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르코니 Jun 13. 2024

#4 회사 내 정체불명의 간식 도둑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지 3개월째, 회사 생활은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에 점점 지루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매주 금요일마다 회의비로 오예스나 몽쉘 같은 다과를 사 오는 일이 나름의 활력이 되고 있었다. 사무실 사람들에게도 작은 즐거움을 주는 일이었다. 내가 골라온 다과는 언제나 인기 만점이었다. 내가 탕비실을 관리하기 전에는 보기만 해도 입냄새가 날 것 같은 믹스 커피와 모텔 협탁에서 수년간 방치되어 있었을 법한 커피 과자만 채워져 있었다. 그로 인해 내가 사 온 간식은 매번 빠르게 사라졌고, 모두가 행복해 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그 다과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 다과가 사라졌을 때는 단순한 해프닝으로 여겼다. 아마도 누군가가 배가 고파서 왕창 먹었겠지. 하지만 다과뿐만 아니라 냉장고 속의 크리스피 도넛 같은 것까지 사라지는 일이 연속으로 발생하자, 사무실에는 이상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사무실 사람들은 은밀히 다과 도둑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오늘도 내 간식거리가 없어졌어!" 월요일 아침, 선배인 박영국 대리가 말했다. 모두가 그 말을 듣고 얼굴을 찡그렸다.

 "도대체 누가 우리 과자를 거덜 내는 걸까?" 한숨 섞인 소리로 팀장님이 물었다.


 나는 매주 간식을 사 오는 '간식 담당자'로서 도둑을 잡아야겠다는 충성스러운 사명감이 불타올랐다. 그래서 나는 은밀히 도둑을 잡기 위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첫 번째 계획은 간단했다. 탕비실에 알리에서 구입한 작은 카메라를 설치해 두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누가 간식을 털어가는지 쉽게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카메라를 설치한 첫날, 여전히 과자가 통째로 사라졌지만 카메라는 작동하지 않았다. 배터리가 나간 것인지, 아니면 도둑이 눈치채고 메모리카드를 초기화하고 끈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실망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다음 계획은 조금 더 복잡했다. 이번에는 다과를 좀 더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두기로 했다. 그러니까 숨겨두는 것이다. '아예 치워둔다면?' 그건 내 자존심이 허락지 못했다. 범인을 색출해 싹을 잘라야 한다고 다짐하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어쨌든 다과를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두면 도둑이 심리적인 동요가 생겨 쉽게 먹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월요일 아침, 철제 캐비닛 한구석에 숨겨둔 다과는 역시나 사라졌다. 누군가가 분명히 다과의 소재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나는 도둑이 눈치를 챘다고 확신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써야 했다. 이번에는 간식 상자에 앞에 장부를 마련해 두기로 했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 '어느 좆소기업의 현실'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영감을 얻은 아이디어였다. 그 회사에서는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정수기의 장부에 이름과 소속을 기재해야만 비로소 믹스커피와 종이컵을 사용할 수 있었다. 나는 장부 위에 "간식을 가져가시는 분은 이름을 남겨주세요."라는 메시지를 적어두었다. 도둑이 이 글을 보고 순순히 이름을 남길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한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장부의 힘을 믿어보자.


 월요일 아침, 장부를 열어보니 놀랍게도 이름이 적혀 있었다. '박영국'이라는 글씨였다. 나는 그 이름을 보고 혼란스러웠다. 박 대리님이 도둑일 리는 없었다. 분명 누군가가 장난을 친 것이다. 이제 사무실 사람들은 모두가 한 마디씩 거들었다.


 "누가 장난을 치는 건가 봐요."

 "아니면 누군가 밤에 몰래 들어오는 건가?"


 사무실은 점점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도둑을 잡으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지만, 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까지 아껴두었던 작전에 돌입했다. 이번에는 내가 직접 밤을 새우며 도둑을 지켜보기로 했다.


 금요일 밤, 나는 사무실에 남아 몰래 도둑을 기다렸다. 시계는 밤 11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나는 커피를 마시며 졸음을 쫓았다. 갑자기 사무실 문이 살짝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숨을 죽이고 도둑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도둑은 조심스럽게 탕비실로 들어갔다. 나는 깜짝 놀랐다. 도둑은 다름 아닌, 회사의 사장님이었다. 사장님은 다과 상자로 다가가 조용히 엄마손파이를 꺼내 먹기 시작했다. 나는 충격을 받았지만,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지 서지 않았다.


 결국 나는 사장님 앞에 슬그머니 나타났다. "사장님, 이 시간에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사장님은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쫀득쫀득 참 붕어빵을 입에 물고 있었다. 그는 잠시 당황하더니 결국 쉰소리를 내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아, 이거 참. 들켰구먼. 사실 나는 밤에 배가 고파서 잠을 못 자겠더라고. 그래서 매일 밤 군것질을 좀 하러 왔지."


 사장님의 고백에 나는 어이없었다. "그럼, 여태껏 많은 사람들이 도둑, 아니 과자를 들고 가는 사람을 잡으려고 고생한 건 알고 계셨나요?"


 사장님은 미안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는 있었지. 하지만 그만두기에는 간식이 너무 맛있었어."


 사장님의 차분한 자백을 들으며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렇게 사무실의 다과 도둑 미스터리는 해결되었지만, 우리는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는 사장님을 위해 따로 다과를 준비하기로 한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나는 탕비실에 약속해 두었던 서랍 깊은 곳에 새로운 다과 상자를 올려두고 쪽지를 남겼다. "이 간식은 사장님을 위한 것입니다. 밤에 출출하시면 얼마든지 꺼내 드세요." 그리고는 동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장님의 비밀을 지켜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배려였으니까.


 그 이후로 다과가 사라지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사장님은 매주 금요일 밤마다 조용히 자신의 몫의 간식을 거덜 냈고, 사무실 사람들은 당부족 걱정 없이 티타임을 즐길 수 있었다. 사무실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그리고 나는 다과 도둑을 잡기 위한 이 모든 과정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며, 사무실에서 있었던 작은 소동을 즐겁게 회상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3 자네 해안경비대 출신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