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극우 현상의 배경과 형성 그리고 극복
이 책은 개신교 내 극우 세력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신학적,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6편의 연구를 담고 있다.
첫째. 한국전쟁을 겪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중 남북한을 합쳐 군인 44만 명이 죽었고, 민간인 65만 명이 죽었다. 전쟁 전후 교회는 공산주의자들의 탄압을 겪었다. 이념에 기초한 전쟁은 “북한은 우리의 적”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게 했다.
둘째. 한국 교회는 해방 후 보수 정권과 친밀하게 지내며 많은 특혜를 누렸다. 이승만부터 이명박, 박근혜 정권까지 보수 정당은 세력을 모으기 위해 (일부) 한국 교회와 손을 잡았다. 한국 교회는 권력에 편승해 제 몸집을 불렸고, 동시에 속부터 병들어가기 시작했다. 교회가 복음과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엄격한 정교분리, 유럽권의 기독교 정당, 반나치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독일 목사 디트리히 본회퍼까지 교회의 정치 개입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다. 사회구성원으로서 교회는 어떻게 건강하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을까?
첫째.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에 기초해 판단해야 한다. 성경에 기초한 건강한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 외에 무엇도 절대적인 가치가 될 수 없고, 다른 이를 함부로 단죄해서도 안 된다.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에 기초해 사회에 목소리를 낼 수 있다. 하지만 그 날카로운 반성의 첫 번째 대상은 언제나 교회 스스로가 돼야 할 것이다.
둘째. 교회는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인 것으로는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삼위일체 등이 있다. 본질적인 영역은 그리스도인이라면 타협할 수 없는 영역이다. 반면 비본질적인 영역에서는 성도 사이에 의견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비본질적인 영역에서 성도 간 의견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나와 다른 의견 또한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교회는 비본질적인 영역에서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고 용납하는 곳으로 세워져야 한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여정이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1서 4:8).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런데 이 구절 뒤로 붙는 말씀이 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장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요한1서 4:20).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교회는 이 본질적인 가치에 다시 집중해야 한다.
정치적 양극화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배제하고 혐오하기에 바쁘다. “상대방을 꼭 끌어안고 ‘전쟁은 끝났다, 독재자는 물러났다’라고 위로하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 ‘더 이상 죽음과 죽임이 무서워 떨지 말라’고, ‘우리 모두 용서가 필요하고 사랑에 목마른 인간일 뿐’이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을까?” (태극기를 흔드는 그리스도인. p.241)
그 역할을 교회가 해야 한다. 상처 입고, 소외받고, 양극단으로 갈라선 사람들을 따듯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품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다. 교회는 세력과 권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곳이 아니다. 오로지 십자가의 복음과 사랑만이 교회가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