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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옥 Jan 21. 2023

2022년 분기별 일-실험 회고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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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기


나에게는 일 년, 아니 인생을 통틀어서 매우 의미심장한 기간이었다. 바로 이때 내 인생 첫 독립출판물을 출간했기 때문이다. 6월부터 시작했던 예약판매를 마무리하고, 그동안 인쇄소를 찾아서 견적도 받고 인쇄 부수와 사양을 확정하고 손을 떨면서 대금을 입금했다. 드디어 7월에 책을 받아보았고, 한 권 한 권 정성스럽게 검수하고 포장해서 예약 구매자분들께 전달했다. 서점에도 입고 신청을 넣었고, 8월부터 서점에도 책을 보내게 되었다. 마침 이 기간이 입시 컨설팅 성수기라 통장도 마음도 여유로웠다. 


9월이 되자 입시철이 끝났고, 하반기 취업 시즌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처음 번아웃이 왔을 때 제대로 쉬어가지 못해서 그런지(지난 몇 달간 책 작업과 계속 병행해서 일을 구하려고 애썼다) 일하기 싫어도 너무 싫다는 강력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 그 시기에 견적 문의하던 고객들이 유독 까다로워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마침 학교 행정실에서 일하는 지인이 코로나로 인해 서울에 있는 많은 학교들에서 ‘방역 알바’라는 걸 구하고 있다며 귀띔을 해주었고, 오랜 고민 끝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시급으로만 따지면 컨설팅보다는 현저히 적지만 비슷한 알바와 비교했을 때에는 꽤 많은 편이었다. 오랜만에 월급을 받는 기분을 느껴보자, 그리고 몸을 움직이는 일도 경험해 보자는 마음에 지원했고 매우 간단한 면접을 거쳐 합격.




4분기


방역 알바를 4분기 내내 했고, 그동안 컨설팅 의뢰는 단 한 건도 받지 않았다. 2020년 9월에 이 일을 처음 시작한 뒤로 이렇게 살아본 적이 처음이라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새로운 일은 많은 체력을 요했지만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엄청나게 건강해지는 데에 기여했다. 매일 새로운 고객을 찾아야 한다는 부담 없이 월급 받는 기분도 좋았고, 사람들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동시에 부대끼면서 일하는 환경에서도 많은 활기를 얻었다. 반면 주 4일에서 주 5일 근무로 넘어간 건 적응하기 쉽지 않았고, 마음대로 휴일을 쓸 수 없다는 것도 아쉬웠다. 뭐 장점만 있는 일은 없겠지.


그 기간에는 다른 경제활동을 하지 않아도 되니 제로페이퍼북스 준비에 열을 올릴 수 있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닫을 줄 알았다면 시작도 안 했으면 좋았겠건만,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그러지 않겠지. 그래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걸 배웠다. 내 손으로 쇼핑몰을 하나 만드는 게 정말 쉽지 않다는 것. 홍보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것. 그리고 어떤 일은 혼자서 하면 오히려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 나는 아무래도 혼자 일하는 걸 선호하는 사람이라(정확히 말하면 다른 사람과 일하는 걸 무서워한다), 내가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어느 정도 되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같이 일할 사람을 쓸 수 없다면 인력을 대체할 여러 서비스에 돈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모객, 홍보, 채팅 기능 등등을 모두 위탁할 수 있었던 프리랜서 플랫폼이 새삼 고맙게 느껴질 지경.


아, 메일링 서비스도 처음으로 시도해 보았다. 이것 역시 홍보 없이 유료 서비스를 진행한다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한편으로 내가 아직 무명작가에 불구한데 너무 많은 콘텐츠를 유료화한다는 후회도 들었다. 처음에는 돈이 좀 아쉽더라도 양질의 콘텐츠를 무료로 많이 풀고, 그걸 기반으로 팬베이스가 모이면 유료화를 시도해야 한다는 걸 이제야 배운다. 그거랑 별개로 월 2-3회 꾸준히 글 쓰는 습관이 든 것은 좋았다. 




총평(?)


평가라기보다는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서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의 종류와 방식을 생각해 보았다.


일단 4분기에 ‘경제활동’과 ‘자아실현 내지는 미래 사업에 시간 투자하기’가 시간적으로 명확하게 구분된 삶이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오후 2시 반에 퇴근하면 그 뒤로는 고객을 모객 하거나, 갑작스럽게 들어온 비싼 의뢰 작업을 수행하느라 남은 하루 동안 계획한 작업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지 않아도 매달 같은 날짜에 꼬박꼬박 돈이 들어왔으니까. 그때에는 정말 3-4시간 단위로 하던 일에 맹렬히 몰두할 수 있었고, 몰입도도 성과도 아주 높았다.


