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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7시간전

☏2021

19. 약자의 설움 20210912

약자에게는 서러움이 많습니다. 같은 조건이라도 강자보다 힘이 더 듭니다. 어려움에 닥쳤을 때 괴로움도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모처럼 영화 한 편을 보았습니다. 텔레비전을 켜고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는데 공교롭게도 프로그램의 시작을 알리는 문구가 뜹니다. 제목에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편안한 자세로 의자에 몸을 의지했습니다. 화장실을 다녀오는 순간의 시간을 제외하고 눈과 마음이 화면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제목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줄거리를 간추려 봅니다. 남아프리카로 이주한 영국인 2세인 피케이는 어릴 적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남은 어머니마저 쓰러지자, 기숙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주인공은 학교에서 유일한 영국인이라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합니다. 스트레스로 인해 오줌싸개가 되지만 줄루족 주술사의 도움으로 두려움을 극복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이후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게 되자 할아버지와 생활하게 된 피케이는 진정한 첫 스승인 독일인 박사를 만나 자연의 위대함을 배웁니다. 전쟁 동안 독일인을 가두라는 정부의 명령으로 박사는 감옥에 갇힙니다. 피케이는 박사를 만나러 감옥에 다니면서 흑인 히엘 피트로부터 권투를 배우고 그와 친구가 됩니다. 감옥에서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히엘 피트와 다른 죄수들에게 여러 가지 일을 도와주던 피케이는 ‘비를 내리게 하는 주술사’라고 불리며 그들의 희망이 됩니다.


그 후 성장한 피케이는 권투 시합을 보러 온 마리아에게 첫눈에 반하지만 아프리카너인 마리아의 아버지는 이들의 교재를 말립니다. 포허 관장 밑에서 흑인들과 훈련하던 피케이는 진정한 평등이란 배움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흑인 권투선수인 듀마의 말에 이들을 위해 야학을 시작합니다. 이를 저지하는 경찰과 충돌하고 마리아마저 잃고 실의에 빠집니다. 인생의 의미를 잃고 방황하던 피케이는 자신이 가르쳤던 사람들이 교육을 전파하는 모습에 다시 희망을 얻고 다시 듀마와 자유를 향한 여정에 나섭니다.


약자는 늘 서럽습니다. 국가든 개인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남아프리카의 이야기이지만 일제 강점기의 우리나라의 현실과도 견주어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의 억압 밑에 얼마나 많은 국민이 고생하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쫓기고 희생되었습니까. 나는 일제 강점기를 경험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학교 교육이나 역사책, 어른들의 이야기를 통해 일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멸시하고 고퉁을 주었는가 짐작할 뿐입니다. 우리는 주권을 되찾고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국민으로 자리매김했지만, 아직도 일본과의 불편한 관계는 지속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을 사과하지 않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를 업신여깁니다. 일본 정신대나 강제노역의 문제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치부를 세상에 드러내기 싫기 때문입니다. 우리 동네에도 강제노역으로 탄광에서 고생하다 일본의 패망으로 간신히 돌아오신 분이 계셨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같은 전쟁을 일으켰으면서도 독일과는 다른 시선으로 전쟁을 보고 있습니다. 독일인들은 침략 국가와 희생된 국민에게 끊임없는 사죄와 용서를 구하고 있지만 일본은 정반대입니다. 그들은 동남아시아를 침공하여 수많은 만행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희생 국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피해국들의 항의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를 보입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아직도 군국주의의 부활을 꿈꾸고 있습니다. 자위대란 핑계로 다시 군사 대국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 이래 많은 침입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중국의 침략과 왜구의 노략질은 수없이 발생했습니다. 해방된 후에는 생각하기 싫은 동족상쟁인 육이오도 겪었습니다. 힘이 약해 보이면 주변국들은 먹잇감으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립니다. 우리가 당한 침략은 국력이 약화하였을 때입니다.


전쟁은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중국이나 일본은 자신들의 힘을 바탕으로 우리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북한 또한 마찬가지로 휴전선을 넘보고 있습니다. 얼마 전 아프가니스탄이 내전을 겪었습니다. 종교와 이념의 차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미국이 철수하자 반군이 국토를 장악했습니다. 억압으로 벌써 국민의 신음이 들립니다. 도움만으로는 한계가 있게 마련입니다. 자신의 힘을 키워야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힘을 키우지 못하면 도움을 받는 것도 쉽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힘 있는 자만이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강자는 약자를 배려하는 데 인색한 면이 있게 마련입니다. 아직도 약자를 상대로 사기를 치는 일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정이 급한 사람들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여 신체적 형벌을 가하거나 물건 또는 금전을 갈취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뉴스에서 흔히 보고 듣는 내용들입니다.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일찍이 약자의 억울함에 많은 것을 알았습니다. 힘이 없는 사람, 가난한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약자의 길로 빠져듭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일하고 부지런히 배워야 합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우리 국민이 속박을 이겨내고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교육과 근면 성실 때문입니다. 나라를 일으키는 것은 지도자의 현명한 판단과 국민의 협조이며, 가정의 삶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가장을 비롯한 식구들의 노력입니다. 남을 이기는 것은 우선 나를 이기는 것입니다. 내 안의 나를 잘 다스려야 합니다. 내가 나를 돕지 않으면 남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희생을 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나의 몫을 다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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