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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Nov 16. 2024

2021 그날

10. 새로운 일에는 항상 20210318

아내와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습니다. 갈 곳이 있다는 것은 다행입니다. 이틀 동안 집 없이 지내야 합니다. 짐 보따리라고 할 것은 없지만 등 가방을 하나씩 어깨에 맺습니다. 마침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어제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아내가 말했습니다.


“잠옷을 챙겨야겠지요. 여행 가방에 몇 가지는 챙겨야겠지요?”


“잠옷은 무슨 잠옷, 그냥 간편하게 해요. 여행을 가는 것도 아닌데……”


아침을 막 먹고 나서 차 한 잔 마시고 있는데 사람들이 들이닥쳤습니다. 마치 자기들의 집인 양 성큼성큼 들어와 거침없이 집안을 둘러봅니다. 살림살이 가구들을 옆방으로 옮깁니다. 우리는 이들에게 쫓기듯 집을 나섰습니다.


도서관을 향했습니다. 오전에는 이곳에서 지내야겠습니다. 신문을 보고 책을 읽고 컴퓨터로 자료를 찾다 보면 오전 시간이 금방 지나갈 것입니다. 도서관을 둘러싸고 있는 공원으로 들어서자, 운동 겸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둘레 길을 부지런히 걷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합류했습니다. 밝은 날인데도 검정 우산을 쓰고 걷는 사람이 있군요.


“날도 좋은데 무슨 검정 우산을 쓴담.”


“오늘의 우리처럼 무슨 사연이 있겠지.”


마음속으로 생각해 봅니다.


‘저 사람은 눈에 이상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닐까.’


내가 눈 때문에 가끔 고생해서인지 이상하다는 생각보다 긍정적인 마음이 앞섭니다.


찾아간 도서관은 겉보기에는 침묵입니다. 너무 일찍 왔나 하는 생각에 출입문을 살그머니 열어봅니다.


“어서 오세요.”


참신해 보이는 아가씨가 안내합니다. 기계에 도서 카드를 입력하자 체온을 측정해 주었습니다.


도서관의 카페는 텅 비어있습니다. 우리가 공간을 메워주어야겠습니다. 넓은 장소를 둘이 차지하기에는 좀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갑자기 우리 집을 떠올립니다. 실내가 이만큼 넓었으면 좋겠다는 순간, 그것은 사치야 하는 마음과 뒤엉킵니다. 그렇다고 우리 집이 비좁은 곳은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보편적으로 중산층의 사람들이 생활하는 넓이의 공간입니다. 나는 예전부터 집에 대한 큰 욕심은 없습니다. 크게 불편함이 없다면 만족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이사를 할 때마다 친척이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비난 아닌 비난을 들었습니다.



“이왕 옮길 것이면 좀 더 큰 집으로 이사하지.”

이럴 경우 한 귀로 듣고 말았습니다. 무던한 아내도 언젠가 한마디 했습니다. 좀 더 큰 집으로 이사를 했으면 재산을 좀 불릴 수 있었을 텐데 하고 말입니다.


오늘내일 양 이틀 동안 내 집을 놔두고 밖에서 지내야 합니다. 벽과 천장을 도배합니다. 처음 입주한 지 십여 년이 지났으니 한 번쯤은 실내를 바꿔야겠지만 집을 곱게 쓰다 보니 아직은 말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 달 전에 생각지 않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늦은 저녁 갑자기 천정에서 물이 소나기처럼 쏟아졌습니다. 바닥에 물이 흥건히 고입니다. 물이 떨어지는 곳에 급한 대로 빈 그릇을 받쳤습니다. 바닥에 넓게 번진 물들을 닦아냅니다.


“방재실이지요?”

잠시 후 직원 셋이 와서 상황을 확인한 후 원인을 찾아서 조처를 하겠다고 말하고는 사라졌습니다. 그들의 말처럼 쏟아지던 물줄기가 줄어들다 멈췄습니다. 원인을 찾아 단속했으니 다행입니다. 마음을 놓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다음날 잠자리에 일어났을 때 천정의 도배지가 다시 부풀더니 물줄기가 쏟아졌습니다. 그들이 다시 와 확인하고 미안하다며 원인을 찾았으니, 조처를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원인은 아파트의 관로에 이상이랍니다. 얼룩진 벽이나 천장을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 중이었는데 연락이 왔습니다.


“방재실입니다. 피해를 보상해 주겠답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아파트 자체적으로 재해 보험을 들어놓았습니다. 보험회사 직원이 찾아갈 겁니다.”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약속대로 보험회사 사람이 방문했습니다. 상황을 확인하고 나서입니다. 나는 이야기를 하는 중에 피해 상황을 찍어놓은 사진을 보여 주었습니다.


“상황이 심각했군요. 우리 회사로 사진을 전송해 주세요. 보험 산정에 큰 참고가 되겠습니다.”


여러 장의 사진을 확인한 보험사 직원과 수월한 협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지금의 벽지와 같은 등급의 재료를 사용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예, 공사 기간의 호텔 숙박비도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단 식비는 제외입니다.”


새로운 일이나 갑작스러운 일에는 늘 부담감이 생깁니다. 오랜 세월, 이 경험 저 경험을 했지만 익숙하지 않은 경우에는 늘 부담되고 걱정이 따릅니다.


그저께부터 예약하려고 인터넷으로 집 주변의 호텔을 살펴보고 전화했습니다. 생각보다 비싸다는 생각이 듭니다. 직접 찾아갔더니 전화 예약을 해야 한다기에 상담했지만, 그때마다 값이 다릅니다. 고심 끝에 어제 예약을 했습니다.


시간을 맞추어 찾아갔더니 호텔 예약되어 있지 않습니다. 분명 예약을 해주겠다고 했는데 이상합니다. 스마트폰의 통화명세와 통화 시간을 보여주었더니 안내소의 직원이 난감한 표정을 짓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잠시 후 예약했던 호텔사용료보다 적게 객실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잠시 호텔에서 쉬다가 저녁에 집에 들러야겠습니다. 낮에 택배 물건이 도착했다며 문자가 왔습니다.


“현관 앞에 놓아주세요. 집안 공사 중이라 밖에 나와 있습니다.”


곧 가고 싶었지만, 일하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까 봐 그들이 돌아간 후에 가서 물건을 들여놓기로 했습니다.

그들의 귀가 시간이 좀 지났다 생각될 무렵 집으로 향했습니다. 현관에 도착했지만, 물건이 보이지 않습니다. 집 안이 엉망입니다. 도배를 하기 위해 뜯어놓은 물품이 여기저기 놓여있습니다. 뜯지 말라는 석고보드도 여러 장 뜯어내고 다시 붙였습니다. 멀쩡할 것이라 여겼는데 확인을 못 했으니 뭐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벽지와 천장의 종이는 제거하지 않은 채 그대로입니다. 내일까지 일을 끝낼 수 있을지 염려됩니다. 여기저기 둘러보니 베란다에 택배 물건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상자를 집어 들었습니다.


“상할 수 있으니, 냉장고에 넣어야겠어요.”


조금 불안한 마음을 안고 호텔을 향해 발길을 돌립니다. 생각지 않은 일은 나에게 늘 걱정과 불안감을 안기는데 이번도 마찬가지입니다. 느끼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죽기 전까지는 그럴까요.


‘내일 저녁때까지는 일이 끝나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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