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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오월 Sep 15. 2023

그건 진짜였을까

[ 어중간한 소설 ] S#2. 아마도, 2017년 12월

4차선의 도로변에 바짝 붙어 있는 5층짜리 근린생활시설. 전면부가 도로에 길게 면하고 폭은 좁아서 길쭉한 직육면체 모양의 건물이다. 1층 한가운데에 건물출입문이 있고 그 안쪽으로 엘리베이터, 계단실, 화장실이 모인 코어가 형성되어 있으며, 층마다 코어를 기준으로 양쪽에 두 개의 임대공간이 대칭을 이루며 배치된 형태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이 건물 3층의 오른쪽에 입주해 있다.


사무실 평면은 어중간한 각도의 모퉁이 하나, 튀어나온 기둥 하나 없이 정확하게 직사각형을 이룬다. 출입문으로 들어서면 좁은 통로의 오른쪽에 대표님 방, 왼쪽에 회의실과 탕비실이 있고 이들을 지나면 다시 직사각형인 직원들의 업무공간이 나온다. 열댓 명 정도가 파티션으로 구획된 네 개의 공간에 넉넉하지도 비좁지도 않게 앉을 수 있는 정도의 면적이다. 직사각형에서 두 개의 긴 변에 해당하는 벽이 하나는 도로에 면하고, 반대쪽은 주차장에 면하고 있으며 창이 여러 개 있기 때문에 채광과 통풍에 유리할 수 있다. 그렇다, 채광이 좋은 게 아니라 좋을 수 있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모니터에 비추면 안 보여서 일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모든 창이 늘 블라인드로 가려져 있고 사무실 내부는 새하얀 형광등 빛으로 가득하다. 해 때문에 모니터가 눈부신 시간은 하루의 일부분이지만 아무도 해의 움직임에 따라 블라인드를 열었다 닫았다 하기를 선택하지 않는 것이다. 블라인드는 햇빛만 차단할 뿐 허술한 프레임의 2중창으로 바깥의 소음과 냉기, 열기는 고스란히 들어온다. 차라리 창이 없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이 공간의 유일한 장점이 무의미해지고 나니 달리 묘사할 것도 없이 평범한 사무실 그 자체이다.   

 




여유 있게 출근 준비를 하는 것보다 일분이라도 더 자는 게 좋기 때문에 빠듯하게 일어나 헐레벌떡 출근길에 나선다. 뛰기 반 걷기 반으로 역에 가서 전철을 타고 가다가, 갈아타고 또 간다. 서울 강북에서 강남으로의 출근길 피크타임. 수많은 사람이 거대한 물결처럼 움직이는 데에 나는 그저 휩쓸릴 뿐이다. 여기서 휩쓸린다는 말은 은유가 아니다. 일단 이동하는 사람들의 무리 안으로 들어가면 그들의 속도에 맞춰야 하고 방향을 거스를 수 없다. 사람을 더는 태울 수 없을 정도로 꽉 채우고 달리는 전철 안에서 이따금 발뒤꿈치가 바닥에서 떠오르는데, 이때 힘을 빼고 가만히 있으면 휘청일지언정 절대로 넘어지지 않는다. 마치 물속에 있는 것처럼. 모두 아무 말 없이, 더 어찌할 것도 없으니, 멍하니 이번 역이 어디고 다음 역이 어디인지 알려주는 안내판만 보고 있다. 그 와중에 옆 사람이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기에 내가 좀 더 불편해지더라도 어깨랑 팔을 겹게 움직여 틈을 만들어줬더니 스마트폰을 꺼내서 들여다본다. 가슴속에서 불길이 치솟는다. 저걸 빼앗아 모서리로 저 파렴치한 정수리를 힘껏 내리 찍어 응징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심장이 쿵쾅거린다. 내 정신건강만 해치고 나만 손해니까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한다. 못 본 걸로 하자.


