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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Sep 27. 2024

우리 집 화장실에는 딸아이 친구가 산다


식구 네 명에 화장실은 하나.

조금 위태로운 비율이다.

보통은 식구가 네 명쯤 되면 화장실이 두 개인 국민평형 34평에 사니까.


우리 집은 21평이다.

큰방 하나, 작은 방 하나, 거실과 주방, 그리고 화장실 하나가 끝이다.

넷이 살기에 조금 좁다 싶은 느낌은 물론 들지만 생각보다 큰 불편은 없다.

오히려 좋다.


집이 크면 청소가 힘들다. 청소에 재능이 없는 나 대신 남편이 청소를 담당하는데 큰 집으로 이사 간다 생각하니 남편은 청소가 엄두가 안 난다 하고, 힘들게 청소하는 남편을 바라보는 나도 미안할 테니 서로 부담을 덜어 좋다. 관리비도 문제다. 여름엔 냉방비, 겨울엔 난방비가 지금보다 거의 곱절 이상이 나올 텐데 그렇다고 한여름에 에어컨을 안 켤 수도, 한겨울에 난방을 안 할 수도 없으니 비용 걱정을 크게 하지 않는 지금이 훨씬 마음이 편하다. 또 아이들 교육 문제도 센터에서 모두 해결하니 절감이 된다. 학원을 한 두 개씩은 모두 다니던데 우리 아이들은 학원을 전혀 다니지 않고 센터에서 공부하는 것만으로 둘 다 나쁘지 않은 성적을 받고 있다. 이사를 간다면 학원을 보내야 하니 그 비용도 또 만만치 않을 것이다.


청소, 관리비, 교육비도 큰 이유지만 무엇보다 가족 간의 끈끈한 유대가 지금보다 옅어질 것만 같다.


큰 집으로 이사 간다면 방이 적어도 서너 개쯤 될 텐데 그렇게 되면 각자 방에 틀어박혀서 휴대폰만 쳐다보느라 서로 얼굴 쳐다볼 시간이 없을 것이 분명하다.

지금은 그나마 집이 손바닥(?)만 하니 몇 걸음 걷지 않아도 여기서 큰 딸이 보이고 저기서 막둥이가 보이는 한눈에 모두 들어오는 구조라 서로 몸 비비며 살고 있는데 큰 평수는 금세 데면데면해질 것 같다.

작은 방에 내 컴퓨터 책상 뒤로 딸아이 책상이 있는데 딸아이가 공부하면서 궁금한 게 있어 나를 부르면 나는 바로 의자를 빙그르르 돌려 앉아 아이를 가르치니 좁은 집이 나는 더욱 좋다.


이렇게 장점만 있다면 참 좋으련만


문제는...


사춘기에 접어든 딸아이의 화장실 사용 시간이다.


화장실이 하나밖에 없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들어가기만 하면 함흥차사다.

환장한다.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어려서 쉬야를 참기 어려워했던 1~2년 전만 해도 막둥이는 화장실 문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다리를 꼬다 풀다를 반복하며 동동거리기가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혹시나 옷에 지릴까 봐 보고 있기가 얼마나 불안하고 안타까웠는지 모른다. 보다 못한 남편이 음료수 빈 병을 찾아들고 아이의 위급 상황을 해결하긴 했지만, 음료수 병에 하기 싫다며 누나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고집을 부리며 제자리에서 방방 뛰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속이 부글부글 끓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밖에서 동생이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소변을 참느라 곤욕을 치르든 말든 안에 앉아 있는 딸아이는 천하태평 두 시간씩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는 걸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화도 화지만 도대체 화장실 그 안에서 무얼 하는 건지 알 수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

휴대폰을 들고 들어가 변기에 앉아서 본연의 할 일을 잊고 부차적인 일(쇼츠를 본다거나, 카톡을 하거나, 웹툰을 보는 일) 때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오래 앉아 있는가 보다 해서 휴대폰을 압수해 보기도 했는데... 휴대폰이 없어도 1시간 반을 그 안에서 죽치고 나오지를 않는다.


