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을 자주 오게 된 것은 아마 지난해부터였던 것 같다.책을많이 읽어서가 아니라. 이 나이에 뭔가 새로운 것에 도전해볼 기회가 생겨 도서관에 강제로 와야 했고 책을 보다가 몸 구석구석에 있는 세포들이 꿈틀거릴 때쯤이면 나는 보던 책들을 정리하고나와 계단을 타고 한 층 내려가면 있는 카페로 내려가곤 했다.
내가 주문하는 메뉴는 늘 똑같다. 다른 것을 주문해 보려고 해도 키오스크 앞에만 서면 손이 저절로 따뜻한 커피를 눌렀다.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선뜻 다른 메뉴를 선택하기가 힘들다.
무슨 문제인지 몰라도 이곳에 있는 키오스크는 가끔 터치가 잘 되지 않는다. 아무리 눌러도 반응이 없을 때 나는 옆 계산대로 간다. 이곳은 시니어들이 주문을 받고 메뉴를 만든다. 어떤 취지에서 만들어진 곳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곳은 우리 동네 시니어들이 지키는 곳이다.
나는 큰 소리로 "따뜻한 아메리카노요." 하고 주문을 한다.
마스크 탓도 있겠지만 주문받으시는 분은 "아이스 아메리카노요?"라고 되묻는다.
"아니요. 따뜻한 커피요." 하고 다시 한번 큰 소리로 주문을 한다.
주문을 받으신 분이 실수하지 않으려고 '따순 커피, 따순 커피'를 계속 읊으시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참 귀엽다. 따뜻한 커피가 따순 커피가 되는 순간 마스크에 가려진 내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이번에는 카드 결제가 문제다. 휴대폰을 아무리 결제기에 갖다 대도 결제가 되지 않는다. 왜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뭐 해도 꼬이는 그런 날이. 시니어의 긴장한 모습이 역 역하게 보인다. 키오스크가 되지 않아 카운터로 가서 직접 주문했는데 시간이 더 많이 걸리는 것 같다.
하지만 화가 나지 않는다. 사실 오늘뿐 아니라 여러 번 있었던 일이다. 익숙해서 인지, 시니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인지 왠지 모를 느긋함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나온다. 의래 그러려니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고 해야 하나? 언젠가 나도 겪게 될 일이니 말이다. 나이가 들면 조금 느려지고 조금 둔해지겠지만 여기 일하시는 분들처럼 바삐 움직이며 하루를 보낼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 내가 누군가에게 조금 불편함을 주더라도 그 누군가는 넓은 마음으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길 바란다.
어느덧 따순 커피 한 잔이 나왔다.
조금 느리고, 조금 불편할 때가 있지만 그래도 따순 커피를 받아 손에 받아 들면 조금 전의 불편함은 금방 사라지고 커피 향에 취해 저절로 몸이 편안해짐을 것을 느낀다. 나는 따순 커피를 들고 늘 같은 자리에 앉아 꿈틀거리던 몸을 커피 향에 담근다.그래 이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