겨우 진정되려는 순간 앞 역에 아직 전철이 서 있기 때문에 선로에 서서 잠시 기다린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내내 기어서 와 놓고 서서 기다리기까지 하겠다고? 또다시 머리가 뜨거워지면서 심장이 쿵쾅거린다. 출근 시간에 전철 운행을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닌데 매일 이렇게 지연되는 건 직무 유기인가 무능력인가, 설령 지연되더라도 중간에 빨리 달려서 늦어진 시간을 만회하면 될 텐데 일부러 이러나, 이렇게 대충 운행할 거면 시간표는 왜 있는데! 생각은 점점 더 나쁜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사실 나도 알지. 역마다 많은 사람이 타고 내리느라 시간이 더 걸리다 보니 지연되고, 많은 사람을 실어 나르기 위해 열차를 많이 운행하다 보니 열차 간 간격이 좁아서 제 속도를 낼 수 없다는걸.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해도 짜증은 나는 거고 어디에든 쏟아내고 싶은 거다. 다만 그 대상이 열차의 운전자나 다른 승객처럼 특정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열차’ 자체를 원망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대상이 명확하면 그에게 어떤 식으로든 분노를 표출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이놈의 전철이……. 아니다,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혀야겠다. 못 들은 걸로 하자.


어느덧 다음이 내릴 역. 출입문이 멀다. 전철 안에서 내가 서 있는 위치도 내가 정하는 게 아니라 함께 타는 사람들 사이에서 떠밀려 결정되는데 오늘은 좌석과 좌석 사이의 통로 한가운데까지 밀려 들어왔다. 내리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문 앞으로 가야 한다. 내리려는 기척을 보이면 알아서 틈을 내주는 사람도 있지만 그냥 버티고 서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한 사람 밀고, 또 한 사람 밀어 틈새를 벌리면서 문앞으로 전진한다. 늪에서 수영하는 느낌이랄까. 수영을 안 해 봤고, 정확히 말하면 못 해 봤고, 늪에 들어가 본 적도 없지만 전적으로 그렇다.


이쯤 되면 “그러게, 좀 일찍 사람이 많지 않을 때 나오지 그랬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서울의 도심부를 관통하는 출퇴근 동선의 피크타임이 얼마나 긴지 모르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모른다면. 조금 일찍 나온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이동시간까지 얹어서 더 일찍 나오려면 도대체 몇 시에 일어나야 하는지 알고도 그렇게 말한다면 소시오패스까지는 아니더라도 반사회적 인격장애거나, 그것도 과하다 싶으면 공감 능력 부족 정도는 될 거다. 실제로 회사 직원 중에서 아침잠을 포기하고 여유로운 출근길을 선택한 사람이 있기는 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집에서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출근길에 나서면 7시 반쯤 사무실에 도착하는데, 오는 내내 버스와 전철에서 앉아서 잘 수 있고 사무실에서도 근무시작 시간인 9시까지 책상에 엎드려 자기 때문에 잠자는 시간이 부족하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근무를 시작할 무렵 그는 늘 부스스하고 몽롱해 보인다. 일찍 출근한 누군가가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불도 안 켜고 엎드려 자는 그를 보고 어제 집에 안 갔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전 직원이 출근해 일을 시작하기까지 못 일어나서 깨워줘야 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방 침대에 누워서 한 시간 반을 더 자고 힘든 출근길을 감수한 나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전철에서 내리자마자 저절로 숨이 크게 쉬어지면서 눈은 볼 수 있는 가장 먼 곳으로 초점을 옮긴다. 시원하다. 회사에서 제일 가까운 전철역인 이곳은 출퇴근 시간에도 대체로 한산하다. 통근자들이 많이 이용하지 않는 역이라는 뜻이고 그 이유는 업무공간이 많지 않아서일 것이고, 근본적으로는 주변 지역에 업무공간이 집적될 만한 환경이 갖추어지지 못했다고 유추할 수 있겠다. 그 환경이라는 건 대표적으로 편리한 교통, 매일 가야 하는 식당과 카페, 문구점이나 출력소처럼 업무와 관련된 시설, 은행이나 약국 같은 생활편의 시설, 그 외에 업무가 아니더라도 삶의 질 본연의 가치와 밀접하게 관계있는 오픈스페이스 같은 것들을 들 수 있겠지. 그러니까 내가 회사의 사장이고 직원들의 원활한 회사 생활을 우선하여 사무실의 위치를 정하고자 한다면 고려하지 않을 동네라는 거다. 반면에 회사가 어디에 있냐고 하면 강남이라고 대답할 수 있으면서 막상 임대료는 강남 같지 않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나. 내가 사장이라면 말이다.


