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야~ 설정이야?
엊그제 객기로 밤을 새웠더니 역시나 어제의 나는 사람 꼴이 아니었다. 호르몬에 조종당하는 내가 참 신기했다. 조그만 것에도 웃고 조그만 것에도 우울해하더니 결국 저녁 8시에는 비몽사몽 침대로 가서 쓰러져 버렸다.
그나마 침대로 가기 전에 겨우겨우 빨래를 세탁기에 집어넣고는 남편에게 세탁기가 끝나면 건조기에만 좀 넣어달라는 부탁을 끝으로 나는 깊은 잠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요새 할 일 많은 나를 위해 아침도 알아서 챙겨 드시고 출근하는 남편.
정말 미안한 마음 한 가득이다. 그래도 어쩌랴. 이 전쟁 같은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해주길 하다가 헙~! 어제 세탁기에 넣어 놓은 빨래 생각이 났다.
침대 끝에 걸터앉아 양말을 신고 있는 남편을 보고 난 미안한 마음이지만 더 미안한 마음을 담아 물어본다.
"어제 빨래... 건조기에 넣어놔 줬어...?"
"응? 넣어 놓으라고 했어?"
"헐... 건조기에 안 넣으면 빨래 다 쭈그러지는(데... 꿉꿉한 냄새는 어쩔 거고)..."
뭐라고 잔소리를 하려다가 에효.. 역시나 남자들은 귀를 잡아 댕겨서 귓속에다 내 말을 차곡차곡 집어넣어줘야 잊지 않는다는 말을 간과한 내 잘못이다 싶어 그냥 말을 말았다. 한숨과 함께...
그리고 회사 잘 다녀와 라는 말로 남편을 보낸 후 아직도 세탁기 안에 들어가 있을 빨래들을 구조하러 베란다에 나갔더니 이게 웬 일???
건조기 안에 빨래가 다 들어가 있고 심지어 건조기 문도 살짝 열려 있다~!
건조기가 다 돌아가면 문을 열어 놓아야 뜨거운 열기로 인한 습기가 빠진다고 예전에 남편한테 이야기했던 걸 그대로 실행해 놓은 거다.
이렇게 기쁠 수가~!!!
아니 이렇게 이쁜 짓을 해 놓고는 능청스럽게 안 한 척을 해 놨다고???
얼른 핸드폰을 들어 1번을 꾸욱 눌렀다.
"자기 뭐야~~~~ 건조기에 넣어뒀네~~~~^^"
"응? 깜빡했어~"
"어?? 뭘 깜빡해??"
"건조기에 넣어 둔 걸 깜빡했어~"
"으응????????"
ㅋㅋㅋㅋㅋ
이건 또 무슨 반전의 반전인가~! 푸하하하하
건조기에 넣어 둔 사실을 깜빡한 거란다. 난 또 서프라이즈로 장난 삼아 안 했다고 이야기한 줄 알았는데 아무튼 이 남자 늘 느끼는 거지만 늘 새롭다.
오늘도 이렇게 소소한 행복으로 하루를 연다.
늘 부족한 나를 채워주고 아껴주고 위해주는 사람이 옆에 있어 참 든든하다.
나도 오늘은 신랑이 좋아하는 과일이랑 아이스크림이랑 냉장고에 채워 놓고 출근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