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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지적 작가 시점 Apr 13. 2022

맞아 죽을 뻔한 한인 구출 작전

겁도 없이 떤선녓 공항 보안요원을 폭행했다.

주 5일제 근무라고 하나, 주말에도 경찰영사는 stand- by 상태다.


오전부터 실무관이 연락이 왔다.


"영사님, 떤선녓(Tân Sơn Nhất) 공항 안보국에서 전화가 왔는데요. 한국인 김 모씨가 공항에서 난동을 피워 조사 중이라고 합니다."


공항 출국장에서 지시에 따르지 않고, 보안요원 멱살을 잡는 등 폭행을 했다고 한다.


공항 안보국에 연락해서 김 씨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폭행은 안 하고 욕설 몇 마디만 했을 뿐인데, 보안요원들에게 둘러 싸여 족히 40대를 맞았다며 나중에 변호사를 선임해서 대응을 하겠다고 한다.

상의는 다 찢기고, 얼굴과 이마에 피멍이 들어 있었다.


김 씨가 영사 조력을 요청하지는 않았으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일단 조사과정을 지켜보고 특이사항이 있으면 연락을 해달라고 했지만, 영 마음이 불편했다.

'현장에 나가봐야 하나...' 고민하던 중에 실무관으로부터 카톡으로 동영상 하나가 전송되었다.


그럼 그렇지, 절대 보안요원들이 함부로 외국인을 때릴 리가 없는데...


이건 뭐 완전히 동네 양아치 수준이다.

제복을 입은 보안요원의 목을 밀쳐내고, 무시하는 듯한 태도에, 더 나아가 정모를 낚아채서는 휙 던져 버린다.

그냥 혼자 두어서는 어떤 난관에 봉착할지 뻔히 보였다.

공항으로 출동했다.

김 씨는 공항 보안요원의 목을 치고, 멱살을 잡고, 정모를 휙 낚아챈다.
낚아챈 정모를 앞뒤로 휘휘 흔들다가는 홱 던져버렸다.


공항 안보국 사무실에 도착하니 부소장과 몇몇 간부들이 맞이를 한다.

 씨 접견을 하기도 전에 그의 만행을 보여 주려 동영상을 재생하려 한다.

이미 다 보았다고 손사래를 치고는 김 씨를 만났다.

얼굴 곳곳이 긁혀 있고, 맞은 듯 피멍도 들어 있었다. 상의는 다 찢겨 있고...


총영사관 천현길 경찰영사입니다.

소개를 하고는 경위를 들어 보니...


미안해하거나 잘못했다는 기색 없이 자기는 전혀 잘못이 없는데, 시쳇말로 다구리를 당했다는 거다.

보안요원들에게 얻어터지고 밟히고 맞아 죽을 뻔했다고.

그리고는 당시 동영상이 있는데 그걸 봐도 자기는 잘못한 게 없고 폭행한 게 없다는 거다.


이쯤 되면 나도 친절 모드 해제닷!


그게 폭행입니다.

어떻게 보안요원 목을 치고, 모자를 낚아채서 집어던지는 행위가 폭행이 아니라는 겁니까!

보안요원들이 때린 게 먼저인지 저 장면이 먼저인지 물으니 저 장면이 먼저란다.

대충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토리가 딱 그려졌다.



김 씨는 어머니를 배웅하러 출국장에 갔는데, 이를 본 보안요원이 나가라고 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안전하게 출국하는 거 보고 나간다고 했음에도 계속 따라오면서 나가라고 하길래 욕을 하면서 꺼지라고 했을 뿐이라고.

호찌민 떤선녓 국제공항은 규모가 협소하여 규정상 출국장에 여행객만 들어갈 수가 있다. 그래서 여행객인 것처럼 들어가서 배웅을 하기도 하는데, 보안요원에게 걸리면 바로 퇴장해야 한다.


일단 그 출국장에 들어간 것이 공항 내규를 어긴 것이고, 보안요원에게 위해를 가한 건 위법 행위이기 때문에 그에 따른 처벌은 감수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이후 보안요원들에게 폭행당한 부분은 문제 삼겠다면 최대한 도와주겠다고 했다.


