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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도 가지 않은 길 Oct 14. 2023

굿바이, 1975년!

연재 소설

  방현우가 달력에서 12월 ‘31일’에 가위표를 한 후, 한 장짜리 달력 전체에 커다란 가위표를 씌우고 나서 소리쳤다.

  “자, 여러분! 1975년이 우주 속으로 사라졌소이다. 우리가 1975년을 정복했다 이 말이요.”

  근로자들이 일제히 손뼉을 쳤다. 손 휘파람 소리도 들렸다.

  “그거 참 희한해. 하루는 안 가도 달은 잘 간단 말이야. 어느새 9개월이 지났으니, 인자 제대일이 개월 남았재?

  윤창식이 손가락을 꼽다가 팔꿈치로 필성을 치며 물었다.

  “진 씨는 연장할 끼요?”

  “겨우 1학년 마치고 어떻게 졸업을 하나. 6학년까지는 다녀야지.”

  필성이 손가락 여섯 개를 펴 보였다.

  “앗따, 맘 오부지게 먹었네잉.”




  “석한풍이 요새 왜 저러나? 요즘엔 통 말도 않고 혼자서 매일 밤 어디를 갔다 오는지 모르겠어.”

  봉수한이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누이동생 편지를 보고부텀 저러네유.”

  방현우가 혀를 찼다.

  “그래, 무슨 일인지 물어봤소?”

  “뭐라고 대꾸를 해야 말이지유.”

  “그렇다고 말면 그만인가? 같은 방 동료인데.”

  “물어보면 짜증만 내니 난들 어쩌겠수. 그 친구 기분을 살폈다가 넌지시 물어볼 참이어유.”

  “여동생 편지를 보고부텀 그란다면···부인에게 무신 일이··· 맞아, 고무신 거꾸로 신은 거 갑네.”

  부인이 가출한 윤창식이 누구보다 예민했다.

  순간 필성은 엊그제 무길의 말이 머리를 쳤다. ‘밤이면 사막에서 고함을 지르며 울부짖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석한풍이란 말인가. 같은 숙소 동료에게 무심했다는 자책감에 마음이 켕겼다.

  “남편을 사막에 보낸 여자들이 제빈지, 참샌지 하는 놈들 먹잇감이라던데.”

  설경찬은 얼마 전 신문기사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렇담 빨리 귀국 신청을 해야지. 돈 벌어 보내면 뭐 하나? 어떤 놈 좋은 일만······”

   봉수한의 말 중에 석한풍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근로자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고 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의 얼굴에 물기를 닦아낸 자국이 보이고, 눈은 충혈돼 있었으며, 다른 동료의 시선을 피해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석 씨, 어디 갔다 오시나?”

  봉수한이 물었으나, 그는 우물거리다 말고 자리에 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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