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빠르게 다시 이곳에 오게 되었다.
인천공항 제2터미널, 대한항공 일등석 라운지.
처음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의 그 묘한 쾌감은 여전히 남아 있다.
마음속 어딘가에서 은근하게 피어나는 말.
"저, 이번에도 퍼스트 클래스입니다."
물론 실제 행동은 그렇지 못하다.
입꼬리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리고, 어깨에 힘을 살짝 줘보는 정도.
우아함은 언제나 생각보다 어렵다.
아침 9시, 라운지는 조용했다.
몇몇 손님이 커피를 마시고 나가는 사이, 나는 자리를 지키기로 했다.
다시 오기 힘든 기회.
어느새 ‘퍼스트 클래스 마일리지 승객’의 숙명처럼, 이 공간을 가능한 한 천천히 즐기기로 했다.
그때, 익숙한 인물이 들어섰다.
정경화 선생님
단정한 인사, 느린 동작, 눈빛 하나까지 고요한 위엄이 있었다.
품격이란 건 좌석 등급이 아니라 태도에서 나오는 것임을 새삼 실감했다.
괜히 나도 미소를 지어봤지만, 주변에서 내가 뭔가 따라 하려는 티를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다. 흉내에도 마음이 담기면 의미는 생긴다.
음료 코너에는 술이 풍성하게 준비돼 있었다.
이번에는 와인을 고르기로 했다.
라벨도 잘 모르는 채, 병을 들었다 놨다 하다
결국 가장 읽기 쉬운 이름을 골랐다.
Chateau de Lussa.
첫 모금에서 흙내음이, 그다음엔 은은한 과실향이 따라왔다.
그럴듯한 비유가 떠올랐다.
"새벽 이슬 내린 정원처럼."
물론 그런 정원을 걸어본 적은 없다.
그저 와인 한 잔이 내게 준 상상의 결과일 뿐이다.
음식은 여전히 훌륭했다.
갈비탕은 익숙한 맛이지만, 구성은 꽤 다채로웠다.
무언가를 비교하며 먹는 건 별로 좋지 않지만,
문득 ‘이 정도면 특특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의 사치는 화려함보다 ‘아낌 없음’에 가까웠다.
속을 채운 뒤, 잠시 쉬어갈까 싶어 자리에 앉았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회사였다.
평소였다면 짜증부터 났을 타이밍.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만큼은,
“퍼스트 라운지에서 업무 전화를 받는 나”라는 설정이 조금 마음에 들었다.
괜히 받지 않아도 될 전화를 몇 통 더 받어, “네, 그건 이렇게 진행하시고…” 같은 얘기를 나누며
자기만족을 살짝 채우다가, 정작 일은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30분쯤 지났을까.
직원이 조용히 다가와 깨워주었다.
"자몽 주스를 준비해 드렸습니다. 보딩이 곧 시작됩니다."
그 말이 이상하게 따뜻하게 들렸다.
이곳의 진짜 매력은 아마도, 과하지 않은 세심함일 것이다.
주스를 마시고 짐을 챙기며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이번엔 우선 탑승을 제대로 즐겨봐야겠다.’
라운지를 마지막까지 지키다 슬쩍 나가던 예전과 달리,
이번엔 약간은 당당하게 게이트를 향해 걸었다.
퍼스트 라운지에서의 두 번째 경험.
처음보다 어색함은 줄었고, 대신 여유가 조금 더해졌다.
이곳에서 누린 고요한 사치와 작은 허영이,
내 일상에 오래도록 남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