승강장에서 계단을 올라 개찰구를 통과한 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일반 건물이라면 너끈하게 3개 층이 될 만큼의 높이를 올라간다. 지상의 여기저기로 나가는 출구들을 향하는 널찍한 통로를 좀 걷다가 드디어 마지막 계단을 만난다. 바깥이 보이지는 않지만, 바깥의 찬 공기가 계단을 타고 내려와 있는 게 느껴진다. 그래, 겨울이고 찬 공기는 아래로 움직이니까 당연해. 코트 깃을 펴서 목을 감싸도록 세우고 계단을 오른다. 팔짱을 끼고 고개를 숙인 채 계단에 왼쪽, 오른쪽 번갈아 가며 놓이는 내 발을 보면서 올라가다가, 아직 지상에 머리를 내놓기도 전에 갑자기 강하게 휘몰아치는 찬바람에 식겁한다. 출입구 저 위에서 거대한 바가지에 가득 담겨 있던 얼음장이 한꺼번에 쏟아진 것 같다. 일순간 내 앞쪽에서 나풀거리던 나의 모든 것들, 머리카락과 옷자락과 가방이 내 뒤쪽으로 쏠렸다. 이런 걸 두고 바람이 불었다고 할 수는 없다. 이건 공격이고 나는 당했다. “에이, 씨.” 오늘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다.  


전철역 출입구를 나와 지상에 다다르면 경사가 눈에 보일 정도로 가파른 4차선 도로가 뻗어있다. 당연히 그 경사는 위쪽을 향하며, 회사는 그 길을 따라 10분 남짓 올라가야 있다. 지각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서둘러 걸을 때가 기준이다. 건물에 출입하는 차량 동선 때문에 자주 끊기고 보도블록이 들려 울퉁불퉁하며, 발을 땅에 디딜 때마다 발목이 오른쪽으로 꺾이는 느낌이 들 정도로 기울어지고, 심지어 좁기까지 한 보도를 걸어 올라가는 출근길이 오늘로써 대략 5백 번은 넘을 것 같은데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니, 매번 화가 난다. 보도를 침범한 자동차와 자전거에 화가 나고 애초에 좁고 기울어지게 보도를 설치한 구청에 화가 난다. 번화가 역세권에 있던 회사가 굳이 왜 이 동네로 이사 왔는지, 나는 왜 이렇게 힘들게 출근하면서도 이 회사에 계속 다니고 있는지 생각할수록 화가 나고, 더우면 더워서 추우면 추워서 화가 난다. 식식거리며 올라가는 데 턱이 뻐근한 걸 보니 나도 모르게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었나 보다. 잔뜩 찌푸리고 있어서 미간에 주름도 잡혔을 것이다. 엄연히 법적으로 ‘차’에 해당하면서 굳이 좁은 보도에서 달리겠다는 자전거를 피해 가로수 보호대 위에 서 있다가 다시 보도를 밟는 순간 불쑥 솟아 있던 보도블록 때문에 발목이 꺾이면서 휘청한다. 그래서 오늘 두 번째 뱉은 말도 “에이, 씨.”다.  


