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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바 Aug 04. 2022

전반 나인 홀이 너무 어려워요.

골프에서 배우는 학습 관리


   ‘내장 시 재킷 착용을 준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웰링턴 CC는 명문 골프장이라 소문난 곳인지 내장 시 주의 사항을 함께 보낸다. 정 상무가 우리 회사를 떠난 지 10년도 더 지난 것 같은데 정 상무의 문자를 받고 보니 무척 반갑다.


   ‘4월 첫 번째 토요일에 같이 운동할까요?’라는 문자를 받자마자 바로 답을 한다. 


   “좋지요.”


   시설이나 서비스가 좋은 것은 기본이고 코스의 경관이며 캐디들의 미소며 뭐하나 나무랄 것이 없다. 특히 연못의 물이 참 깨끗하다. 지금까지 어떤 골프장의 연못에서도 이런 수질을 보지 못했기에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야, 진짜 깨끗하다!”


   와이 번 코스로 이동해서 김 캐디가 코스를 설명해 준다.


   “와이 번 코스는 조금 어렵습니다. 인내가 필요합니다. 보통은 그리 핀에서 시작하고 와이 번으로 넘어오는데 오늘 회원님은 와이 번부터 시작입니다.  파이팅 하세요.”


   첫 홀부터 어렵게 시작한다유 전무가 여자 티로 간다. 저번에 칠 때보다 공에 힘이 붙어 있다. 가운데로 잘 보내고 두 번째 샷을 그린에 안착시킨다. 버디 찬스다.


   남자 셋은 모두 쓰리 온에 이단 그린을 극복하지 못하고 쓰리 퍼트로 더블을 하는데 유 전무의 퍼팅이 그대로 홀컵으로 빨려 들어간다. 


   “땡그랑.”


   소리도 경쾌하다. 첫 홀부터 버디를 만들어 내니 어렵다는 코스라고 말한 캐디를 무색하게 만든다.




   두 번째 홀이 파 5인데 김 캐디가 주의 사항을 알려준다. 


   유 전무는 두 번째 홀도 안정적으로 친다. 별로 실수가 없다. 또바기 골프라고나 할까? 정 상무와 윤 상무는 여전히 좋은 샷을 보이지 못하며 ‘왜 이러지?’를 되뇐다.


   또 남자 셋은 어렵게 5 온하고 더블을 기록하고 유 전무는 쓰리 온에 파를 기록한다. 유 전무의 어깨에 힘이 들어갈 만하다.


   이제 두 번째 홀까지 마치니 조금은 몸이 풀렸을까?


   파 3 홀이다.


   160 미터 계곡을 넘겨야 하는데 힘이 들어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한 클럽 길게 4번 아이언 티 샷을 한다. 그런대로 넘기기는 했지만 왼쪽으로 감긴다. 나가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어프로치로 붙여서 파를 하자고 생각한다.


   “캐디 언니, 4번 하이브리드 주세요.”


   윤 상무가 드디어 회원님의 실력을 보여준다. 오래간만에 잘 맞았다. 조금 멀긴 해도 온그린이다. 정 상무는 오른쪽으로 내 보내고 드디어 유 전무 차례다.


   “110 미터입니다. 짧으면 계곡에 빠질 수 있으니 약간 긴 것이 좋습니다.”


   “7번 아이언 주세요.”


   유 전무의 스윙에 힘이 들어간다. 볼이 머리를 맞고 뜨지 못한 채 계곡으로 빠진다. 멀리건으로 친 공이 다시 오른쪽으로 밀리며 거리가 짧아 계곡으로 빠진다.


   “괜히 공만 잃어버렸네요.”


   연속으로 공을 빠뜨린 유 전무의 얼굴이 굳어진다. 처음 두 홀에서 보여준 버디와 파할 때의 모습이 아니다.


   여유와 인내가 필요한 순간이다.


   왼쪽으로 간 내 볼은 약간 내리막에 걸려있다. 치기 불편한 자리다. 걱정한 대로 간다고 제대로 찍지 못해서 에지에 멈춘다.    


   갑자기 골프 참 못 친다는 생각도 들고 자책하는 마음이 자꾸만 든다. 그래도 어프로치 샷이 붙어서 보기를 한다. 다행이다. 


   “회원님, 버디를 보여 주세요.”


   윤 상무의 버디 시도는 너무 짧아서 파를 못하고 보기를 기록한다. 계곡에 빠뜨린 두 분은 양파를 하면서 말을 못 한다. 벌써 타수가 5개를 오버하고 있고 윤 상무는 7개를 오버하고 있으니 뭔 말이 필요하겠는가?


   세 홀에 두 개의 더블을 하더니 나머지 여섯 개 홀에서도 더블 3개를 더 기록한다. 파 2개, 보기 2개로 48타를 친다.

