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늘보 Nov 30. 2022

바다거북이보다 빨리 죽는 우리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꾸 화를 내게 된다면.,

사랑하기 때문에 더 속상하고 더 서운하다. 사소한 것에도 화가 나고 짜증이 난다. 이렇게나 사랑하는 사람인데, 우리는 이렇게 가까운데, 왜 내 마음을 몰라주지? 왜 나를 이해하지 못하지? 정말 속상하고 서운해. 정말 싫어.라는 생각이 들 때, 한 번쯤 떠올려 봤으면 하는 생각을 글로 드린다.


해는 떴다 진다. 영원한 어둠은 없고, 영원한 빛도 없다.

대기층을 뚫고 영원히 올라가는 오르막길도 없고, 지구 핵까지 이어져있는 내리막길도 없다.

만남 없는 이별은 존재할 수 없고, 어떤 생명이든 시간의 흐름에 따른 육체의 헤어짐은 막을 방도가 없다.


끝과 끝에 있는, 완전한 반대의 개념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이 정의들은 사실 '끝과 끝'이 아닌 '다음과 다음'에 더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상반되는 개념이 아닌 순환을 이루는 요소인 셈이다.

어둠이 가면 그다음엔 빛이 찾아온다. 빛은 결국 다시 가고, 다음에 어둠이 찾아온다. 무한 반복이다. 회사원을 예로 들자면, 입사가 있으면 퇴사가 있고, 정신 나간 인간이 나가 환호하면, 또 다른 정신 나간 인간이 들어와 탄식을 자아낸다. 일요일이 끝나면 월요일이 오지만 결국 다시 일요일은 온다. 자연스러운 순환이다.


동이 트지 않는 새벽이 어디 있으랴. 별이 찾아오지 않는 해 질 녘이 어디 있으랴.


나는 때때로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죽음이라는 것도 자연스러운 순환이다. 나는 언젠가 죽게 될 테지.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도 언젠가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시간은 반드시 올 것이다. 그게 언제인지를 모르며 살아갈 뿐 우리는 언젠가 모두 다양한 방식의 이별을 하게 될 것이다. 탄생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도 있는 법이니까.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든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기 때문에 매 순간 후회하지 않기 위한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폭넓게 많은 사람들을 사귀지 않는다. 내 곁을 지키는 내 사람들, 그 적은 인원한테 평생 잘 하자는 생각으로 산다.


가족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길어봐야 앞으로 50년밖에 볼 수 없는 얼굴, 언젠가 세상에서 없어질 내 몸 하나 불태워 사랑해도, 이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만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야 50년이라니, 짧아도 너무 짧다. 어쩌다 사소한 일로 다퉈 화가 머리끝까지 나다가도 이 생각을 떠올리면 거짓말처럼 마음이 사그라든다. 내가 조금 더 희생하고 내가 조금 더 손해 보면서 살면 되지 뭐, 영원히 살 것도 아니고. 증오의 감정으로 서로를 대하기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다. 평생 사랑의 단어만 속삭이며 살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바다거북이는 평균 100년을 산다는데, 우리는 오래 살아봐야 100년을 산다. 바다거북이보다도 조금 살다 죽는데, 이렇게 얼굴 붉히는 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사랑하는 마음이 크기에, 더 가깝다고 여기기에 더 자주 화를 내고 짜증을 내게 된다. 왜 나를 이해해 주지 못하는지 그게 이해가 안 되고 속상하다. 나는 이만큼이나 위하고 사랑하는데 어떻게 나한테는 저것밖에 주지 않을 수가 있나 하는 상실감과 허무함이 화로 발산된다. 하지만, 내가 준 만큼 돌려받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화가 나는 건 아닐까. 상대방은 내가 아닌데, 상대방을 자기화해서 내 멋대로 정의 내렸기 때문에 화가 나는 건 아닐까. 그러나 진실된 사랑은 화가 아닌 미안함으로 끝맺는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미안하다. 가진 모든 것을 내어주고도 더 많이 내어주지 못해 죄스러워하는 부모의 마음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부모는 언제나 뭐가 그렇게 미안한지, 나의 눈물도 미안해한다. 내가 몸 관리를 똑바로 못해서 아프면, 아프게 낳아놨다고 미안해하고, 나 혼자밖에 해결할 수 없는 일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면, 아무것도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한다. 다 큰 내가 무언가 때문에 힘들어하면 과거에 혹시 당신의 언행 때문에 영향을 받은 건 아니냐며 미안해한다. 부모는 마치 사랑의 죄인 같다. 나는 그 마음이 사랑하는 마음의 종착역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 아닌, 사랑하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 이것이 사랑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이유로 화내지 말자. 내가 조금 손해보지 않기 위해서 내는 화라면 더더욱.

인생이 너무 짧다. 부모는 아낌없는 사랑을 주기 위해 자녀를 낳았고, 부부는 평생 사랑으로 시를 쓰기 위해 가족이 되었지 않은가.

언젠가 나도 죽고, 저 사람도 죽는다. 아득바득 이를 갈고 전투에 임해서 남는 게 무엇이란 말인가.


그 사람은 당신이 죽어서도 사랑할 사람이 아니던가.



 




작가의 이전글 엄마는 30년간의 일기장을 태워버리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