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이 켜지면 이것도 커진다.
우리 집 여름은 아내의 ‘에어컨 금지령’과 아들의 ‘에어컨 개시 운동’이 매일 부딪히는 전장이다.
아들은 외할머니 댁에만 가면 하소연부터 한다.
“할머니, 우리 집은 에어컨도 안 켜고 너무 더워. 그냥 여기서 살까 봐.”
장모님은 바로 편을 들어주신다.
“아이고, 7월이면 틀어야지! 내가 전기세 내줄 테니 얼른 켜.”
아내는 단호하다.
“한 번 켜면 쭉~ 켜야 하잖아. 건강 생각해서 아끼는 거야. 에어컨 바람은 머리도 아프고 몸도 찌뿌둥하단 말이야. 아직은 살 만해. 엄살 좀 그만!”
내일 낮기온이 36도라며, 아들은 오늘만 벌써 일곱 번째 날씨 뉴스를 읊었다.
샤워하고 나와 식세기 그릇 정리, 자발적 독서까지!
전략을 바꾼 것인가.
아내가 놀라서 묻는다.
“웬일이야?”
아들은 진지하게 묻는다.
“엄마, 여름 가기 전에 에어컨 틀긴 틀 거지?”
나도 슬쩍 거든다.
“그럼, 잘 때 안방만 한 번 켜볼까?”
아들은 신이 나서 안방으로 달려가더니,
“에어컨 켜려면 실외기실 열어야 해. 할머니네서 다 배웠어!”
입술이 실룩거리는 게, 작전 성공의 기쁨이 느껴진다.
거실로 나가 한 바퀴 돌고 들어온 아들,
“와, 나갔다 들어오니 진짜 천국이야!”
“좋아?”
“응응. (엄마를 안으며) 봐, 에어컨을 켜니까 사랑도 커지잖아!”
여름밤, 서로를 꼭 안을 수 있는 쾌적함.
작은 일에도 "시원하다, 고맙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감사함.
집안일은 덤,
혹시 이 모든 게 아내의 큰 그림이었을까?
아들의 임시 모범생 프로젝트.
외할머니와의 정치적 협상.
아내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작전 회의.
날씨 앱 수시 체크.
그리고 드디어 손에 넣은 에어컨 리모컨.
이 모든 과정이 바로 '비용'이었다.
에어컨을 오래 참았다가 틀어야 더 소중하다고 느끼는 법을 가르쳐주려는 교육적 의도였을까?
아니면 정말로 건강과 절약을 생각한 엄마의 마음이었을까?
어쨌든 확실한 건 하나다.
우리 집 에어컨은 세상에서 가장 비싸다.
기다림과 협상, 양보와 이해로 만들어진 바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비싼 바람은, 사랑의 스위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