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같은 말도 듣기 좋게 20210312
며칠 전입니다. 통신사로부터 메일이 왔습니다.
“귀댁의 통신기기 사용 예약 기간이 도래되었습니다. 연장을 원하시는 경우 연락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통신비의 증가는 없고 필요한 기기는 신형으로 교체해 드리겠습니다.”
이틀 후에 통신사 기사가 방문하여 절전형 기기로 변경해 주었습니다. 리모컨도 기능이 추가된 것으로 교환을 해주었습니다. 음량을 조절하는 단추가 하나 더 추가되었습니다. 그중에는 음성서비스도 들어있습니다. 말을 하면 텔레비전의 채널이 변경되고 알고자 하는 내용의 제목이 뜨기도 합니다. 신기합니다.
내가 텔레비전의 음량을 조절하는 순간 아내가 말했습니다.
“오른쪽 옆구리에 있는 조절 버튼을 사용하지, 불편하게 왼쪽 위에 있는 버튼을 사용해요?”
“나는 왼쪽 버튼이 편리한데.”
“왼손잡이라 그렇구나, 나는 오른손잡이라 그런지 오른쪽 버튼이 더 편리한데.”
“왼손, 오른손이 아니라 평면 위에 있는 버튼이 더 편리하지 않겠어요?”
나는 다시 오른손으로 리모컨을 조작해 보며 말했습니다. 잠시 서로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목소리를 그만 높여야겠습니다. 입을 다물었습니다. 침묵입니다. 마음이 가라앉은 후 생각을 해보니 별것도 아닌 것을 두고 입씨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목소리를 낮추어 말해도 될 것을 왜 갑자기 높였는지 모릅니다.
점심을 먹은 후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코로나 전염병이 나라를 뒤흔드는 동안 나는 일주에 한두 번 이곳을 방문합니다. 나라에서는 사람과의 거리 두기를 강조하니 자연적으로 서로 만날 사람들도 멀리하게 됩니다. 읽은 책을 반납하고 새로운 책을 대출받을 생각입니다.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이미 읽고 싶은 책을 몇 권 골랐습니다. 다시 서가 사이를 지나치는 순간 눈에 띄는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같은 말도 기분 좋게」
말에 관한 책들이 서로 옹기종기 모여 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느 책을 고를까 하다가 제일 먼저 눈에 띈 위의 것을 손에 잡았습니다.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의 말하기 비밀’
나는 말재주가 부족해서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늘 평소에도 부담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제치고는 마음에 듭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오전에 아내와의 일도 있고 해서 제일 먼저 말에 관한 책을 펼쳤습니다. 어쩌다 보니 오늘이 다 가기 전에 읽어버렸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문장들이 몇 개 머릿속을 채웁니다. 그것을 암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연관되는 소제목을 훑어봅니다.
·부드러운 눈 맞춤은 상대는 물론 나의 긴장도 풀어준다.
·멀리서 짓는 미소만으로도 기분 좋은 첫인상을 만들 수 있다.
·상대가 누구든 귀를 기울이는 자세야말로 진보의 첫발을 만들 수 있다.
·상대의 장점을 찾아 칭찬하면, 기분 좋은 대화가 저절로 시작된다.
·부정적인 표현보다는 긍정적인 표현을 사용하자.
·마치 음식을 대접하는 기분으로 풍성한 대화의 소재를 준비해 둔다.
·실언했을 때는 피하지 말고 진심으로 사과한다. 진심만이 용서받을 수 있다.
책을 읽고 나서 생각을 정리해 봅니다. 첫째는 말에 앞서 표정의 중요함을 들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내 말보다 우선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끝으로는 부정적인 말보다는 긍정적인 말입니다.
다시 한 문장으로 요약을 해봅니다.
‘상냥한 표정이 사람을 모이게 한다.’
아내와의 인연을 생각해 봅니다. 어느덧 각자 살아온 기간보다 함께 살아온 기간이 더 길어졌습니다. 결혼 초기야 서로 살아온 과정이 달랐으니 종종 격한 말다툼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순간을 함께 잘 이겨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기는 하지만, 어쩌다 이 시간에도 입씨름의 빌미를 주어야 했는지 모릅니다.
생각해 보니 늘 다툼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됨을 깨닫게 됩니다. 리모컨의 음향을 조절하는데 오른쪽이면 어떻고 왼쪽이면 어떻습니까. 서로 편하게 활용하면 됩니다. 처음에 그렇게 느껴졌던 것도 사용하다 보면 왼쪽 오른쪽이 뒤바뀔 수도 있습니다. 나는 리모컨을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옮겼습니다. 단추를 눌러보니 내 생각대로 평면 위의 단추를 누르는 것 편리합니다. 그렇다고 내 손가락의 조작이 꼭 맞는 것은 아닙니다. 아내의 생각이 맞을 수 있습니다. 옆구리의 단추를 누르는 아내의 손동작이 더 익숙하다면 말입니다.
왜 글씨를 쓰는데 꼭 오른손이어야 합니까?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글씨를 쓰는 과정에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왼손 글씨로 여러 사람의 눈총을 받았습니다. 오른손 왼손으로 갈팡질팡하던 내가 이 학년 때 엄격하신 선생님의 지도로 연필을 오른손으로 옮겼습니다.
나는 언제인가부터 왼손으로 글씨를 계속 썼더라면 명필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들곤 합니다. 일선에서 물러나 한가한 시간이 되었을 때입니다. 심심풀이로 왼손에 연필을 잡았습니다. 처음에는 삐뚤빼뚤하던 글씨가 점차 자리를 잡아갑니다. 오른손보다 왼손의 힘이 더 강하다 보니 연필의 중심이 잘 잡힙니다.
한때 아이들에게 붓글씨 지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글씨체를 잡아주기 위해 왼손으로 아이의 붓 쥔 손을 감쌌습니다. 억센 손은 아이의 붓 중심을 잘 잡아주었습니다. 시간이 날 때면 왼손으로도 붓을 쥐어봤습니다. 연습의 차이가 있다 보니 오른손의 필체가 정리되어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획의 위치를 잡아갑니다.
말과 글씨의 차이를 가지고 비교할 수 없겠지만 한마디로 서로의 감정을 존중하는 자세가 관계를 돈독하게 해 준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두 가지 속담으로 글을 맺어봅니다.
·웃는 낯에 침 뱉으랴.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