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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10시간전

2021 그날

28. 지나 봐야 20210407

‘삼 초면 알 수 있다고요, 첫눈에 알아볼 수 있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단지 호감이냐 비호감이야 하는 정도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콩깍지’라는 말이 생겨났는지도 모릅니다. 신이 아닌 다음에야 상대를 정확히 꿰뚫어 본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습니다. 사람의 겉모습만을 보고는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속 모습을 들여다보지만 금방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텔레비전에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사이좋은 친구입니다. 서로의 취향과 생각하는 바가 비슷합니다. 학교에 입학하자 곧 가까워졌습니다. 좋은 일에는 늘 좋은 법입니다. 소년·소녀기 답게 맛 집을 찾아 떡볶이를 먹고, 때로는 눈치를 보아가며 수업을 한 시간 빼먹고 소위 말하는 ‘땡땡이’를 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입니다. 교실 복도에서 한 남학생이 도시락 주머니를 가지고 서성입니다.


“이 반에 재성이 있지.”


교실에 들어가려던 여학생 둘이서 고개를 끄덕입니다. 남학생은 주머니를 건네주며 전달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이후 잘생긴 외모에 반해 두 여학생이 짝사랑에 빠져듭니다. 고민 끝에 둘은 교대로 남학생에게 사귈 것을 제안하기로 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거절을 당할 것을 예견하긴 했지만 밑져봐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시도합니다. 외모가 좀 빠지고 가정이 어려운 친구는 고백 자체를 받아들이기 싫었지만, 친구의 끈질긴 요구에 수용하게 됩니다. 결과는 예상외였습니다. 남학생은 먼저 제안한 여학생에게는 거절하고 나중 여학생에게는 호감을 나타냅니다.


“나도 너에게 사귀자고 고백하고 싶었거든.”


사실을 확인한 두 여학생은 결국 결별합니다. 거절을 받은 여학생이 푸념을 쏟아냅니다.


“눈이 잘못된 거 아니야, 그 오빠는 참 이상하지?”


친구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이어서 말합니다.


“꼬질꼬질한 너를 왜 좋아하는 거야? 우리 집은 부자고, 내가 더 예쁘고, 공부도 더 잘 하 고……. 분명 콩깍지를 씌운 게 분명해!”


약속은 빗나갔습니다. 오빠에게 사귈 것을 제안하기 전에 두 여학생은 어떤 결과가 나와도 우정은 변치 말자고 약속했습니다. 거절당한 친구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는 친구를 외면한 채 골목길을 달려 나갑니다.


그동안의 우정은 연민이었을까요.


옛말에는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습니다.’


형제간에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니 남과의 관계에 있어서야 정도가 같다고 해도 더 배가 아플 수 있겠다고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나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없다면 이 세상이 있다 한들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어찌 보면 인간은 벽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꺼운 벽이냐 얇은 벽이냐 하는 차이일 뿐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나 하고 잠시 묵상에 잠깁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성자가 아닙니다. 더구나 부잣집 아이도 아니고, 외모도 뛰어나지 않고, 공부를 썩 잘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골목길을 빠져나간 학생과 같은 삶을 살지 않았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 분명 남의 재주나 외모를 시기한 적이 있으니 하는 말입니다. 내가 더 노력했다는 생각에 친구의 성장과 발전을 무시했습니다. 내 눈에 비치지 않았던 숨은 힘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와는 다른 말을 해볼까 합니다. 내가 신춘문예를 비롯한 공모전에 작품을 응모하여 몇 차례 당선된 일이 있습니다. 함께 노력했던 동료가 말했습니다.


“축하합니다. 나는 열 번도 넘게 응모했는데 단 한 번에 입상하다니…….”


축하의 눈빛보다는 시기의 표정이 서려 있습니다. 횅하니 곧바로 내 옆을 떠나버렸습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게야, 죽어봐야 알지.”


고전을 대하다 보면 관포지교(管鮑之交)를 비롯한 수없이 많은 우정에 대한 고사성어가 많습니다. 그만큼 옛날부터 우정의 중요함을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여깁니다.


익자삼우 손자삼우라는 말도 있습니다. 익자삼우(益者三友)는 정직한 사람(友直), 신실한 사람(友諒), 견문이 많은 사람(友多聞)을 말하며 이런 친구로 두면 좋은 일이 많이 생긴다고 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손자삼우 (損者三友)는 아첨하는 사람(友便辟), 부드러운 척하는 사람(友善柔), 말만 잘하는 사람(友便佞)을 일컬으며 이런 친구를 사귀게 되면 해로운 일을 많이 겪게 된다는 말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익자삼우만을 옆에 두고 손자삼우는 멀리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들은 내 주위에 혼재해 있게 마련입니다. 안다고 해도 모두를 구별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너와 나는 정직과 겸손함을 잃지 않고 서로를 존중해야겠습니다. 성자는 아니어도 남을 헐뜯고 겁박하거나 무시하기보다는 상대의 잘됨을 인정하고 축하해 주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나와 개개인의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말보다는 실천을 중시하는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끝으로 비교하는 삶이 서로의 간극을 벌리는 역할을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 안의 힘과 매력을 찾을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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