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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틀무렵 Feb 15. 2023

‘~가(이) 부족해 죽겠어요‘

조직의 결핍 본능

조직은 뭔가 부족하다고 늘 아우성친다. 거의 본능이다. 외부의 지원, 물품, 그리고 사람이 부족하다거나, 또는 경쟁사와 비교하여 타 회사는 어떻게 하는데, 뭣 뭣이 있는데, 등의 부러움의 표현 또한 결핍 본능의 다름 아니다. 그중에서도 ’사람이 없어 죽겠어요.’라는, 인력이 부족하다는 말은 리더나 구성원이나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조금 과한 말일까. 당연히 나도 그랬다.


리더도 때로 부하직원에게 배운다. 

오래전 지방에서 팀을 맡아 스물다섯 명 정도의 팀을 이끌고 있었다. 팀 업무를 크게 다섯 개의 모듈로 나누어 업무마다 4~6명씩을 배치하였다. 개인별 업무영역이 뚜렷했고 조직 평가에서 항상 전국 1등을 하면서 크게 부족한 것 없이 잘 운영되고 있었다. 그런데도 팀원들은 어쩌다 일이 집중되는 시기가 오면, 사람이 부족하다는 하소연을 자주 했다. 반대로 스텝 조직은 현장 조직을 어떻게 슬림화할까를 도끼눈으로 바라보며 인력이 적정한가를 자주 따졌다. 사실 적정한지를 따지는 것이라기보다, 줄이는 것에 목적이 있음을 알기에 그런 압박이 올 때마다 ’현장도 모르는 것들이...‘라며 핏대를 세우곤 했다.

     

몇 년을 그 팀을 이끌다, ‘리더는 돌려야 한다’라는 CEO의 방침으로 수도권으로 이동하였다. 팀장 보임을 못 받으면 6개월 치 월급을 받고 퇴사해야 하는 불문율이 작동하던 살벌한 시절이었으니, 이후 오 년의 고달픈 주말부부의 시작이었으나 나는 다행이었다고 할까.


새 팀은 관리할 대상도, 업무도 훨씬 많았고 복잡성도 높았다. 지방보다는 교통의 혼잡에 따른 시간 소모, 지리적 문제 등의 부수의 애로도 많았다. 그런데 인원은 그전에 있던 팀보다 대략 30%는 적었다. 일은 많고 인원은 상대적으로 적으니 늘 도떼기시장 같은 분위기였다.     


부임하고 얼마간 지켜보니 팀원들이 일하는 것이 당최 두서가 없어 보였고, 누가 어떤 업무를 담당하는지 모호했으며, 무계획적으로 그때그때 일이 정해지고 진행되는 오합지졸 같은 팀으로 내게는 보였다.     

어느 날 전 팀원들에게 회의를 소집했다. ‘나는 여러분들이 일하는 것이 도무지 누가 무엇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업무분장도 명확하지 않아 보이고 일의 두서가 없는 것 같아 오늘 각자의 역할과 업무분장을 정확히 하고자 한다’라며 서두를 떼고 각자가 하는 일에 관해 물어가며 토론을 시작했다.      


그러나 담당자별로 업무를 명확히 하고 내 방식대로 팀을 이끌어 가자고 했던 나의 처음 의도와는 달리, ‘내가 틀렸다. 여러분들이 하는 방식이 옳다.’라고 결론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전까지 운영했던 바로는 A업무는 A가 하고, B업무는 B가 해야 하는데 우리 팀은 그렇지 않았다. 개인별 업무영역은 있었으나, 업무가 생기면 동료애를 발휘하여 서로 도와가면서 일을 하고 있었다. ‘선배 오늘 그거 내가 지원해 줄게요’ ‘후배 그 업무 오늘 벅찬 것 같은데 내가 도와줄게’ 하며,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리더가 조정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들 알아서 일을 수행하고 있었다. 벅찬 업무 속에서 동료애를 발휘하는 고마운 팀원들이었다. 그날 우리는 늦게까지 많은 술을 마셨다.     


벌써 십칠 년 전에 함께한 팀이었지만, 그 팀원들은 지금도 연락이 오고 있다. 얼마 전에도 자정이 넘어 한 친구가 혀 꼬부라진 소리로 전화를 주었다.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하지만, 취중에 하는 전화는 진심이 있는 전화임을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얼마 전, 오십 중반 나이에 희망퇴직을 했다는 말에 가슴이 아렸다. 조만간 그때 팀원들과 한번 만나자고 꼭꼭 약속했다. 조만간 그리될 것 같다.     


두 번째는 경쟁하는 타사를 비교하면서, 우리만 뭔가 부족하다는 호소이다. 사실은 결핍이라기보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것이리라. 경쟁회사가 잘하는 것, 가지고 있는 것을 나열하며, 안 되는 이유와 핑계를 대면서 우리는 하지 못한다고 체념한다. 그런 팀원에게는 ‘어릴 때 동네 놀러 갔다가 얻어맞고 징징 울면서 집에 들어오듯이 하지 마라. 우리도, 당신도 그렇게 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를 해준다. 그러면 대부분 뭔가를 고민하여 이기는 방법을 찾아내는 팀원이 많다.     


사람이나 조직이나 유기적 구성체는 늘 무언가 결핍을 느끼고 호소하는 생리가 있다.(진정한 호소인이다) 진짜 부족할 때도 있지만, 그런 결핍의 하소연이 본인의 게으름이나 편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이 아닌지도 잘 살펴보아야 한다. 때로는 습관적 방어기제의 작동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럴지라도 생활이라는 것이 항상 결핍을 메우려는 관성의 연속이니 이를 탓할 필요는 없다. 불만이 전혀 없는 사람은 문제의식이 없다는 것도 가능한 명제이며, 부족하다는 인식을 가지는 것이 개선과 향상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결핍의 본능을 참아내며 ‘공포의 외인구단’ 같은 투지로 구성원들 스스로 협업을 만들어 가는 팀이 있었고, 늘 현장에서 고민하며 문제를 타개하려 했던 팀원들이 많았기에 나는 회사생활을 잘 보낸 것 같다. 오랜 시간 평탄하게 조직 생활을 한 것은, 모두 같이 일했던 그런 친구들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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