이렇게 도움을 드리면 되겠냐고 했더니 국민이 다구리를 당했는데 왜 그렇게 밖에 못 도와주냐면서 큰소리로 따지고 든다.

자기는 공항에 들어가면 안 되는지 몰랐다고, 그게 폭행이냐고, 폭행하지 않았다고 계속 되풀이한다.


더 이상 논쟁은 무의미하고, 나도 화를 누그러뜨리고 재외국민 보호를 위한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목소리 낮추고 내 말을 잘 들으라고 했다.

김 씨도 억울한 면이 있겠으나, 범법 행위까지 정당화될 수가 없다.

다만, 보안요원 측의 진압 방식도 문제가 있어 보이니 내가 딜을 해보겠다고...


김 씨를 처벌하지 않는 대신 우리도 보안요원 측의 과잉진압을 문제 삼지 않겠다는 방향으로 말이다.


그러면, 김 씨도 베트남 거주에 문제가 없을 것이고, 보안요원들의 진압도 외교 문제로 비화되지 않아 좋을 듯해 보였다.

그렇게 해 보려 하는데 동의하냐고 했더니 동의한다고 한다.


부소장은 김 씨가 공항 내규 위반, 퇴거 불응, 보안요원 목을 친 행위, 더 나아가 정모는 권위의 상징인데 그걸 휙 던져 버린 행위 등등 문제가 심각하다며 강경한 태도를 유지했다.


대응을 시작했다.


- 말씀 잘 들었다.
- 먼저 김 씨를 대신해서 공항 내규를 어긴 점 사과드린다.

- 저는 한국사람이라고 무조건 편들지 않는다.
- 잘못된 부분은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한다.
- 하지만, 아들로서 어머니 배웅을 위해 그랬던 점을 참작해 달라.

- 폭행당한 보안요원에게는 김 씨가 직접 사과하도록 시키겠다.
- 그러나, 얼굴이 저렇게 되기까지 과잉 진압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 이 일은 한국인을 대표하는 영사 입장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

- 따라서, 최종적으로 제안한다.
- 김 씨를 훈방시켜 주면 대신 보안요원 측의 과잉진압도 문제 삼지 않겠다!


부소장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내가 한국인 편만 들 줄 알았는데, 지켜보니 혼내기도 하는 것을 보면서 일을 참 객관적으로 하고 믿음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사안은 경찰로 인계해서 형사처벌까지 갈 수도 있고, 자신들의 행위는 반항을 제압하는 정당한 행위이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선뜻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을 사야 했기에 공감을 하기로 했다.

제복의 중요성을 안다, 예전 한국 집회에서 경찰서장의 정모를 낚아챈 피의자를 내가 구속시켰다, 그렇듯 김 씨의 행동이 얼마나 권위를 떨어뜨리고 모욕을 줬는지 안다고 공감을 해 주었다.

당시 김 모씨는 구속영장이 한차례 기각되었으나, 서울경찰청 각 부서 베스트 수사팀원들로 구성된 수사 TF팀의 보강 수사 끝에 구속되었다. 나는 그 팀의 일원이었다.


게다가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 교민들과 방문객들에게 공항 내규를 준수하도록 홍보하겠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나의 제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재차 묻자 제안을 받아들여 훈방을 하겠다고 한다!

김 씨를 돌아 보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네! 좋습니다!" 한다.


그 보안요원을 불러 달라고 했고, 김 씨더러 사과를 하라고 했다.

김 씨는 흔쾌히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했고, 보안요원은 새 티셔츠를 하나 가져와서는 갈아입으라고 준다.


그렇게 훈훈하게 사건을 마무리 짓고, 김 씨를 사무실에서 데리고 나왔다.

김 씨는 아까의 그 호기롭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순한 양이 되어 "고맙습니다~" 말 한마디 하고는 휙 가버렸다.


역경에 빠진 한국인을 구해낸 뿌듯함을 느낀 하루...

오늘도 다이내믹한 경찰영사의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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