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들이 착각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뭐, 하나만 있겠습니까마는 글의 맥락으로 보아 이르케 쓰는 게 매우 자연스럽습니다.ㅋ)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아내가 혼자서 밥 먹는 것보다 자신과 함께 밥 먹는 것을 더 좋아할 것이라는 착각.
하지만...
"당신하고 같이 먹으려고 안 먹고 기다렸어."
라는 이 말은 솔직히 말하면 그다지 사랑스럽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네네, 결혼 15년 차입니다. 신혼은 이미 벌써 한참 지났다는 것이죠.
감안하십시다.
아이들이 횡단보도를 안전하게 건너게 하기 위해서 평소보다 더 빠른 등교를 시켰습니다. 바로 녹색어머니로 지정된 날이기 때문인데요. "청기 올려, 백기 내리지 마"가 자동으로 생각날 만큼 녹색 깃발을 올렸다 내렸다 수도 없이 반복하다가 집으로 돌아왔지요.
그런데 가스레인지 위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윙--- 시끄럽네요.
학부모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온 사이 어젯밤 야근으로 아침에 퇴근한 남편이 집에 있길래 얼른 물었지요.
"어! 내가 환풍기 켜두고 나간 거야?"
"아니,
감자 삶아."
아~
혼자 알아서 자기 먹을 건 스스로 알아서 하는 남편. 이 주방은 아내의 주방이 아니라 내 주방이다 하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능동적으로 마누라를 굳이 기다리지 않는 남편. 혹시나 아내가 자신의 밥을 챙겨놓은 건 아닐까 눈곱만큼의 기대는 하지 않고 알아서 챙겨 먹기 위해 몸을 움직여 준 남편이네요.
그 자발성이 너무나 고맙고 이미 스스로를 챙긴 남편이기에 더 챙길 것이 없지만 왠지 더 보태줄 것은 없는지 살펴보게 됩니다. 여러 말할 것 없이 남편을 위해 밥상을 예쁘게 차린 후 밥 위에 벌레나 먼지가 앉지 말라고 밥상보를 더욱 예쁘게 덮어두고 나갔다면 가장 베스트이긴 했겠지만 안 그래도 정신없는 아침 시간에 그럴 정신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이들 아침 해 먹이고 지각 안 하게 학교에 잘 데려다주는 것도 모자라 녹색어머니까지 해야 하는 날이었는데.
신혼 때는 다른 반찬보다 오백 오십 번은 손이 더 많이 가는 꼬막을 사다가 해감하고 삶고 양념장 만들고 한 땀 한 땀 수놓듯 꼬막 하나하나에 양념장을 올려가며 남편의 밥상에 정성을 다했었는데... 그리 멀지 않은 과거를 회상하면서 감자가 이제나 익을까 저제나 익을까 포슬포슬하니 맛난 감자는 언제 내 입에 쏙 넣을 수 있을까 턱을 괴며 앉아 있자니 아무리 세월이 흘렀대도 나 좀 변했나 싶고 마음 한편이 찌르르 미안해져 오네요.
하지만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죠?
상대에게 생긴 미안한 마음은 지금보다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변한다는 것.
이와는 반대로 나에게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에게는 희한하게 더 해주기 싫어지더라고요. 사람 마음 참 이상하죠?
남편이 이렇게 알아서 스스로 잘 챙겨 먹고 잘하는 걸 보니 미안한 마음에 더 살뜰히 챙겨주고 싶어지네요.
그러니까 남편 여러분께 아내들이 숨겨왔던 마음 하나를 살짝 꺼내 넌지시 알려드리자면
"당신이랑 같이 먹으려고 안 먹고 기다렸어."
이 말은 절대 사랑스럽지 않다는 말씀이었습니다. ㅎㅎ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 알아서 척척척 스스로 어린이'라는 귀에 익은 이 CM송은 어린이들만 해당되는 건 아니라는 걸 기억합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스스로 해 먹는 노력을 아내에게 보여주어 예쁨 받고 사랑받는 남편이 되어보십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