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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Dec 20. 2024

☏2021

17. 나는 신입생 20210910

기다리던 글쓰기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것은 오륙 년 전입니다. 일 년을 전반기 후반기로 나누다 보니 많은 사람과 만나고 또 헤어집니다. 강사도 두 분을 만났습니다. 배움의 장소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만나는 강사분과는 돈독한 교류는 없지만 나를 알고 있고 나 또한 그분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노력을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과 깊은 정을 주고받는 살가운 사람이 못됩니다. 만나는 동안 서로 인사를 나누고 같은 것에 교감을 나누기는 하지만 헤어지고 나면 상대방에 대해서 관심이 멀어집니다.

강사분이 이번 시간에는 오리엔테이션을 한다고 했습니다. 밴드에 얼굴이 보입니다. 전보다 건강한 모습입니다. 머리모양도 달라졌습니다. 외모에 신경을 쓴 것 같습니다. 화면을 보여주는 작업공간도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내 생각이 맞습니다. 외모에 신경을 썼다고 강조했습니다.


오늘은 자신의 간략한 소개와 삶의 과정을 이야기했습니다. 앞으로 이루어져야 할 계획과 활동도 이야기를 했습니다. 밴드의 특성상 인사를 주고받을 수 없으니 일방통행입니다. 나는 요즘 수강하고 있는 미술교육이나 영어 회화처럼 서로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화상통화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루한 시간입니다. 강의를 들을 수도 없고 듣지 않을 수도 없는 애매한 상황입니다. 처음 강의를 듣는 수강생은 새로운 강사와 환경에 관심이 집중될 게 틀림없습니다. 나는 꾸준히 활동하다 보니 강의 계획이나 해야 할 내용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열 번 이상이나 들었으니 쉽게 말하면 뭐 뻔한 이야기입니다. 글쓰기의 주제도 이미 경험한 것들입니다. 주제가 바뀌었으면 좋겠는데 몇 항목 빼고는 이렇다 할 것이 없습니다. 강사에게 미리 귀띔해 주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기는 해도 혹시나 중요한 내용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 듣기를 그만둘 수가 없습니다.


잠시 책을 펼쳐 들었습니다. 책을 읽는 속도가 서너 배는 느려집니다. 듣는 둥 마는 둥 책의 내용에 마음을 돌립니다. 지루한 시간입니다. 강의 시간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이분은 사적인 말을 많이 합니다. 자신을 둘러싼 주변의 이야기와 수강생들의 건강을 비롯한 안부를 묻는 일로 시간을 허비합니다. 수강생들이 나이가 많으니 어찌 보면 근황을 묻는 것이 상대방을 배려하는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종종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 합니다. 대면 수업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우리가 자기의 부모님 같다는 말을 수시로 했습니다. 이분의 장점은 상냥함입니다.


나는 십여 년 전만 해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사십여 년을 교직에 있었으니, 강사들의 활동과 태도에 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학생 개개인이 다른 것처럼 가르치는 사람들의 특성이 제각기 다름을 인정합니다. 나도 그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일 년에 한두 번씩 동료들은 물론 다른 학교의 선생님들에게 자신의 수업을 공개합니다. 평가받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자신의 수업 기술을 향상하기 위한 기회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교사는 남에게 수업을 보여준다는 것을 좋아할 리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학년이나 학교를 대표해서 수업하는 것에 부담을 갖게 됩니다. 동료들과 교장과 교감 장학사, 또는 다른 학교의 교사들이 함께 모여 수업 평가를 하기도 합니다. 노력한 만큼 성과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때도 있습니다. 부끄러움 자체입니다. 이런 이유만은 아니지만 교사들은 아이들을 위해 수업 기술을 향상하기 위해 늘 노력합니다. 책을 보고, 교사들의 수업을 수시로 참관하고 새로운 교육 기술을 받아들이기 위해 애씁니다. 방학에는 수업 기술을 익히기 위해 교육 연수도 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이 不如一見)이란 말이 있습니다. 백문(百聞)은 ‘백 번 들음’의 뜻이고, 불여(不如)는 ‘같지 않음’의 뜻입니다. 그리고 일견(一見)은 ‘한번 봄’의 뜻이다. 그러므로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함을 뜻하는 말로, 무엇이든지 실제로 경험해야 확실히 알 수 있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나는 학교에 있는 동안 공개 수업을 많이 했습니다. 칭찬과 격려가 있었지만, 때론 부끄러운 말도 들어야 했습니다. 반대로 내가 다른 교사들의 수업 참관하면서 이런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잘한 수업이나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수업에는 모두가 배움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장점은 내 것으로 단점은 고쳐보려는 노력입니다.


철들면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철이 몸에 들어가면 무거워서 활동이 원활하지 못하니 당연히 죽겠지요. 농담의 말입니다. 수업에 대한 자신감이 쌓이나 했는데 어느새 퇴직이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그 무렵입니다. 지금은 건강하니 내가 앞으로 십 년만 더 아이들을 가르치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습니다. 세월은 나를 무한정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지금은 가르치는 처지에서 배움의 길을 다시 걷고 있습니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배우다 보면 강사들의 수업 기술이나 열정을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수업의 방법은 각양각색입니다. 천차만별입니다. 열정 또한 다릅니다. 서당 개라고요? 방심이나 게으름은 금물입니다. 이왕이면 배우는 사람이나 가르치는 사람 모두가 열정을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초기의 관심만큼이나 이번에도 좋은 결과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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