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봄나들이 20210315
집에만 갇혀 있으니 답답합니다. ‘코로나, 미세먼지’로 인해 작년 올해는 눈 코 뜰 새 없이 재난 문자가 휴대전화를 울렸습니다. 시도 때도 없습니다. 막무가내로 경고를 날립니다. 안전을 염려해서 하는 일이니 어찌하겠습니까. 코로나가 일상생활을 자꾸만 가로막아 답답하기만 합니다.
아무래도 움직임이 덜 하니 온몸이 뻐근합니다. 잠에서 깨어나면 전신이 굳어있는 느낌이 듭니다. 몸을 풀어볼 생각에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잠시 몸을 뒤척입니다.
“여보, 내일은 서울 구경이나 갈까? 봄에 쓸 모자도 하나 있어야 한다고 말했던 것 같은 데…….”
귀찮다고 할까 봐 전날 미리 언질을 주었습니다. 마땅히 정한 곳은 없지만 모자를 핑계 삼아 남대문 시장으로 정했습니다. 작년에 갔을 때 대형 모자 가게가 몇 군데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옷들이 얇아졌네요.”
봄은 봄입니다. 전철 안의 사람들을 둘러봅니다. 두껍고 칙칙하던 옷이 어느새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봄기운을 따라 산뜻한 옷차림도 보입니다. 잠시 내 옷을 내려다봅니다. 크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역시 조금은 얇아졌습니다. 봄이란 게 그런가 봅니다. 누구의 눈치를 본 것도 아닌데 내 운동화는 밝은 색으로 바뀌었습니다.
“와!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생각 외로 거리와 시장에는 오가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우리 부부가 답답하다고 밖으로 나들이했으니 사람 마음이야 다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몸이 굼뜬 나는 좀 더 느려졌습니다. 가다 서기를 반복합니다. 오고 가는 사람들과 정면으로 마주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시장의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모자점이 눈앞에 다가섭니다. 무조건 앞서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갖가지 모양의 모자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습니다. 아내는 이것저것 눈여겨보고 괜찮다 싶은 것을 들어 써봅니다. 몇 개를 써보지만 나도 자신도 맘에 드는 것이 없습니다.
‘이 많은 모자 중에 어울리는 것이 없다니.’
서너 군데를 방문하고 나서야 맘에 드는 모자를 하나 골랐습니다. 아내는 점원의 끈질긴 안내와 권유에 내 표정을 읽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결정했습니다. 점원의 추천이 의사 결정의 반을 차지했습니다. 손님의 취향을 잘 읽었습니다. 점원은 아내의 얼굴과 표정을 보고는 색깔이나 무늬가 화려한 모자는 제외한 채 단색의 단순한 디자인의 모자를 권했습니다. 거울에 비친 아내의 표정이 밝아졌습니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시장 골목을 누비며 갖가지 물건들을 구경했습니다. 가게마다 겨울의 물건들을 어디에 숨겼는지 봄의 냄새가 나는 것들로 실내를 메워놓았습니다. 함께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표정들도 살펴보았습니다. 역시 봄은 봄입니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의 옷차림이 어울린다,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고 품평회도 연 셈이 되었습니다. 그 많은 사람이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옷이나 같은 신발을 신은 사람들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각자 자신의 취향에 맞게 한 마디로 구구 각색입니다.
시간을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지났습니다. 바다 냄새가 풍기는 곳에서 생선조림 백반을 먹었습니다. 실내는 다소 좁고 허름하지만, 음식의 맛과 향기는 주인이나 종업원 모두가 어머니의 손을 떠올리게 합니다. 분위기에 맞게 일회용 즉석커피도 있습니다. 평소에는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멀리하지만, 밖에 나와 어쩌다 먹어보는 맛은 또 다른 구수함입니다. 내가 종이컵을 내밀자, 아내가 말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혹시나 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어떻게 찾아냈어요.”
“비밀입니다.”
커피는 아내의 등 뒤로 서너 발짝거리에서 정수기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몸을 가린 채 있습니다.
밖으로 나왔습니다. 식사하러 오기 전에 한 말을 떠올렸습니다.
“잊지 말아요. 여기 호떡 재료는 수수입니다. 맛이 좋아요.”
전에 친구들과 왔다가 사 먹었는데 맛을 잊을 수가 없답니다. 내가 수수밥이나 수수부꾸미를 좋아하는 것을 알기에 하는 말입니다. 역시 맛이 좋습니다. 주인의 태도가 맛을 더해줍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눈에 띄지 않는 숨겨놓은 자리까지 제공해 주었습니다.
“뜨거우니 천천히 드세요.”
다른 사람들은 길에 서서 종이컵에 담긴 호떡을 입으로 가리며 먹고 있습니다. 지나치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이겠지요.
아내의 성격으로 보아 이제는 집으로 갈 시간입니다. 늘 해가 있을 때 집에 도착하는 것을 원합니다. 시장을 벗어나며 내가 말을 꺼내기 전에 한 군데를 더 들려야겠다고 합니다.
“가본 지 오래되었으니 인사동을 좀 들렀다 가요.”
우리는 인사동을 여러 차례 방문했습니다.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겸사겸사 북촌, 서촌 등을 둘러보기 위해서입니다.
‘아차! 이를 어쩌지요. 서울역에서 노선을 갈아탄다는 것이 반대편 차에 올랐습니다. 알아차리자, 아내를 밖으로 밀쳐내며 뒤따라 내리려 했지만, 아내가 빠져나가자 곧 문이 닫혔습니다. 당황해하는 아내에게 그 자리에 있으라고 손짓으로 말했습니다. 한 정거장을 갔다가 내려 되돌아왔습니다. 내리자마자 아내를 이끌고 재빨리 목적지를 향해 차에 올랐습니다. 천천히 행동한다면서 차에 가까이 다가가자, 목적지를 확인하지 않고 승차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인사동 골목에도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날씨가 포근한 봄도 봄이지만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때 방문했던 것과는 천양지차입니다. 그들의 얼굴에 화사한 빛이 감돕니다.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덕수궁 돌담길을 걸을 때의 풍경이 펼쳐집니다. 전자 첼로를 든 악사가 연주하고 있습니다. 잠시 돌의자에 앉아 귀를 기울였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먼저 본 연주자는 우리나라 사람인데 오늘의 연주자는 외국인입니다. 길 가던 사람, 음악을 감상하던 사람들이 지폐와 동전을 모자에 넣고 자리를 떠납니다.
인사동은 변한 것이 없지만 가끔 들리는 것은 한국미를 감상할 수 있는 이유에서 입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종로구 관내는 우리의 정서를 느끼게 해주는 곳이 요소요소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행사라도 열리는 날이면 더 좋을 테지만 코로나로 인해 아직은 행사를 열 틈새를 만들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날이 빨리 와서 시국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각종 행사도 많이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뭐라도 살 게 있어요?”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나를 연신 잡아끕니다. 곧 해가 떨어질 것입니다. 지하철의 계단을 내려서자, 때맞춰 전동차가 도착했습니다. 시간을 잘 맞췄나 봅니다. 우리를 기다리는 자리가 텅 비어있습니다. 몸이 나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눈을 좀 붙여야겠습니다.
“여보 모자챙을 내려요.”
봄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