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몸을 이끌고 엘리베이터에 타려던 순간, 9층 남자와 마주쳤다. 평소에는 목례 정도만 주고받았던 사이였지만, 이번에는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우물쭈물한 표정이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저녁시간에 층간 소음 때문에 불편하지 않으세요?" 그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순간 놀랐다. 나는 그동안 수년간 층간 소음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대체 원인이 누구인지는 몰랐기 때문이다.
"네, 저도 많이 시끄러워요.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가 많죠."
그날 그동안 마음에 묵혀두었던 층간 소음 문제를 거론하게 되었다. 6년 전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안면을 튼 이후. 처음으로 대화를 나눈 순간이었다. 나보다 한층 위인 9층 버튼을 누르는 그 남자에게 가볍게 인사를 했고 그에게 얼마 전에 새로 이사를 왔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우리는 6년 동안 덮어주었던 층간 소음 문제를 논의하며 함께 해결해 보기로 결의를 다졌다. 서로 연락처를 교환했고 그날 저녁, 9층 남자의 집에서 문제의 소리를 확인하기로 했다.
그날 밤, 나는 그의 연락을 받고 9층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그는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나를 맞이했고 천장을 가리키며 소리를 들어보라고 힘주어 말했다.
"들어보세요. 확실히 위층에서 나는 소리예요."
하지만 나는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이상하네요, 여기는 조용한데요?" 내가 말했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이 소리는 확실히 10층에서 나는 것 같아요."
나는 턱을 치켜들고 귀를 기울였지만, 위쪽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의아해하며 고개를 가로젓자, 그는 다소 실망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이상하네요. 저는 잘 들리는데…”
나는 다시 한번 소리의 원인을 찾기 위해 천장을 올려다보며 귀에 신경을 집중시켰다. 그때 윗집 남자가 거실을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쿵 쿵 쿵’ 그의 발소리가 내 귀에 선명하게 발자국을 남겼다. 순간 내가 매일같이 시달리던 층간 소음의 주범은 바로 그 남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나는 우선 남자에게 '위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없다'라고만 말했다.
“이상하네요. 올라가 보죠.” 그는 여전히 납득하지 못한 표정으로 윗집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10층으로 올라갔다. 위쪽은 비쩍 마른 노인이 혼자 살고 있었다. 노인은 초저녁부터 자고 있었던지라 한참 만에야 문이 열렸다. 내가 사정을 설명하자 마른 장작 같은 노인은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이어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혼자 살아서 그런 소리가 날 리가 없소만, 유감이오. 게다가 나는 초저녁이면 잠자리에 드는데, 대관절 누가 그런 소음을 냈다는 거요?"
내 생각도 같았다. 노인을 기다리는 동안 현관문 너머는 침묵의 늪이나 다름없었다. 노인과 나는 서로 묘한 표정을 교환하며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9층 남자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노인을 바라봤다.
남자는 여전히 납득하지 못한 얼굴로 따지듯 말했다. “그래도 가끔은 들려요. 제가 직접 들었으니까요.”
노인이 뻣뻣한 수염이 박힌 턱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글쎄, 저는 거의 움직이지 않아요. 오히려 저는 아래층에서 소리가 많이 들려서 힘들어요."
그 말에 나는 9층 남자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행동이 문제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10층 노인에게 소음 문제를 지적하며 불만을 배설했다.
"아랫집에서 소리가 난다니요?! 세상에, 그건 정말 심각한 문제로군요!" 빈정거리는 말투로 따지고 들었다.
나는 그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9층 남자는 자신의 발뒤꿈치가 얼마나 큰 소음을 유발하는지 전혀 자각하지 못한 채, 오히려 다른 집의 작은 소음을 문제 삼으며 민감하게 굴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끝내 발소리를 지적하지 못했다. 자신이 잘못했다고 순순히 인정할 리가 없어 보였다. 나는 모든 사실을 파악했지만 그자를 설득시킬 자신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노인에게 미안함을 표하며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할배요, 부디 용서하소서). 우리는 그렇게 별다른 소득을 거두지 못하고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고질적인 층간 소음에 시달리고 있다. 전과 다른 점이라면 이제는 그 소음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9층 남자는 여전히 다른 이웃들에게 층간 소음 문제를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그의 가정 방문에도 가담하지 않는다). 그저 도를 닦는 심정으로 조용히 살아갈 뿐이다.
오늘도 육중한 발망치 소리 속에서도 조용히 나만의 평화를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가끔 9층 남자를 만날 때면, 그저 소리 없이 목례를 하며 지나칠 뿐이다. 우리는 여전히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숨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