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그날
7. 봄아, 반갑다! 2021313
봄은 소리의 계절입니다. 병아리 같은 햇살이 슬며시 나를 감쌀 때면 어김없이 소리가 찾아옵니다. 어느 날입니다. 갑자기 어미 닭이 바깥마당에, 어미 오리가 개울가에 병아리를 몰고 나타났습니다. 눈 녹은 물이 졸졸 소리 내어 이들을 반깁니다. 봄은 햇살을 달고 병아리들의 뒤를 따라 쪼르르 뒤따릅니다. 어미 닭이 돌담장 밑에 이르자 햇살도 멈췄습니다.
‘고고 고고고’ 소리에 대답합니다. 삐악삐악
“봄인 것 알지.”
병아리들이 대답보다 도랑물이 먼저 속삭입니다.
“알지일지.”
새들이 지지 않겠다고 소리칩니다. 새싹들이 고개를 내밀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바람도 싸늘한 입김을 불어대며 가세합니다.
“내가 뭐 모를 줄 알고.”
겨울을 몰아낸 봄바람은 쀼루퉁한 몸짓으로 담장을 한 번 훑고 지나갔습니다. 나는 봄 햇살이 퍼지는 바람벽을 좋아합니다. 어려서의 향수가 아직도 살아있음이 분명합니다.
늦은 아침을 먹고 나서입니다. 초가지붕 밑의 흙벽에 햇살이 황톳빛으로 퍼질 때면 나는 슬그머니 바깥마당의 돌담에 붙어 섭니다. 검은 돌들은 어느새 온기를 품었습니다. 담장에 바짝 붙어 서서 등을 기댔습니다. 따스함이 전해집니다. 눈 부신 햇살과 눈 맞춤을 피하려고 눈을 감습니다. 붉은 기운에 눈꺼풀도 따스해집니다.
참새 떼가 내 곁까지 다가와 소리만큼이나 몸을 초싹거립니다. 한참이나 수다를 떨던 그들이 내 손짓에 소리를 남기고 구기자나무 울타리로 옮겨 앉았습니다. 소리도 함께 갔으면 했지만 방정맞은 울림은 내 귀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까치가 내 머리 위를 넘나들며 떠들어댑니다.
“내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오는 것 알지.”
“그래, 하지만 이제는 믿지 않기로 했어.”
“왜?”
“네가 수없이 울었지만, 반가운 손님은 딱 한 번이었거든.”
국군장병 위문편지가 인연이 되어 나와 서신을 주고받던 아저씨가 제대하는 날입니다. 그는 학용품을 한 아름 안고 먼 길을 찾아왔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격려의 말을 해주었습니다.
대접받던 까치는 풀이 죽었습니다. 식구가 불어나다 귀한 대접을 받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이제는 해로운 조류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기세만큼은 등등합니다. 나뭇가지를 입에 문 체 자랑합니다.
“너네 아무리 집을 잘 지어도 내 기술을 따라오지는 못할걸.”
어느새 공원에는 여러 종류의 새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비둘기, 까치, 참새, 명새, 박새, 할미새, 어치……. 제각기 구애의 소리와 몸짓으로 공원은 시끌벅적합니다. 나는 이들에게 한동안 마음을 빼앗길 게 분명합니다.
“우리들을 엿보지 마세요. 연애 한 번 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면서.”
그러거나 말거나 이들의 궤적을 쫓다 보면 지난해처럼 어느새 오전이 지나고 또 오후의 해넘이와 마주할 것입니다.
새싹들의 소원도 들어주어야겠지요. 소리 없이 속삭이는 그들을 따라 발길을 옮깁니다.
“뭐야, 나를 눈여겨보지 않고…….”
깨알 같던 눈망울이 며칠 사이에 ‘톡’ 터져버렸습니다. 노랑입니다. 하양입니다. 연분홍입니다. 새끼 밴 암소의 불룩한 배 모양으로 통통 불은 목련의 몽우리는 곧 터질 기세입니다.
나는 새들의 지저귐이나 활동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처럼 식물들의 변화에도 정신을 팔게 분명합니다. 복수초, 제비꽃, 민들레, 매화, 앵두, 벚꽃, 산수유, 보리수…….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봄은 탄생의 계절입니다. 겨울을 무사히 넘긴 동물들이 새끼를 잉태하고 탄생합니다. 식물들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이들은 여름을 먹고 가을을 어루만지고 겨울을 끌어안을 것입니다.
배낭을 꾸립니다.
“여보, 봄나들이 가야지요.”
아내가 거울 앞에 섰습니다. 어제 산 새 모자를 꺼내 보입니다. 아내의 입술이 움직입니다.
‘동무들아 오너라/봄맞이 가자/너도나도 바구니/옆에 끼고서/달래 냉이 씀바귀/ 나 물 캐오자/종달새도 높이 떠/노래 부르네.’
봄이 다 가기 전에 앵두가 부끄러운 얼굴을 하겠지요.
내일은 봄의 먼동보다 먼저 서둘러야겠습니다. 전철을 타고, 시외버스를 타고, 시골 버스를 타고, 걸어 걸어서 또 다른 봄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