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구름 낀 날 20210319
아들이 제지할 사이도 식당에서 가버렸습니다. 내가 호텔의 카드를 주머니에서 꺼내자 빼앗듯 손에 쥐고 엘리베이터를 향했습니다. 지금은 식사 중입니다. 빈 옆자리에는 식사 도구만 공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빈자리만큼이나 아내와 나의 마음이 썰렁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성질머리 하고는…….’
아들한테서 문자가 왔습니다. 카드는 아래층 안내소에 반납했답니다. 식사 자리는 불편합니다. 아침을 먹는 건지 불안함을 먹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조금 전 아들과의 일에 대해 불평을 쏟아내자, 아내가 말합니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너무 말이 길었어요. 이야기하고 싶으면 짧게 한마디만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내 심사가 더 사나워집니다. 네 편 내 편을 가르는 것은 아님을 알고 있지만 아들의 역성을 드는 것 같아 서운한 생각이 듭니다.
식사를 끝내고 방으로 돌아오자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생각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잠시 후입니다. 좋은 분위기에서 아침을 먹으려고 했는데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출근한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아침부터 너에게 거슬리는 말을 해서 미안하다.”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아들이 회사에 도착했나 봅니다. 곧이어 문자가 날아왔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림 문자까지 덧붙였습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먼저 손을 내민 것이 효과가 있었나 봅니다. 나와의 작은 마음의 불일치로 회사에서의 하루가 불편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호텔의 식당에 도착해서입니다. 아들이 창가의 의자에 어깨에 멘 가방을 내려놓으려 합니다.
“메고, 있어야 해, 낯 모르는 곳에서는 소지품을 항상 조심해야지.”
아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좀 떨어진 창가의 구석 자리에 가방과 옷을 벗어놓고 내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뭐 하는 거야, 없어지면 어쩌려고.”
“외국에서나 잊을 수 있는 일이지요. 우리나라에서는…….”
“무슨 이야기야, 사람 마음이란 게…….”
“우리나라에서는 자전거만 조심하면 돼요.”
“자전거 훔쳐 가는 놈이 다른 것은 안 훔치나.”
잠시 말이 길어졌습니다. 아들은 자전거에 대해서만큼은 스트레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새 자전거를 두 번이나 잃어버렸습니다. 한 번은 전철역에서, 한 번은 집 앞에서 입니다. 누군가 자물쇠를 끊고 가지고 가버렸습니다. 학생 때이고 보니 순진합니다. 경찰에 신고했으니 곧 잡힐 거라고 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나라고 해서 지금까지 잃어버린 물건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단독주택에 살 때입니다. 장모님이 결혼 기념으로 사주진 값진 텔레비전을 누군가 훔쳐 갔습니다. 우리가 집을 비운 틈을 어떻게 노렸는지 모릅니다. 잠자는 시간에 침입한 일도 있습니다. 아내의 목걸이와 약간의 돈이 없어지기는 했지만, 도둑이 침입한 순간을 몰랐다는 것이 다행이었는지 모릅니다. 아침을 먹고 출근 준비를 하려다 알아차렸습니다. 도둑과 눈이라도 마주쳤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하는 상상을 하니 소름이 끼쳤습니다.
외국 여행에서의 일도 있습니다. 한 젊은 부부가 호텔 식당에서 소지품 가방을 잃어버렸습니다. 주위에 우리 일행이 함께 있으니 마음 놓고 그것을 의자에 놓았던 모양입니다. 접시에 음식을 담아서 자리에 앉으려고 하니 가방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로 돌아오기로 예정된 날입니다. 그들이 함께 귀국은 했지만 하루를 허비한 셈입니다. 영사관을 찾아가서 귀국 수속에 필요한 준비를 하느라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입니다. 함께 여행을 한 우리들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여행지로 떠나는 날이면 늘 소지품에 조심하라는 여행 인솔자의 말이 빠지지 않습니다. 여행하는 중에도 수시로 같은 말을 합니다. 다국적 사람들이 모이니 생각지 않은 일이 종종 벌어지는 모양입니다. 나라고 해서 비껴가겠습니까. 조심하지 않으면 마찬가지입니다. 비행장에서의 일입니다. 상대편 사진을 찍어 주기 위해 선글라스를 벗어 벤치에 놓았는데, 잠시 후 돌아보니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나는 이런 이유로 인해 외국에서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될 수 있으면 소지품이 든 가방은 몸에서 떼어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조심스러운 나에게 누군가가 나에게 말했습니다.
“소지품에 금은보화라도 들어있나.”
“그런 건 아니고, 내가 들어있어요.”
집 앞 공원에서의 일입니다. 중년의 여인이 벤치에서 일어나 몇 발짝 자리를 옮겼을 때입니다. 텅 빈자리에는 휴대전화 하나가 홀로 그 자리 지키고 있습니다. 내가 말했습니다.
“잠깐만요, 지갑과 휴대전화를 놓고 가시네요.”
“제 것이 아닌데요.”
모든 사람이 이와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네 것과 내 것을 구별하는 그 여자의 뒷모습이 예뻐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