 

   동반자들의 타수도 그리 좋지 않다. 윤 상무가 50타, 정 상무가 52타 그리고 초반에 버디를 기록한 유 전무가 47타를 기록한다. 


   “캐디 언니 말대로 와이 번 코스 정말 어렵네요.”


   “KLPGA에서 검증 나왔는데 검증 나온 분들이 코스 어렵다고 인정하고 가셨습니다."


   "그래요?"


   "전반 9홀이 이 정도 스코어면 잘 친 겁니다. 보통 5 타는 기본으로 더 나옵니다. 그래서 고객 접대하러 오시는 것이 불편하다고 합니다. 후반은 조금 쉬우니까 재미있게 칠 수 있을 겁니다. 파이팅 하세요.”


   전반에서 어려움을 겪어서인지 후반 9 홀은 말대로 쉬워 보인다. 훈련을 격하게 받고 나면 실전에서는 쉽다고 하지 않았는가?



   


   둘째 딸이 처음 직장에 들어가서 얼마 되지 않아 선임이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했다. OJT를 받아야 하는데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서 직접 하나씩 배워 나간다. 집에 오는 시간이 매일 12시다.


   “아빠, 힘들어요.”


   “그래 힘들지, 옆에서 선임이 가르쳐 주어야 하는데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떻게 하냐?”


   “그래서 기존 메일 하고 SOP 참고해서 하나씩 배우고 처리하고 있는데 처음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려요. 제가 배운 것들은 따로 메모해 가며 제 나름의 SOP를 만들고 있어요. 업무 절차를 간소화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건의하기도 하고요.”


   6개월 정도 지나니 3년 이상 된 경력자가 할 수 있는 일들까지 척척해 낸다. 


   “제 아래로 직원 한 명을 뽑았는데 저 보고 OJT 하래요.”


   “할 수 있겠어?”


   “제가 만들어 놓은 SOP가 도움이 되네요. 그 친구에게 가르쳐 주면서 저도 배울 수 있고요. 지난 6개월 동안 힘들었는데 알고 나니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다행이다. 힘들게 배운 것은 다 피가 되고 살이 되지. 아무리 어려워도 그때보다 어렵지는 않을 테니까.”


   처음 직장 생활을 한 현대종합상사에서는 매년 신입 사원 대상으로 하계수련대회를 가졌다.


   그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전 신입직원이 오대산을 넘어가는 것이었다. 한 여름의 더위 속에서 산을 넘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 승리하고 말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누구 하나 탈락하지 않고 모두 오대산을 넘어가는 것을 보면서 이 신입사원들이 어떠한 역경도 극복하고 미래를 이끌어 갈 인재들임을 의심해 보지 않았다.


   역경을 겪으면 성장한다. 


   어려운 홀들을 겪으면 그보다 쉬운 홀은 가볍게 파할 수 있다. 그래서 경험이 필요하다. 어려운 경험을 하면서 어려움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고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해결 방법과 기술과 체력을 기르게 된다. 정신력이 강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오랜 전에 43일간의 직장 폐쇄 경험을 하고 나서는 노동조합과의 협상에 두려움이 없다. 아니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서로 이해하게 되고 문제가 해결된다. 해결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은 어려운 일을 겪어 본 사람들이 갖게 되는 강한 정신력이다. 



  

   ‘우승도 해본 사람이 한다’고 했다. 어려운 와이 번 코스를 잘 치는 사람은 다른 코스도 잘 칠 수 있다. 코스가 쉽게 느껴짐에 틀림이 없다. 


   “후반 그리핀 코스는 쉬운 듯해도 스코어가 잘 나오지 않습니다. 잘 치세요.”


   윤 상무가 걱정되는지 코스 소개를 해 준다.


   “전반 보다야 낫지 않겠습니까? 이제 몸도 다 풀렸고.”


   쉬운 코스가 없다. 또 쉬워도 그리 만만하게 볼 수도 없다. 방심하면 바로 스코어가 올라간다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


   후반 나인 홀을 마치며 보니 스코어가 조금 좋아진 것 같다. 90개를 깰 생각에 집중했는지 딱 90개다.


   골프는 참 어렵다는 것을 골프장에 갈 때마다 느낀다. ‘오늘은 잘 칠 수 있을 거야’라는 희망을 갖고 가지만 매번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한다.


   이제 어려운 홀에 가더라도 크게 당황하거나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티 샷이 나가거나 벙커에 빠져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오비 파로 막으면 되지’ 아니면 ‘한 타 더 먹으면 되지’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어려운 상황인가?


   이를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라보자.


   나에게 주어진 좋은 학습의 시간임에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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