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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은 Nov 05. 2022

바람꽃, 카페

괜찮은, 기억들

 도서관을 자주 오게 된 것은 아마  지난해부터였던 것 같다. 책을 많이 읽어서가 아니라. 이 나이에 뭔가 새로운 것에 도전해볼 기회가 생겨 도서관에 강제로 와야 했고 책을 보다가 몸 구석구석에 있는 세포들이 꿈틀거릴 때쯤이면  나는 보던 책들을 정리하고 나와 계단을 타고 한 층 내려가면 있는 카페로 내려가곤 했다. 


 내가 주문하는 메뉴는 늘 똑같다. 다른 것을 주문해 보려고 해도 키오스크 앞에만 서면 손이 저절로  따뜻한 커피를 눌렀다.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선뜻 다른 메뉴를 선택하기가 힘들다.



 

 무슨 문제인지 몰라도 이곳에 있는 키오스크는 가끔 터치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눌러도 반응이 없을 때 나는 옆 계산대로 간다. 이곳은 시니어들이 주문을 받고 메뉴를 만든다. 어떤 취지에서 만들어진 곳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곳은 우리 동네 시니어들이 지키는 곳이다.


 나는 큰 소리로 "따뜻한 아메리카노요." 하고 주문을 한다. 

마스크 탓도 있겠지만 주문받으시는 분은 "아이스 아메리카노요?"라고 되묻는다.

"아니요. 따뜻한 커피요." 하고 다시 한번 큰 소리로 주문을 한다.


 주문을 받으신 분이 실수하지 않으려고 '따순 커피, 따순 커피'를 계속 읊으시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참 귀엽다. 따뜻한 커피가 따순 커피가 되는 순간 마스크에 가려진 내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이번에는 카드 결제가 문제다. 휴대폰을 아무리 결제기에 갖다 대도 결제가 되지 않는다. 왜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뭐 해도 꼬이는 그런 날이. 시니어의 긴장한 모습이 역 역하게 보인다. 키오스크가 되지 않아 카운터로 가서 직접 주문했는데 시간이 더 많이 걸리는 것 같다. 

 하지만 화가 나지 않는다. 사실 오늘뿐 아니라 여러 번 있었던 일이다. 익숙해서 인지, 시니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인지 왠지 모를 느긋함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나온다. 의래 그러려니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고 해야 하나? 언젠가 나도 겪게 될 일이니 말이다. 나이가 들면 조금 느려지고 조금 둔해지겠지만 여기 일하시는 분들처럼 바삐 움직이며 하루를 보낼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 내가 누군가에게 조금 불편함을 주더라도 그 누군가는 넓은 마음으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길 바란다.



 어느덧 따순 커피 한 잔이 나왔다.

 조금 느리고, 조금 불편할 때가 있지만 그래도 순 커피를 받아 손에 받아 들면 금 전의 불편함은 금방 사라지고 커피 향에 취해 저절로 몸이 편안해짐을 것을 다. 나는 순 커피를 들고 늘 같은 자리에 앉아 꿈틀거리던 몸을 커피 향에 담근다. 그래 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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