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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Oct 31. 2024

아빠의 흔적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 이런 비슷한 글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는 하루하루 매일을 살아가며 떠오르는 생각들과 글귀들로 글을 쓰곤 한다. 그래서 지금 쓰려고 하는 글이 이미 작성된 글인지 아니면 아직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은 글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아빠 관련된 글을 쓰려는 마음을 먹으면 항상 망설이게 된다. 내가 이 글을 이미 쓰지는 않았을까? 아빠를 욕되게 하지는 않는 걸까? 아빠가 많이 힘들었겠구나 하는 등의 무수한 감정들이 내 눈앞을 가로막기도 하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나의 아빠는 내가 들었던 이야기로만 쓰자면 회사생활을 수십 년을 하셨지만 회사생활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어서 회사를 때려치우고 사업을 차리고 영위한 케이스이다. 내 기억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정확할지는 모르겠지만 내 기억엔 아빠는 영업맨으로 몇 십 년을 회사에서 버티다가 도저히 그 일이 맞지 않아서 회사를 뛰쳐나와 본인만의 사업을 하기 위해 인쇄업을 작게나마 차렸다. 이것도 나중에 커서 알고 보니 작은 구멍가게가 아니라 나름 4호선과 2호선이 교차하는 곳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 있는 2층짜리 건물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2층이지만 계단이 없고 사장실을 오르락내리락했던 걸 생각해 보면 3층 건물은 아니었고 2층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아빠는 2층에 사장실이 있었고 1층에는 대여섯 대 정도 있었던 인쇄 기계가 정말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아빠는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굉장히 사업수완이 좋았고 직원분들에게도 존경까진 아니더라도 괜찮은 사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빠가 몰락한 이유는 그때 당시 내가 어렸기에 몰랐지만 엄마에게 나중에게 들은 이유로는 월급을 제때 주지 못하고 한 달 두 달 밀리기 시작하면서 직원들과의 불화가 시작됐다고 했다. 어렸을 때는 월급 좀 밀려서 줄 수도 있지 아빠한테 너무했네-라고 생각하고 판단했다면 나이가 점차 들면서 드는 생각은 나 같았어도 월급 한 달 아니 일주일이라도 밀리면 누구라도 돈을 제때 받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려고 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게다가 아르바이트를 고용한 것도 아니고 정직원으로 각 가정의 가장들과 일을 하는데 월급이 밀린다는 건 사실상 말도 안 되는 일이긴 했다.


그렇게 해서 아빠는 인쇄기계와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 순간 사업체가 무너져버렸고 그 이후에 아빠는 아는 지인이 가지고 있는 1층에 있는 창고같이 허름한 골방 같은 곳을 월 20만 원씩 주고 사무실을 차렸다. 아빠의 사업체가 사라지기 전에는 몇 번 가보지 못했지만 골방 사무실로 옮긴 뒤부터는 자주는 아니어도 아빠가 부를 때마다 가서 도와드렸기 때문에 아직까지 생생히 기억이 난다. 같이 납품도 다니고 일도 같이 하고 그때는 뭐가 그렇게 싫었는지 일 도와달라는 말이 너무나도 정말 죽기보다 싫었지만 나이가 들고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렇게라도 일을 하는 것이 감사한 일이었구나 싶다.


그렇게 그 이후 아빠의 건강상태가 악화되면서 세금계산서 발행이나 영수증처리 등 아빠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맡길만한 사람이 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에게 수시로 일을 부탁했다. 그렇게 처리하던 도중 아빠의 건강이 심각할 정도로 악화되어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입원을 했고 그렇게 얼마 있지 않아 임종방으로 방을 옮기고 아빠의 죽음을 기다렸다. 뒤늦게 엄마에게 물어보니 아빠는 병원 다니는 걸 너무 싫어해서 아파도 병원을 다니거나 입원하거나 건강검진을 한다거나 하는 걸 싫어했다고 했다. 그러니 간경화가 진행된 것도 추후에 알았고 미리미리 검진을 하지 않았던 탓으로 아빠는 2년 만에 그런 결과를 맞이했다.


그렇게 아빠는 세상에서 사라졌고 아빠의 빈자리는 아직까지도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고 채워지지 않는다. 세상살이가 모두 쉽지는 않겠지만 이 모든 부담감을 짊어졌을 아빠를 생각하니 마음이 헛헛하고 살아생전에 좋아하지도 않던 아빠가 문득 그리워지기 시작하는 것 같다.


아빠가 안치되어 있는 곳에 가서 오랜만에 인사라도 드리러 가야 할까 싶다. 뭐 가봤자 딱히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아빠 이름과 생년월일 그리고 세상에서 사라진 시간이 각인되어 있는 유골함만 보고 돌아올 뿐이겠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은 없겠지만 내가 아빠를 찾으러 멀리서부터 왔다는 것만 하늘나라에서 봐줬으면 좋겠다.


하루하루 힘든 생활을 이어나가면서 억지로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가지고 살 때마다 아빠가 문득 그리워진다. 아빠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내 생활이 힘들고 지금 상황이 힘들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잘만 사는데 왜 나만 왜 나에게 놓인 일들만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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