문제는 이런 생활을 ‘경제활동=알바’가 아니라 ‘경제활동=컨설팅업’으로 대체해도 유지가 가능할지가 의문이다. 내가 정해둔 업무 시간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결제를 마치고 나와 작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한 고객이 내게 연락을 줄 수 있는 시간에 불과하다. 신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견적서를 보내고 채팅에 응대하는 것까지 그 시간대에 한정시키면 고용률이 현저히 낮아질 것 같아 걱정이다. (고객의 메시지를 받고 응답까지 걸리는 시간이 고용률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 실제로 앱에서도 각 프리랜서가 응답까지 평균 몇 분 정도 걸리는지 화면에 보여준다.) 설령 정해진 시간대 안에서만 응대를 한다고 해도, 내가 그 시간 중 2-3시간 정도 방해받지 않고 일에 몰두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그렇다고 이전에 했던 것과 비슷한 알바를 구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4월에 있을 결혼식과 신혼여행 일정 때문에 3개월 이상 지속할 수가 없다), 당장 지금으로서는 불편함을 견디면서 컨설팅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채팅 응대로 인해 업무 흐름이 끊기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내가 정말 불편하다고 느낀다면 정해진 시간 동안은 과감히 연락을 받지 않는 연습을 할 수밖에. (사실 좀 해봤는데 결과가 그다지 좋지 않았어서 다시 해보기 불안하긴 하다.)


대신 제로페이퍼북스를 대체해서, 올해에 기반을 잘 다져보고 싶은 새로운 사업에 힘써야겠다. 사업이라기보다는, 조직 밖에서 생존 가능한 수준의 수입을 현실적으로 벌 수 있는 노하우를 나누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는 것이다. 콘텐츠를 꾸준히 쌓으면서 원데이 클래스를 열거나 전자책을 만들어 팔 수 있는 기반을 만들 수 있겠지. 수익화랑 별개로, 조직 밖에서 무언가 해보고 싶은데 망설이는 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제일 크다. 내가 했던 시행착오를 최대한 피하기를 바라며. 또 ‘퇴사하고 3개월 만에 연봉 1억 만들기’ ‘전자책으로 월 1천 벌기’ 같이 자극적인 캐치프레이즈에 지친 사람들에게 대안을 보여주고 싶다. 



정리


1. 시간과 스트레스를 아껴주는 서비스에 돈을 아낌없이 투자하고, 적극적으로 외주를 구하자. (재고 관리 및 택배 발송을 담당해 주는 물류창고, 인스타그램 게시물 예약 업로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메타 비즈니스, 전자책 제작 대행업체 등) 그 돈은 쓰고 그냥 없어지는 게 아니라 다른 곳에 쓸 수 있는 시간으로 돌아오고,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준다. (돈이 아니라 시간을 번다고 생각하기)


2. 같은 맥락에서 서비스/콘텐츠 유료화는 충분한 팬베이스가 생긴 후에 시도하자. 그전까지는 양질의 콘텐츠를 아낌없이 베푸는 것이 우선이다. 베이스가 생긴 뒤에는 수익 자동화를 노려볼 수 있는 기반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전자책, 녹화 강의 판매 등)


3. 그런 팬베이스를 마련하려면 ‘홍보’가 매우 중요하다. (정기적인 게시물 업로드, 인스타그램 광고, 관련 커뮤니티 활동 등)


4. 가능하다면 4월 이후에 신체 활동을 수반하는 알바를 구해보자. 몸도 마음도 현저히 건강해지고 삶에 루틴이 생긴다.


5. 알바를 구하기 전까지는 어렵겠지만 내가 스스로 루틴을 만들어야 한다. 경제활동이 아닌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활동’에 꼭 정해진 시간을 할애하자. 그 시간에 돈을 벌지 못하는 것에 아쉬움을 느껴서 이를 희생하지 말자. 근시안적인 생각이다.


6. 실험의 차원에서 여러가지 시도해보는 건 좋지만, 시간 관리에 실패해서 포기하는 일은 없도록 하자. (예: 에세이 연재)


7. 실패에 관대해지자. 처음부터 완벽하게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제로페이퍼북스처럼 오래 구상한 사업이 엎어지더라도 거기서 배우는 게 있으니 됐다.


8. 수입이 아쉽다면 지출을 줄이는 방법 밖에 없다. 난 사실 밥 말고는 소비하는 게 거의 없으니 그것만 요리로 대체하자. (뜨개질은 휴업 중이고 옷, 화장품은 3개월에 한 벌 정도 삼)



다채롭게 다양한 실험을 하면서 많은 걸 배운 한 해였다. 2023년에도 풍요롭게 배우고 성장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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