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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지적 작가 시점 Jul 19. 2022

마약 하는 내 남편을 신고합니다.

호찌민에서 필로폰에 중독되어 자살 기도하는 남편을 구출하는데...

- 현관문을 뜯고, 창문을 깨뜨리면 손실보상이라고 해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괜찮으세요?
- 네, 다 드릴 테니 어서 뜯고 들어 가 주세요!!
- 부인께서 부담한답니다. 들어가시죠.


그렇게 시작된 호찌민에서의 남편 구출작전!

우리나라 경찰특공대를 방불케 하듯 소방 공안 1개 조는 현관문을 때려 부수기 시작했고, 동시에 다른 조는 8층에서 레펠을 타고 내려와 7층 발코니 창문을 깨고 진입했다.


그러나... 마약에 취한 남편은 이미 다른 곳으로 피신한 상황이었다.



"남편이 마약을 하는데 신고할 수 있을까요?"


2018년 6월.

한국에서 명품샵을 운영한다는 40대 중반의 여성 A씨가 총영사관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늦은 나이에 결혼한 남편 B씨가 호찌민에서 사업을 하는데 필로폰에 중독되어 신고하고 싶다고 한다.

남편이 마약을 한다 해도 숨겨주는 게 인지상정일 텐데, 오죽하면 그럴까 싶어 내막이 궁금해졌다.


- 남편을 신고하신다는 말씀이신가요?

- 네, 마약에 중독되어서 의처증 같이 전화를 안 받으면, 끊임없이 카톡을 해대고 어떤 놈이랑 같이 있느냐며 온갖 욕설을 퍼부어서요.

- 그리고 얼마 전에는 저 몰래 술에 마약을 탔었다고 하길래 경찰서 가서 자진해서 검사까지 받고 왔거든요.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네요. 감옥에 넣어서라도 마약을 끊게 하고 싶어서요. 어떻게 신고해야 하는 거죠?

(검사 결과, 음성으로 확인되었다.)


통상 설명하듯이 베트남 공안에 고소장을 직접 제출해야 하고, 절차는 안내해 드리겠다고 했다.

나중에 호찌민에 온다고 했는데, 며칠 후 저녁...

호찌민에 와 있다며 급작스레 연락이 왔다.


남편이 마약에 취해 제정신이 아닌 채로 망치를 휘둘러 생명의 위협을 느껴 짐도 못 챙기고 몸만 빠져나와 호텔에 피신해 있다고 한다.

남편의 보복이 두렵다며 신변 보호까지 요청했다.

한국 경찰이 하듯이 신변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은 곳이라 마음이 다급해졌다.


"이곳은 공안이 당장 신변 보호를 해주지 않아서요. 남편 연락받지 마시고, 일단 호텔에서 나오지 말고 계세요!!"


마약을 끊으라고 설득하기 위해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며칠 전 호찌민에 와서 같이 머물렀으나, 결국 공포에 질려 뛰쳐나온 거였다.

남편을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이 느껴지면서 한편으로는 말도 안 통하는 외국에서 혼자 도망쳐 나와 무섭고 두렵기도 할 텐데 상당히 냉정하고 침착한 여성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고소 절차만 안내해서는 안될 것 같아 다음 날 공안 지구대에 동행하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B씨에게 연락을 했다.

추가 범행을 예방하기 위해 신변 보호 요청이 있었음을 알리고, 부인의 짐을 총영사관으로 가져다줄 것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 경찰영사면 다입니까? 왜 남의 가정사에 개입을 합니까?

- 저는 집사람을 사랑한 죄밖에 없습니다.

- 왜 제 말은 안 믿고 집사람 말만 믿습니까?

 

등등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말만 해댔다.

가정폭력도 범죄임을 각인시키고, 부인의 신변 보호 요청에 기하여 조력 중임을 밝히자 순순히 짐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전화를 끊고 몇 분 후, A씨로부터 다급하게 전화가 왔다. 남편이 영상통화를 걸어와 왜 총영사관에 신고했냐고 하면서 죽어버리겠다고 목을 매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그러면서 빨리 남편을 제지하고 구출해 달라고 한다.


마약 중독자라 할 지라도 B씨 또한 보호해야 할 재외국민이기에 자살을 결행하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A씨를 대동하고 현장으로 향하면서 공안 지구대에 구조를 위한 출동을 요청했다.

아파트 앞에 도착하니 공안 일개 부대가 온 듯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고가 사다리차가 출동했고, 해머, 망치, 빠루, 로프 등 각종 연장과 장비를 들고 있었다. 복장이나 장비가 우리나라만큼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준비를 철저히 하고 왔다.


