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코로나야, 가라! 20210314
‘돌잔치라도 해 주면 될까?’
작년 봄에 태어난 녀석은 인류의 미움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자라 한 해를 넘겼습니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이리 달래고 저리 달래 보지만 제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나 봅니다. 어떻게 생겼는지 얼마나 자랐는지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 미물은 영악한 인간의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코로나!
얼마나 무서운 놈인지 감기는 물론 그 독하다는 독감마저도 기를 죽여 놓았습니다. 해마다 겨울철이면 콜록거리는 기침 소리가 주위를 시끄럽게 했는데, 지난해에는 그들이 자취를 감추기라도 한 양 조용했습니다. 병원 안에서도 기침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코로나 예방의 무기 중 하나인 마스크가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소식을 접하고 보니 마스크를 적극 권장한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의 차이가 컸음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답답한 방패막이가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하기는 했지만, 전염을 차단하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거리 두기, 마스크 쓰기, 청결을 위한 손 씻기…….’
어디를 가나 조심을 당부합니다. 발열과 기침 여부를 묻습니다. 병원, 은행, 행정복지센터 등, 건물 안으로 들어서려면 사람보다 앞서 체온계가 먼저 다가옵니다. 인적 사항을 기록해야 합니다.
코로나가 스스로 물러난다면 정말로 큰 잔치를 해주고 싶습니다. 나는 퇴직 후 복지관이나 도서관을 내 집 드나들 듯 이용했습니다. 코로나는 슬며시 내 삶의 일정을 수시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나를 놀리기라도 하듯 기세를 떨치다 고개를 숙이는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서로의 자유로운 만남을 방해하고 배움도 훼방 놓았습니다.
허!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삼식이가 되었습니다. 아내가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 것이 참 다행입니다. 고맙게 생각합니다. 칭찬에 물들지 못한 나이지만 몇 차례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코로나의 눈치를 보며 가끔 아내의 손을 잡고 외식했습니다.
나의 무능함과는 반대로 많은 의료진이 코로나의 예방과 치료를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사회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안타까움만 간직한 채 고마움을 응원할 뿐입니다. 코로나 치료제가 마지막 임상 시험에 돌입했고, 몇몇 제약회사에서 연구 생산된 백신이 창을 들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코로나를 물리치기 위해 세계를 누빌 준비입니다. 인류의 반격이 이루어지기 전에 박수받으며 스스로 물러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나를 비롯한 식구들이 전염병에 걸리지 않도록 실천하는 것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경제가 곤두박질쳤습니다. 많은 사람이 힘들어합니다. 그중 한 사람이 먹을 것을 훔쳤다가 경찰에 입건되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전에 「레미제라블」 읽었는데 주인공의 삶이 생각나서 다시 읽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은 굶주림 앞에서는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얼마나 굶주렸으면…….’
다행히 훈방 조치 되었다는 말에 숨을 크게 들이마셨습니다. 사회의 용서로 이 사람도 언젠가는 장발장처럼 좋은 일을 할 기회가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알베르 카뮈가 쓴 「페스트」도 한 번 더 읽었습니다. 요약해 봅니다. 조용한 해안 도시 오랑에서 비틀거리다 죽어 가는 쥐 떼가 곳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정부는 페스트를 선포하고 도시를 봉쇄하자 준비되지 않은 도시는 대혼란에 빠집니다. 의사로서 사명을 다하려는 ‘리유’와 우연히 오랑에 체류 중이던 신문기자 ‘랑베르’ 등은 공포와 불의가 절정에 달한 도시에서 페스트에 맞서 싸우기 위해 노력합니다. 한편 이 재앙을 신이 내린 형벌이라고 보고 신의 뜻에 따르자고 설교하는 신부 ‘파늘루’, 모두가 고통에 빠진 상황에서 페스트의 퇴치를 위해 어려움을 감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세상에는 이처럼 코로나를 물리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음속 큰 함성으로 응원합니다.
코로나의 소멸을 기원하며 두 손을 모아봅니다. 오체투지라도 해야 할까요, 백팔배라도 하면 될까요. 아울러 생각하지 않은 삼식이의 탈출도 곧 시작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 필승 코리아, 대-한민국, 코로나야 가라! 우주 밖으로.’으로 보답을 대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