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초반인 지금, 과거 19~20세기의 흘러간 영웅담일 것만 같은 앵글로 색슨과 러시아 간의 그레이트 게임의 한 가운데에 우리는 다시금 서있다. 유라시아의 지배권을 놓고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직접 충돌하는 이 역사적 이벤트는 현재 유라시아의 서쪽 끝에서 영미의 지지를 받는 우크라이나를 러시아가 침공하면서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고, 유라시아의 동쪽 끝인 한반도와 일본 열도 역시도 그레이트 게임의 영향권에 이미 포섭된 상황이다.
이러한 작금의 상황에서 2022년 7월 8일 아베 전 일본 총리가 백주 대낮에 피격 및 암살 당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보다 하루 전인 2022년 7월 7일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의 퇴임이라는 훨씬 덜 충격적인 사건이 먼저 벌어졌다. 반복되는 여성 추문과 6명의 자녀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영국 총리는 이미 사생활이 난잡한 것으로 유명하였지만, 총리 관저에서 술 파티를 벌였다는 이른바 ‘파티 게이트’로 인한 사임 압박을 이번에는 이겨내지 못했던 것이다. 다행히도 영국 총리의 사임 발표 바로 다음 날 공교롭게도 아베 신조의 피격사건이 일어나 아주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시선에서 사라진 것은 보리스 존슨의 입장에서 불행 중 다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세번째(네번째??) 결혼을 꿈꾸며 총리 관저에서 술파티를 벌이던 보리스 존슨의 상태가 얼마나 한심하든지 간에, 보리스 존슨은 데이비드 캐머런의 등에 칼을 꽂으면서까지 브렉시트 찬성파로 전향하여 영국을 쇠락하는 유럽에서 탈출하도록 이끌었으며, 지금까지도 젤렌스키와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게다가 현재 진행되는 그레이트 게임의 한 가운데에서 보리스 존슨과 아베 신조는 과거 영일동맹을 방불케 하는 맹방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보리스 존슨과 아베 신조가 사실상 거의 동일한 시점에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했다는 것이 단순히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라는 의심을 해 보는 것이 결코 비웃음을 살 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양국의 지도자가 동시 퇴진하는 상황의 엄중함을 더욱 뒷받침하는 것은, 러시아가 유럽을 침략하는 작금의 비극이 독일의 메르켈 총리의 퇴임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메르켈 총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친러파로 푸틴과 매우 우호적인 관계를 가져왔으며, 푸틴 역시도 독일 국회에서 유창한 독일어로 연설하면서까지 독일에 대한 존중을 피력하였었다. 그러나 메르켈의 퇴임 이후 유럽은 서서히 반러시아 기조로 전환하기 시작하였다. 심지어 작년 11월 당시 중립국이었던 핀란드에 F-35A가 배치되고 전쟁의 그림자가 짙어지는 상황을 보면서, 지도자의 진퇴가 역사의 흐름에 미치는 영향이 지극히 엄중함을 재삼 인식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와 마찬가지로, 21세기판 그레이트 게임의 핵심 플레이어인 영국과 일본의 지도자가 퇴진하면서 영국과 일본의 외교 및 군사 정책에 어떤 형태로든 변화가 있을 것을 예상하는 것은 지극히 논리적인 판단이다. 그리고 이에 따라 이른바 서구와 비서구의 양진영의 전략적 대응에까지 큰 변화가 나타나게 될 것은 무척이나 자명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우선 충격적인 사태를 겪고 있는 일본의 나아갈 바에 대해서 나름의 추측을 해 보겠다. 거두절미하고 핵심만 말하자면, 일본은 아베의 사망 이후 한국과의 우호관계 회복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될 것이며, 위안부 사태 등에 대한 극적인 합의를 이루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화해무드를 기반으로 한미일 군사협력체의 구성 또는 더 나아가 한일동맹까지도 시도하려고 할지 모른다. 그리고 이렇게 회복된 한일 우호관계는 결국 미국과 한국의 양해 하에 일본 재무장을 실현 가능케하는 기반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심지어는 이 과정에서 일본의 핵무장까지도 실현될 수도 있으며, 이는 결국 일본이 미국과 함께, 또는 미국을 대신하여 중국과의 무력충돌을 감당하게 되는 운명에 빠지게 될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모두 양안전쟁이 현실화할 것이라는 가정 하에서 예견되는 것인데, 의외이겠지만 중국에 극한 대립각을 세우던 아베가 죽었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향후 양안전쟁의 발발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예측이 가능한 근본적인 이유는 아베가 한일 관계 회복의 최악의 걸림돌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아베가 추진하던 일본 재무장은 중국과의 군사적 대립을 상정하는 미국의 입맛에 잘 맞는 정책이지만, 그것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한일관계 회복과 그에 입각한 한국정부의 일본 재무장에 대한 양해나 협력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데, 정작 한일 관계를 망치고 있는 것은 아베와 이른바 아베파의 행보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에는 한국의 문재인 역시도 반일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어 미국은 아베의 한국 때리기 정책이었던 반도체 핵심소재 금수 조치까지도 오히려 암암리에 지원하던 한심한 상황이었지만, 한국에 보수 우파인 윤석열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아베의 반한 정책은 이제 미국에게는 제거해야 하는 걸림돌에 불과하게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현 기시다 총리가 한일 관계에 있어 비둘기파로 알려져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미국의 입장에서 현재 일본 최고의 실권자인 아베 신조는 제거되어 마땅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 얼마 전까지의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제 아베 신조가 사라진 이상, 미국은 본격적으로 일본 재무장을 독려하게 될 것이고, 그 목표를 위한 첫번째 과업이 한일 관계 회복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대중국 강경노선을 노골화하던 아베가 사라짐으로서 오히려 양안전쟁의 현실화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나중에 설명할 기회가 있겠지만, 양안전쟁을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으로 판단된다.
다음 글에서는 보리스 존슨과 아베 신조의 퇴진에 따른 영국의 대외 정책 변화, 그리고 가능하면 미국, 중국, 러시아 등의 대외 정책 변화까지 함께 다루고자 한다. 다음 글을 읽기 전에 절대 잊어서는 안될 것은 영국은 절대로 단순히 작은 섬나라가 아니라, 과거나 지금이나 러시아를 필두로 한 유라시아의 대륙세력을 패퇴시킬 수 있는 사실상의 패권국가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과거 그레이트 게임의 핵심 백본 중 하나이었던 영일동맹의 21세기 버전이 바로 한미일 동맹이라는 사실도 재삼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