화장실 안에 꿀단지라도 숨겨 놓은 거니?

혹시 그 안에 네 친구라도 있어 둘이 담소라도 나누는 거야?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들어가면 나오지를 않는 거니...





진지한 표정으로 도대체 그 안에서 무얼 하는 거냐고 물어도 "X 쌌어..."라고만 한다.

아... 2차로 환장한다. 화장실에서 해야 할 일인 X을 쌌다는데 뭐 어쩔 것인가. 변기에 오래 앉아 있으면 치질이 생긴다고 의료상식을 총동원해 협박을 해도 소용이 없다.


잠깐 스치는 생각으로 화장실에 CCTV를 설치해 두고 얘가 도대체 화장실에서 무얼 하는 것인지 알아내볼까도 했는데...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범죄다. 아무리 가족이라 해도, 아무리 내 딸이라 해도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서 편안히 근심을 해소하는 공간이라는 의미의 해우소에 CCTV를 설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누가 화장실 CCTV로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쳐다보고 있다고 역으로 가정하고 상상하니 소름이 오싹 끼쳤다. 그건 정말 아니 될 일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어릴 적 엄마랑 언니랑 목욕탕 가면 2시간씩 씻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때는 일주일에 한 번 세신의 개념이었지, 그때와 똑같이 매일매일 피부를 밀어댄다면 딸의 피부가 남아나질 않을 텐데 정말이지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아무리 그래도 쟤는 어떻게 하루에 2시간씩 꼬박 화장실에서 사는 걸까.


화장실에 너무 오랫동안 앉아 있는 게 딸아이의 좋지 않은 습관이 되어버릴까 봐 빨리 나오라고 매일 노래를 부르는 게 나는 습관이 되어버렸다. 정말 지친다.


"시간이 이렇게 오래 지났는지 몰랐어."


라고 같은 말만 반복하는 딸... 그 안에 시계가 걸려 있는데 모르긴 뭘 몰라. 그리고 엄마 몰래 가지고 들어간 휴대폰을 보고 있으면서 휴대폰 화면 상단에 늘 보여주는 시간을 몰랐다는 게 말이 되니...


사색을 하는 건가.

명상에 잠기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멍을 때리는 건가.


멍하니 앉아서 일명 멍 때리는 행동은 얼핏 시간낭비처럼 보이지만 바쁜 현대인에게 반드시 필요하고 뇌의 휴식을 주는 것이라 하니 끄응 된소리를 내며 내가 참는 수밖에.





집집마다 고민거리가 없는 집은 없을 것이다. 현실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몇 안 되고 나름의 기준과 목표는 늘 높기 마련이라 고민 없는 집이 과연 있기는 할까.

그러기에 더한 고민을 안고 사는 가정에 비하면 나의 고민은 고민 축에도 끼지 못할 정도로 정말 사소하다 할 것이다. 하지만 남의 죽을병보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더 아픈 법.


친정엄마와 이야기하다 딸아이가 화장실에만 들어가면 숨겨둔 친구를 만나는지 어쩌는지 도대체 나올 생각을 안 한다고 푸념을 했더니 엄마가 해 주신 이야기가 있다.


"아이의 운동화 밑창이 너무 빨리 닳아요. 도대체 얘는 신발을 어떻게 신고 다니길래 신이 버텨내질 못하는 걸까요? 바닥에 갈고 다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라니까요." 하고 누군가 걱정의 소리를 했는데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에 입퇴원을 반복하는 아이의 부모가 이렇게 대답했다.

 

"아이는 운동화가 닳도록 뛰어노는 게 정상입니다. 아이 신발이 닳지도 않고 늘 새 신발이라고 하면 그게 더 마음이 아픈 거지요."


아이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속을 썩여도 건강하게 자라고 있음을 감사하라 하신다.

그래, 건강하고 무탈하게 자라 주니 화장실에서 명상의 시간이 좀 길다 한들 저 시간도 한때겠다 이해하며 넘어가 주어야겠다.


그건 그렇고 시대를 거스르는 물건인 요강을 어디 하나 구해다 놔야 하나. 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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