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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진수 변호사 Jul 14. 2022

도전의 맛

카카오스튜디오 승인거절,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는 어디 갔을까



변호사가 되고 맞닥뜨린 첫 변론기일이 생각난다. 전날 밤을 꼬박 새웠다. 청심환을 두 개나 먹었지만 목소리가 떨려 변론할 때 염소 소리가 났다. 반짝반짝했던 변호사 배지의 도금이 다 벗겨질 때쯤 변론기일이 편해졌다. 별다른 노력 없이 능청스러운 변론을 할 수 있게 됐지만, 무던한 생활이 반복되면서 하루하루가 덧없이 흘러갔다.     



어느 날 문득 법률 조항을 이모티콘으로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으로 이모티콘 제작 관련 게시글을 찾아봤다. 마침 가지고 있던 태블릿 PC로 그림을 그리고 문구를 만들어봤다. 전문가 수준은 아니어도 꽤 그럴듯해 보였다.     


그런데 사진 편집 프로그램을 사용해본 적이 없다는 게 발목을 잡았다. 일단 일주일 무료 체험판을 내려받아 기초적인 것부터 공부했다. 퇴근하고 시작한 작업은 동틀 녘까지 이어지기 일쑤였고 진행이 더뎠지만 고단하지 않았다.      


아내는 퇴근해서 아기나 볼 것이지 쓸데없는 일을 한다며 불평했다. 나는 이모티콘이 대박 나면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에 살게 해주겠다고 큰소리쳤다. 더듬더듬 고생 끝에 결국 그림파일 36개와 움직이는 그림파일 3개를 완성했다. 내 손으로 만든 첫 이모티콘 작품이었다.     


벅찬 가슴을 안고 카카오톡 스튜디오에 제안했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마음이 설렜다. 이런 기분은 몇 년 만이었다. 그러나 일주일 뒤 판매승인이 전부 거절됐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아내는 풀죽은 나를 보며 한강뷰 아파트는 어디 갔냐고 놀렸지만, 간간이 내 이모티콘을 썼다.



어른이 된다는 건 익숙해지는 것이다. 매끄러워지는 만큼 벅참, 설렘, 두근거림이 없어지고 어딘가에 푹 빠져 취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마흔을 불혹이라 했나 보다. 그러나 100세 시대에 어른이라는 이유로 그저 유려하게만 몇십 년을 흘려보내는 건 뭔가 아까운 느낌이 든다.     


도전은 그 자체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사소한 것도 좋고 원대한 것도 좋다. 심지어 성공 여부도 상관없다. 흘러가는 인생 속 쉼표와 추억거리가 되는 즐거움, 그것이 도전의 맛이 아닐까.



*좋은생각 21년 9월호에 기고했던 칼럼입니다.



[참고사진]

카카오스튜디오 승인거절 대상 1
카카오스튜디오 승인거절 대상 2
카카오스튜디오 승인거절 대상 3

지금보니 카카오스튜디오에서 거절할만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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