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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지적 작가 시점 Mar 26. 2022

호찌민 푸미흥 필로폰 중독 여대생의 자살 소동

호찌민에 놀러 왔는데... 누군가 음식에 마약을 탔다.

- 경찰영사인지 어떻게 믿어요?

- 신분증 찍어 보내줬잖아요~


- 신분증 사진을 손가락으로 약간 가린 게 의심스러워요.

- 아 진짜, 그만하고 위험하니까 내려오세요~


- 싫어요! 안 내려갈 거예요!

- 에잇, 그럼 그냥 뛰어 내려욧!!!



주 호치민 총영사관에 경찰영사로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015년 11월 어느 일요일 오후.

한인 밀집 거주 지역인 푸미흥(Phú Mỹ Hưng)의 한 호텔 난간에서 한국인 여성이 자살 소동을 벌이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되었다.

해당 사건은 당시 호찌민 경찰신문에도 실리는 등 대형 사건이었다.


현장에 출동해 보니 한 젊은 여성이 호텔 4층 난간에 위태롭게 서 있었다.

호찌민 경찰신문 스크랩 / 호텔 4층 난간에 서 있는 그녀


안녕하세요? 호치민 총영사관에 천현길 영사예요!라고 소리를 쳤다. 그러자, 못 믿겠다며 내 신분증을 찍어서 보내라고 한다. 


신분증을 찍어서 보냈다.

확인했죠? 올라갈 테니 거기 계세요 했더니 내 손가락에 신분증이 약간 가렸다면서 다시 찍어서 보내란다. 다시 보냈더니 그래도 못 믿겠단다.


나야말로 의심이 되었다.

시간 상으로는 술에 취한 건 아니고, 마약에 취한 것 같았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는 상황.


공안, 소방, 인민위원회 등 관계기관이 모두 출동했고, 상황 정리를 위해서 내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에어 매트리스가 설치된 것을 확인한 후, 그녀말을 무시하고 4층으로 부리나케 뛰어 올라갔다.


나를 믿고 난간에서 내려오라고 했더니 내려올 듯하다가 안 내려오기를 반복했다.

그러더니 동양인 말고 서양인을 불러오라고 한다.


필로폰 중독의 대표적인 증상 근거 없는 의심병...

경험칙상 필로폰에 취한 게 분명해 보였다.

나중에 확인 결과, 대학생인 그녀는 여자 친구와 같이 호찌민에 놀러 왔다가 베트남 남자들을 소개받았는데, 그 친구들이 몰래 음식이나 술에 마약을 탄 듯하다.
그 후로 마약에 중독되어 모든 동양인들이 의심스러웠던 모양이다.


덥석 안고 끌어내리든 스스로 뛰어내리게 하든... 그녀를 구출해야 하기에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 아 진짜, 그만하고 위험하니까 내려오세요~

- 싫어요! 안 내려갈 거예요!


에어 매트리스가 설치된 것을 확인했다.


- 에잇! 그럼 그냥 뛰어내려욧!!!


그 순간.

소동을 보고 호텔방 앞에 와 있던 국제학교 선생님들인 미국인 부부가 나더러 조용히 하라며 그녀를 달랜다.

서양인이라 믿을만했는지 그제야 난간에서 내려와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러나 여전히 내가 자신을 지켜 줄 총영사관 경찰영사인지 못 믿겠다고 하여 다 같이 차를 타고 총영사관 내부까지 들어가 내 신분을 확인했다.

다소 안정된 듯한 그녀.

가까운 병원에 입원 수속을 밟은 후, 미국인 부부를 배웅하고 응급실에 누워 있는 그녀를 보러 갔다.


가족 중 여동생과 친하다고 하여 여동생과 통화를 시켰다.

눈물까지 흘리며 대화를 하고는 제정신이 돌아왔는지 나에게 거듭 미안하다고 한다.


퇴원 후, 일단 호텔에 묵게 했다.

생리 중이라고 하여 생리대도 사다 주고는 호텔을 나섰다.

다음 날 오전 항공편으로 귀국하기로 하고 말이다.


다음 날 아침. 

호텔에서 연락이 왔다. 밤새도록 돌아다니고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고.

객실로 올라가 보니 여권을 찢어서 버려 놓았고, 생리대는 안 썼는지 침대 시트는 붉게 물들여놓고...

조용히 귀국시켜 드리려 했는데, 약기운이 아직 남아 있는지 또 의심병이 도졌나 보다.


로비로 같이 내려와 침착하라고 설득을 하려는데, 또 갑자기 한 서양인을 붙들고 살려 달라고 사정을 한다.


Help me... he would rape me... please help me... help me..

도와주세요. 저 사람이 성폭행하려 해요. 도와주세요. 애절하게 부탁을 한다.


영사 신분을 밝히고 그녀가 정상이 아니니 이해해달라고 했음에도, f*cking consul, shut up! 하더니 계속 그녀 말만 듣는다.


호텔 리셉션 직원들도 내가 영사 맞고 그녀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친절하고 완곡하게 설명을 했음에도 연신 f*cking consul, stupid consul 하면서 말을 안 듣는다.

공안들의 강제입원 조치를 거부하며 한동안 대치하였다.


겨우 그녀를 떼어 내었다.


더 이상 단순 안정으로는 한계에 다다랐다.

최후 수단인 강제 입원 치료를 위해 관할 공안 지구대에 출동을 요청했다.

현장에 도착한 공안들과 한동안 대치하였으나, 결국 강제로 구급차에 태워 입원을 시키고 상황이 잠정 종료되었다.



입원 3일 차 퇴원일.

그녀의 안전한 귀국을 위해 보호자의 대동이 필요해 보여 미리 아버지께 연락을 드렸었다.

딸을 위해 기꺼이 생업을 제쳐 두시고 오셨고, 퇴원시킨 그녀를 호텔에서 인계해 드렸다.


그런 나의 노력과 호찌민까지 찾아와 주신 아버지 덕분에 마약 중독 여대생 소동은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연신 감사해하시는 부모님의 격려 말씀과 문자 덕에 그 간 힘들었던 생각이 싹 가셨다.

한국 귀국 후 며칠이 지나서도 감사 인사를 보내주셨다.



<에필로그>

호텔에서 공안이 출동하자 슬그머니 자리를 뜨는 그 자식(?)을 쫓아갔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 물으니 스웨덴이라고 한다.
사과를 하랬더니 여전히 못 믿겠다며 고압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래서... 나도 똑같이
"에이 씨. F*cking Swedish!!"
면전에 대놓고 내뱉었다.
(사실은 대한민국 영사 체면을 생각해서 약간 고개를 돌리고 혼잣말 비슷하게)

이틀 내내 시달렸는데, 저 자식이 괜히 초치는 바람에 더 기분이 상했고,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화가 안 풀릴 것 같았다.

스웨덴 사람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은 아직 바뀌지 않았다.
난 이렇듯 소심함과 뒤끝이 있다.


이전 12화 사형수 이야기 - 호찌민 한인의 베트남 여인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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