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시간은 중요해
5월의 어느 한산한 월요일 밤, C와 나는 갑자기 들이닥친 크루즈 승객들로 인해 10시를 넘어 퇴근한다. 문 닫을 시간이 훌쩍 지나 안절부절못하는 나와 지나치게 평온한 C. 이제 문을 닫을 시간이 아니냐는 내 말을 한 귀로 흘리던 그녀는 내가 계산대를 넘겨받아 신들린 한국인의 일처리를 보이는 동안 손님들을 무르고 가게를 마감했다. 퇴근시간을 45분 넘긴 우리, 집을 향하는 길목에서 내가 물었다.
"시간표에 추가로 일했다고 적어야겠네요, 하하."
사실 그 말은 문을 닫는 중간에도 했다. 이왕 잔업한 거 수당이라도 받자는 의견에 동의를 구하는 나만의 화법이었는데 정작 C는 시큰둥했다.
"글쎄, 우린 마감할 때 정해진 시간보다 15분 일찍 닫잖니. 사장님이 배려해주시는 만큼 우리도 성의를 보인 거지."
순식간에 돈만 아는 철부지가 된 나는 적당히 대답하고 얼굴을 붉히며 집으로 향했다. 분명 캐나다는 업무와 관련해 선진문화를 자랑한다지만 그때까지 여기서 느낀 건 으쌰 으쌰, 우리 회사 최고, 사장님이 좋으면 나도 좋아- 등의 분위기였기 때문에 고개를 갸웃하면서.
그리고 다음 날, 사장님은 너무 좋아라 하시며 수고의 말을 건네시고 그러셨다. 둘 다 너무 고마우며 (생략) '한 시간씩 더 일한 걸로 칠 테니까' 그렇게들 알라고.
이 사건은 우리의 모든 업무시간을 한 시간씩 뒤로 늦추었을 뿐만 아니라 비로소 'political'하다는 이곳의 화법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폴리티컬하단 표현은 다른 사람에게 차별적 언행을 삼간다는 의미에 더 가깝지만 다들 자조적으로 자신들의 완곡어법을 이렇게 지칭하니 같은 표현을 쓰기로 한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요즘 유행한다는 '귀족 영애 화법'이랄까.
돌려 돌려 혼날래?
또 C와 함께 한 어느 화요일. 마감까지 한 시간밖에 남지 않은 데다가 부쩍 친해진 그녀가 은근히 기피하는 재고 진열을 하자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게으름과 의리 대 양심 사이에서 고민하다 그냥 가만히 두기로 결정을 내려버린다.
간과한 사실 하나, 아침 당번은 사장님이었던 것. 오후에 출근한 나는 열심히 물류를 정리하다 갑작스러운 부름을 받고 구석으로 향한다.
어제저녁에 바쁘지 않았니? (Wasn't it busy yesterday?)
그럭저럭 답하던 나는 반복되는 질문에 진의를 깨닫는다. "그렇죠, 바쁘진 않았지만 닫기 한 시간 전까지 졸업식 끝나고 들른 사람들에다 불꽃놀이 위치 착각해서 온 사람들 때문에 한산하지도 않았어요~ 추워서 그런지 옷을 많이 사갔네요..." 하며 변명을 늘어놓다 그냥 sorry라고 말했다.
음... 오늘 아침에 옷 30여 개를 채워 넣었어. 크루즈가 들어오고 바쁜 밤이면 나도 이해한다지만, 우리, 아침 스태프들을 더 편하게 해 줄 수 있잖아? 그렇지?
참고로 아침 스탭은 사장님과 남편 A. 이 분들은 휴대폰도 CCTV와 연결돼 있어 가게 상황을 뻔히 아신다. 즉, 바쁘지도 않았는데 마감 전에 왜 재고를 진열하지 않았냐고 돌려 돌려 말하신 것. 차라리 직설적으로 말했다면 맘이 편했을까. 되지도 않는 변명을 늘어놓다 사과를 하고 다시 창고로 나서며 급격한 피곤함이 몰려왔다. 귀부인 세상에 잘못 타임워프 한 주인공이 된 느낌에 영 찝찝하기도 했고.
여긴 헝가리가 아니잖니
가장 따끈따끈한 일화. J와 E, 내가 마감 조였던 날. 초코볼을 꺼내 든 J에게 내가 그랬다.
"어떻게 하면 창의적으로 네 초콜릿을 얻어먹을 수 있을까 고민 중이야."
맛이 엄청나게 궁금하지만 절대로 먹을 걸 나눠먹지 않는 캐내디언에게 내가 마지막으로 꺼내 든 수법, 뻔뻔하게 굴기. 처음 들어온 날부터 내 온갖 진상을 받아준 J는 웃으면서 초콜릿을 넘겼다. 이 모습을 보고 낄낄거리던 E가 혹시 한국은 서로서로 나눠먹는 문화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답하자 헝가리도 그렇단다.
다음날, 창고에서 같이 티셔츠를 접는데 E가 하는 말.
캐나다에선 상대방에게 먹을 걸 권하면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 정말 웃기지? 헝가리는 전혀 안 그렇지만.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려던 찰나 항상 날 위해 먹을 걸 챙겨 오는 C와 이 사람들 특유의 화법, E가 가끔 보이는 미묘한 차별이 떠올라 '나는 나의 길을 간다' 상태에 돌입했다. 속이야 무슨 생각이든 겉으로는 활짝 웃으며 알려줘서 고맙다는 내게 E는 이어서 헝가리가 얼마나 끈끈하고 거리감이 좁은지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내가 무안할까 봐 덧붙인 말이기도 할 테지만 J를 괴롭히지 말라고 에둘러 말하는 것에 가까웠을 것이다. 더 들어가면 지적하길 좋아하는 성향 때문일지도 모르고 말이다. 하지만 귀족 영애 화법에 대처하는 나만의 필살기, 눈치 없는 척 농담하기.
"어쩐지... J를 괴롭혔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은걸?"
"맙소사! 역시 널 내 책의 등장인물로 삼아야겠어."
한국의 나눠먹는 식문화가 보편적이지 않다는 건 알지만, 포장된 간식을 나눠먹으려는 캐내디언도 많이 봤다. C만 하더라도 일할 때마다 날 위해 쿠키나 과일을 챙겨 오고, 사장님도 자주 카운터에 간식을 올려놓고 가시니까. 그러니 문화가 어쩌고 하는 말이 그다지 곱게 들리지 않을 수밖에. 게다가 이제는 친해진 만큼 서로의 속이 빤히 보이는 사이인 데다가 일단 직설적인 한국인에게 귀족 영애 화법이라니 가소롭기도 했다. 로맨스 판타지가 장르 소설계에 당당히 자리하고 옆 나라가 와(和)로 유명한 일본인걸.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툴툴거리는 아이처럼 적었지만 사실 일종의 배려라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막말로 사장님이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날 세워놓고 면박을 줬다면 일하는 내내 기분이 어땠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아무리 비꼬아도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가 항상 좋게 보는 캐나다의 문화가 작동하는 것 아닐까. 위선이니 뭐니 말해도 악보단 나은 법이니 역시나 내 방식대로 가려한다. 여태까지처럼 철없고 가벼운 농담이 아니라 이 사람들의 화법 익히기. 내 내면의 짜증도 수그러뜨리고 남의 기분도 살피면서 체면도 좀 지킨달까. 한 번도 한국인을 직원으로 둔 적 없다는 매장에서 철부지처럼 굴어야 되겠는가. 존엄까지 빈곤해지고 싶지도 않고. 언젠가는 귀부인처럼 말할 내 모습을 상상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