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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헤다 Sep 13. 2022

작고 위대한 일

그렇게 난 오늘도 위대한 삶을 살아야겠다.

 지난여름 휴가 때의 일이다. 

 찌는듯한 더위였지만 그래도 여행을 떠나는 것은 기분이 좋다. 사소한 것도 행복의 조건이 된다. 여행을 준비하는 것부터 가는 길, 그 과정 하나하나가 다 좋다. 구름도 더 예뻐 보이고 길가의 풀들도 나에게 말을 하는 듯하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가다가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다. 역시 여행에서 휴게소는 필수코스다. 휴게소의 먹거리들이 뭐가 있는지 한참을 둘러보는데 휴게소의 중앙에 웬 학생들이 모여있다. 그것도 교복을 입고서.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아마도 인근 지역의 학생들인가 보다. 봉사활동을 위해서 나온 모양이다. 인솔하는 선생님과 함께 목소리를 높이며 소리를 지른다.


 "여러분들의 관심이 한 생명을 살립니다!"


 여행 중이어서 더위가 날 짜증 나게 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그날은 가만히 있어도 짜증이 날만한 날씨였다. 뜨겁기만 한 것이 아니라 습도도 엄청났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괴로운데 교복을 입고 뭐라고 외쳐야 하는 상황에 처한 학생들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한 연말연시에나 볼 법한 모금활동을 뜨거운 여름에 하고 있었다.  


 그렇게 짜증스러울만한 더운 날씨, 그리고 사람들의 관심도 별로 없는 그 여름의 휴게소에서 참 밝고 상큼한 학생들의 모습에서 청량감이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난 주저 없이 모금함에 만 원짜리 한 장을 넣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난 어느 먼 나라에 있는 힘들어하거나 죽어가는 그 한 생명을 위해서 모금에 참여한 것이 아니다. 학생들이 그렇게 나와서 - 자발적이든 반강제였든 상관없이 - 의미 있는 활동을 하는 자체만으로도 너무나도 기특했다. 


 그렇게 돌아서는데 왠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 친구들이 기특해서 모금을 했지만 정작 그 돈은 그 친구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 말이다. 물론 누군가 모금에 동참하면 기쁨이 있겠지만 활동을 나온 친구들에게도 뭔가 작은 기쁨을 주고 싶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관심 없이 지나가는 상황에서 누군가 좀 더 관심을 가져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렇게 관심 없게 지나가는 것처럼 보여도 어느 누군가는 좀 어색하고 뻘쭘하고 쑥스러워서 그럴 수도 있겠다. 다만 그 친구들에게 세상은 여전히 괜찮고, 살만하고 재미있고, 나름 기억에 남을만한 추억이 될 수 있는 뭔가를 해주고 싶었다.  


 난 그런 차원으로 아이스크림을 선택했다. 선생님까지 8명, 일명 쭈쭈바 8개를 그들에게 선물했다. 사실 별거 아니다. 고작 쭈쭈바 8개일 뿐이다. 모금함이 놓여 있는 테이블 위에 아이스크림을 쏟아 놓고 뒤돌아섰다. 솔직히 좀 민망하고 뻘쭘했다. 대단한 것도 아니고, 그것으로 생색낼 것도 아니었으니까. 아이스크림을 쏟아놓는 순간 친구들은 당황했고 뒤돌아 선 나를 향해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단체로 합창하면서 크게 외쳐주었다. 고작 몇 천 원으로 8명을 기쁘게 해 준 셈이다. 기쁨만 주었을까? 아마도 그 친구들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으로 자리 잡혔을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물론 난 이미 몇천 원에 생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휴게소가 떠나갈 정도의 감사 인사를 받는 호사를 누렸다.  


 사실 이 내용의 글을 쓰면서도 몇 번이고 망설였다. 이게 자칫 자랑이 될까? 잘난 척으로 보일까? 그러면 좀 어떤가? 난 이런 차원이라면 자랑이든 잘난 척이든 할만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더 전염되고 퍼졌으면 좋겠다. 아니, 솔직히 이런 일들이 많지만 어쩌면 잘 알려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스스로 이런 이야기들을 써내려 가는 것이 생각보다는 쉽지 않으니깐 말이다. 


 이런 행동들은 좀 맛 들렸으면 좋겠다. 어디 좋은 일이 없나 찾아보고, 작은 것이라도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거나 추억이 될만한 일들이 없는지 찾아볼 정도로 말이다. 


 대단한 업적으로 스스로 훌륭해지거나 세상을 이롭게 할 만한 흔적을 남길 수도 있다. 그런 기회가 있다면 얼마든지 도전해야 하겠다. 하지만 작은 일들로도 충분하게 훌륭한 삶을 살아낼 수 있고, 또 세상을 충분하게 이롭게 할 수 있다. 어떤 일이든 내가 가치를 부여하기 나름이다. 대단한 일도 하찮게 될 수 있고, 반대로 하찮은 일도 대단한 일이 될 수 있다.


 한번 생각나는 대로 해보자. 경비 아저씨에게 커피 선물하기, 청소 아주머니에게 커피 선물하기, 택배 아저씨를 위한 비타민 음료, 집 앞에 있는 쓰레기 치우기, 동네 주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인사하기 등 셀 수 없이 많은 작고 위대한 일들이 우리에겐 가득하다.


 그렇게 난 오늘도 위대한 삶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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