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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석 Sep 18. 2022

불편한 상황을 정리하는 말

말하기 싫으면 감내하시든지

 아내는 먼저 서울로 출장을 떠났고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뒤늦게 서울에서 합류하기로 한 날의 일이다. 김포공항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올림픽대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서울의 트래픽이야 40년 넘게 겪은 것이니 낯선 일도 아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불편한 이 느낌은 뭘까? 택시기사님의 운전이 문제였다. 유난히 차가 흔들흔들 덜컹거리는 이유를 찾기 위해 창밖에서 시선을 돌려 기사님을 바라봤다. 맙소사! 기사님은 핸들을 붙잡지 않고 두 손을 가지런히 다리 위에 내려놓고 있었다. 그렇게 주행을 하다가 차가 슬금슬금 옆 차선으로 움직이면 다시 핸들을 잡았다가 두 손을 가지런히 다리 위에 두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쯤에서 스마트크루즈컨트롤 기능을 이용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지 마시기를 바란다. 그 택시는 그런 기능이 나오기 한참 전에 만들어진 구형 소나타 택시였다. 핸들에서 손을 떼고 있다가 갑자기 핸들을 움켜잡으니 차가 계속해서 흔들거리고 덜컹거릴 수밖에... 뒤를 돌아보니 아이들도 멀미가 나는지 얼굴이 파랗게 질려있었다.

 

 나는 낯선 사람에게 잔소리를 못하는 성격이다. 하지만 이건 운전 스타일에 대한 간섭이 아니라고 판단했고 한마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아이들이 타고 있었고 안전과 직결된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기사님께 말하는 것이 좋을까? 우선 결론부터 말하는 것이 좋다.

 "기사님! 두 손으로 운전대를 잡아주셨으면 좋겠네요."

기사님이 놀란 눈으로 "네?"라고 되물으셨다. 나는 이어서 차분하게 이유를 설명했다. "기사님이 운전대를 놨다가 갑자기 잡으시면서 차가 많이 덜컹거립니다. 멀미가 심하게 나고 사고가 날 수도 있으니 안전을 위해서라도 두 손으로 핸들을 잡아주세요." 그제야 기사님은 "아, 네!"라며 멋쩍은 듯 허허 웃으시며 핸들을 잡았다. 물론 그 이후로 실크 드라이빙을 만끽하며 목적지에 도착했다. 기사님 입장에서는 핸들을 잡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그 이유에 대한 분명한 설명을 덧붙이니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안전과 직결된 문제 지적을 간섭이라며 반격하기는 쉽지 않다. 불편한 상황에서 침묵을 지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본인이 불편한 부분을 말하고 그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그 불편한 상황을 빠르게 끝낼 수 있는 길이다. 다만 그 근거는 상대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 제시해야 한다. 만약 내가 앞서 말한 것처럼 하지 않고 "아니, 운전을 왜 그딴 식으로 해요? 멀미 나서 살 수가 없네."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영문도 모른 채 공격당했다고 생각한 기사님은 아마 다른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불편한 상황을 개선하고 싶을 때는 내가 왜 불편한지에 대해 차분히 설명하고 어떻게 개선되었으면 좋겠는지 명확히 이야기해야 한다. 말하면서 이런 과정을 생략하고 대뜸 요구사항만 늘어놓는다든지, 상대를 비난하는 식의 대화를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불편하지만 할 말을 한 이유는 다만 목적지까지 편하게 가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내가 지적하지 않았다면 또 다른 승객은 그 택시를 타고 올림픽대로에서 복잡 미묘한 심경으로 멀미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 기사님을 다시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두 손을 놓고 운전을 할 때마다 나와의 에피소드가 떠올라 다시 핸들을 붙잡으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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