예상보다 형량이 높게 나오는 것과 같이 패소를 마주하는 날은 마음이 너무 괴롭다. 실제로 눈도 퉁퉁 붓는다. 하루는 아내가 며칠간 코가 빠진 채 풀이 죽어 있는 나를 보고 몇 가지 조언을 해줬는데, 구체적인 행동을 알려줘서 큰 도움이 됐다. 그 조언의 첫 번째는 의뢰인 또는 의뢰인 가족에게 패배를 솔직하게 인정하라는 것이었다. ‘최선을 다했으나 패소하게 되어 송구스럽습니다’라는 대사도 정해줬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의뢰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열과 성을 다하여 향후 대책을 세워 주라는 것이었다.
아내의 조언에 따라 솔직하게 패배를 인정하니 오히려 최선을 다해 줘서 고맙다는 의뢰인이 많았고, 패소한 의뢰인에게 대책이라도 말씀드리니 그나마 면목이 좀 생겼다. 더불어 두 가지 점이 개선되기도 했는데, 패소에 대비하여 떳떳하게 말할 수 있도록 모든 사건에 최선을 다하게 됐고, 패소 핑계로 술이나 먹던 시간에 지난 사건을 복기해 보고 의뢰인에게 진짜 필요한 일을 하게 되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됐다.
패배를 마주하는 일은 굉장히 괴롭고 힘든 일이다. 그 패배를 인정하고 곱씹는 것 또한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자명한데, 사람은 매번 승리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패배를 서랍에 깊이 넣어 감추는 것보다는 고통스럽게 하는 패배의 뾰족뾰족한 부분을 닳아 없어질 때까지 만져 매끌매끌하게 만들고, 이를 성공을 위해 보태는 것이 더 나은 것이 아닐까. 변호사에게 패소 이야기는 생계와 직결될 수도 있지만, 패배에 대한 아내의 조언을 공유하고자 용기를 냈다.
*동아일보에 2020.12.01. 기고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