이곳에서 처음 시도해 보는 일을 하기 위해 A씨에게 양해를 구했다.


- 사모님의 뜻이 그러하니 집 안에 있는 남편을 구해달라고 공안에 요청할 겁니다.  

- 다만, 손실보상이라고 해서 강제로 문을 개방하면서 망가진 부분은 사모님께서 부담을 하셔야 합니다. 괜찮으시겠어요?

- 네, 다 드릴 테니 어서 뜯고 들어가 주세요!!


A씨의 의견을 전달하자마자 공안들은 일사불란하게 구출 작전 시작했다.


쿵쿵, 퍽퍽, 찌~익... 현관문을 강제 개방하기 시작하였고...

동시에 와장창창... 쨍그랑... 레펠을 타고 내려온 공안이 발코니 창문을 깨고 진입을 했다.

잠긴 현관문을 강제 개방하는 공안 / 강제 개방된 현관문 / 발코니로 진입하여 깨진 창문 파편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공안을 따라 내부로 진입을 했다.

거실 천장에는 목을 매려 한 줄만 덩그러니 달려 있고, B씨는 없었다.

천장에 줄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거실 / 잠긴 방문을 강제 개방하는 공안 / 강제 개방한 방문


잠겨 있는 방 안에 B씨가 있을 수도 있어 방문까지 강제 개방을 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누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침대 프레임을 뜯어서 막아놓고, 문에는 누가 들어오나 보려 했는지 구멍을 뚫어 놓은 상태였다.

근거 없는 불안함, 의심... 그리고 여기저기 남겨진 흔적으로 마약 중독 상태임을 알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진통제로 쓰이는 마약 / 필로폰 희석 시 사용했던 앰플 / 필로폰 주사를 위한 알코올 솜


B씨에게 구출하러 간다고 전화를 했었는데, 마약 투약 사실이 드러날까 봐 도망친 듯했다. 지인들을 수소문해서 B씨가 은신한 곳을 파악했다. 공안과 은신처를 수색했다.

간발의 차이로 또 다른 곳으로 피신했다고 한다.

이 정도면 당장 자살하거나 신변의 이상이 생길 사안은 아니라는 판단이 들어 한국인 구조를 위해 고생해 준 공안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일단 철수했다.


이제 집주인과의 보상금 담판이 남아 있었다.

그 집은 B씨가 렌트하여 살던 집으로, 베트남인 50대 여자 집주인에게 보상을 해야 했다.


5,000만 동(250만 원) 상당의 견적이 나왔는데, 더 받으려는 고집 센 집주인과 만만치 않은 A씨의 기 대결이 팽팽했으나, 결국 적정선에서 합의가 되었다,


B씨가 도주했다고는 하나, A씨에게 추가 위해를 가할 수도 있는 상황.

신변 보호를 지속할 수 없어 일단 A씨를 떤선녓(Tân Sơn Nhất) 공항까지 배웅하여 출국시켜 드렸다.


다음 날. B씨 선배 K씨의 전화가 왔다.

경찰영사인 내 명성(?)을 익히 들어 알고 있다며, 며칠 후 자진 귀국시킬 테니 공안을 통해 찾지 말아 달라고 한다.

마약 투약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베트남에서 마음 편히 마약도 하고 자기 세상처럼 살았는데, 막상 집까지 쳐들어와 문 뜯고 그 난리를 쳤으니 겁도 났으리라...


재외국민의 안전이 우선이므로, K씨를 믿고 소재 파악을 보류하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한국 수사팀에 공조수사를 요청해 두었다.

B씨는 며칠 후라고 위장을 해놓고는 바로 밤 기습적으로 귀국을 했다. 그러나, 그보다는 우리 경찰이 한 수 위다. 수사팀은 특수 수사기법으로 항공기 탑승을 미리 인지했고,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체포하여 마약 투약 및 협박 등 혐의로 구속을 했다.


호찌민에서의 마약 중독 남편의 자살 기도 소동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A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더 이상은 못 버틸 것 같아 며칠 전 수형 중인 B씨와 관계를 정리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때 감사했던 내가 떠올라 다시 한번 감사 인사차 전화를 한다고...


내가 오히려 감사했.

고마운 마음이야 다들 느끼겠지만, 그걸 잊지 않고 표현하기는 쉽지 않으니 말이다.

먼 곳 호찌민까지 와서 엄청난 경험(?)을 했던... A씨의 사업 번창과 행복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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