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어느 날

96. 오늘 20221030

by 지금은

가을이 우리 곁으로 달려왔습니다. 무덤덤하게 보내기가 아깝습니다. 엊그저께 아내와 함께 일찍 나들이했습니다. 예상보다 일찍 볼일을 끝냈습니다. 집에 돌아가면 점심시간에 맞출 수 있습니다.


“날씨가 참 좋지요.”


아내가 하늘을 보며 말했습니다.


“하늘을 지붕에 맡기기는 좀 아깝지.”


볼일을 마쳤을 때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는 좀 서운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집이 아닌 곳으로 발길을 돌리고 싶었습니다. 역의 개찰구를 들어서자, 앞장을 섰습니다. 집으로 가는 노선이 아닌 다른 곳으로 방향을 택했습니다.


“거기가 아닌데.”


“오랜만에 특급 전동차를 타보고 싶어서 그래요.”


특급이란 말에 아내는 의아해하는 눈치입니다. 여기도 그런 게 있느냐며 뒤를 따랐습니다. 핑계김에 하늘 구경, 단풍 구경을 했습니다. 시장에서 점심을 먹고 군것질도 했습니다. 무인카페에 들러 잡담도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가 말했습니다. 가을이 아까우니 일요일에는 우리 식구가 나들이해야 한다고 합니다. 아들과 함께 나들이한 게 언제인지 모릅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아들이 없습니다. 아내에게 함께 놀러 가기로 하지 않았냐고 했더니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며 말할 사이도 없이 나갔답니다. 계획이 어긋나서 서운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운을 떼 보았습니다.


“가봐서 알겠지만, 창경궁이 좋던데.”


싫지 않은 눈치입니다. 운을 뗀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전하는 뉴스를 보는 사이에 나들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끝나갈 무렵 나도 준비를 마쳤습니다. 평소 서울 나들이에 비해 시간이 늦었습니다. 늦게 출발한 만큼 집에 늦게 도착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창덕궁으로 입장을 했습니다. 가을 정취를 만끽하려는 사람들로 만원입니다. 매표소 앞에는 긴 줄이 이어져 있습니다. 나는 줄을 서지 않고 입장을 했습니다. 경로 우대 덕분입니다. 나는 궁궐의 규모도 크지만, 나무들이 많고 종류도 다양해서 이곳을 좋아합니다. 봄에는 새잎들이 좋고 여름에는 짙푸른 그늘이 마음을 시원하게 합니다.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답습니다. 겨울에는 잘 모르겠습니다. 눈 속의 창경궁을 보지 못했습니다. 겨울에도 한 차례 방문해야겠습니다.


나는 경복궁보다 창경궁을 더 좋아합니다. 건축물의 규모로 보아서는 경복궁이 웅장하지만, 휴식 면에서는 이곳이 더 마음을 여유롭게 합니다. 창덕궁을 대략 둘러보고 창경궁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나무들을 둘러봅니다. 내가 아이들에게 ‘봉이 김선달’ 이야기를 해줄 때 말했던 국수나무가 있습니다. 아내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고추나무도 보여주었습니다.


“여보, 저기 좀 봐요. 참 예쁘지요.”


고개를 돌려보니 서양의 여자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예쁘기는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얼굴은 아닙니다. 갸름하고 야리야리해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습니다. 그들이 떠나자 다른 서양의 아이들이 다가왔습니다. 그중 한 아이를 지목했습니다. 아내가 말했습니다.


“예쁘기는 하지만 좀 투박하지 않아요?”


예쁨을 보는 안목이 서로 다릅니다.


오늘따라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도 종종 눈에 뜨입니다. 아내가 말했습니다.

“결혼할 때면 입을 텐데 뭐 그리 급하다고…….”


“그때까지 뭐 기다릴 필요가 있나, 요즈음은 쉽게 빌려 입을 수도 있는데.”


예전과는 달리 우리의 한 복 문화가 점차 사라져 가는 느낌이 듭니다. 명절 때도 한복을 입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나도 한복을 입어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 환갑 때 입어보고는 그만입니다. 집에 고이 간직하고 가끔 들춰보기는 하지만 유행이 지났다는 핑계로 멀리합니다. 나들이를 가지는 않아도 한 번쯤 입어 봐도 되겠지만 선 듯 몸에 걸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간편한 옷에 길든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옷고름 매는 방법도 잊었습니다. 풍경을 놓고 아내와 나의 사진을 찍는 사이에 한복을 입은 사람들의 사진도 찍었습니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시시때때로 웃고 떠드는 청소년들의 발랄한 모습이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아내는 보통 때와는 달리 피곤하다는 말이 없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나보다 앞장을 섰습니다. 오늘은 구경도 잘했지만,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고 만족한 표정을 짓습니다. 한 달 전부터 청국장을 먹고 싶다고 했는데 우연히 찾아간 식당이 아내의 소원을 풀어주었습니다. 밥 한 공기를 다 먹지 못하고 남기던 그가 그릇을 비우고 한 공기를 더 시켰습니다. 청국장을 입에 대자마자 입에 딱 붙는다며 먹는 동안 몇 번이나 음식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식당 이름이 ‘두메 밥상’입니다. 허름하고 오래된 가게이지만 맛은 곰삭았습니다. 이 식당의 위치를 꼭 기억하라고 길눈이 어두운 아내는 몇 번이나 나에게 강조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곁으로 다가온 가을을 덥석 잡은 하루입니다.


작가의 이전글2022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