그렇게 도착한 사무실. 오르막길의 꼭대기쯤에 있는 오래된 5층짜리 근린생활시설의 3층에 있다. 여기까지 오면서 충분히 지쳤기 때문에 걸어 올라가는 것보다 느린 엘리베이터를 굳이 기다렸다가 타고 올라간다. 현관문을 열고 곧장 내 자리로 가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선 채로 책상 위에 놓인 컴퓨터 전원을 켜는 것이다. 부팅되는 동안 가방을 보조 테이블에 내려놓고 겉옷을 벗어 의자에 걸쳐놓은 다음 탕비실로 간다. 종이컵을 하나 꺼내고 커피믹스로 커피를 탄다. 커피믹스의 느끼하고 단맛이 싫지만, 출근길에 카페에 들러 아메리카노를 사 올 만한 여유가 없다. 매일 마시는 커피 두 잔을 모두 카페에서 사서 마시면 커피값도 부담되고. 커피믹스의 길쭉한 봉지 윗부분을 뜯고 아랫부분을 손으로 꽉 쥔 다음 천천히 가루를 종이컵에 쏟는다. 봉지 안에 커피, 설탕, 프림 순서로 들어있고 완벽하게 섞이지는 않았으므로 가급적 설탕과 프림을 적게 넣고 싶어서이다.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고, 남은 가루를 쓰레기통에 버린 빈 봉지로 대충 휘저은 후 바로 한 모금 마신다. 만족스러운 맛은 아니지만 여태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은 속에 처음으로 무언가 들어가는 순간이다. 이제 종이컵을 들고 자리로 돌아가서 의자에 앉는다. 드디어 출근이 완료되었다. 오전 9시 정각.


지각하지 않으려고 추운 날 땀 흘리며 오르막길을 뛰어온 게 회사에서 직원들의 출퇴근 시각을 체크하기 때문은 아니다. 직원을 채용할 때마다 회사에서는 어쩔 수 없을 때만 야근하고 대신 안 바쁠 때는 마음 편히 일찍 퇴근하자는 취지로 포괄임금제를 선택했다고 설명하지만, ‘일찍’이 퇴근 시간인 6시 정각을 뜻한다는 건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게 포괄임금제는 마법처럼 시간 외 근무수당을 안 주는 것이 불법이 아닌 것으로 만들고, 회사는 직원의 추가 근무 시간을 알 필요가 없으므로 출퇴근 시간을 체크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대표와 임원이 별일 없는 한 일찍 출근해 자리에 앉아 있는데, 직원이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전체 인원이 스무 명도 되지 않는 작은 회사에서는 누가 지각을 자주 하는지 모두가 알고 있으며, 회사가 필요할 때 ‘지각’을 빌미로 삼을 거라는 생각을 떨칠 수도 없다. 예전에 누군가가 몇 달 동안 매일 야근하다가 도저히 못 참겠기에 일부러 열 시쯤 출근하기 시작했고, 결국 출근 시간을 지키라고 타박하는 임원에게 그렇게는 못 하겠으니 자를 테면 잘라 보라고 했다는 신화 같은 이야기가 있기는 하다.


종이컵에 반쯤 담겨 있는 믹스커피를 한 모금씩 마시며 부팅이 완료된 컴퓨터에 로그인하고 건성으로 이것저것 클릭한다. 오늘도 점심시간에 꼼짝 않고 자리에 앉아 일을 해야 할 것 같지만, 지금부터 아등바등해 봤자 점심시간이 생기지는 않을 게 분명하기 때문에 일단 잠시 생각 없고 싶다. 하지만 맛도 없는 커피를 아무리 조금씩 아껴서 삼켜도 컵은 금방 바닥나고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할 때가 된다. 오후에 할 회의와 관련해서 발주처에서 요구사항을 이메일로 보냈을 게 분명하니 먼저 확인해야겠다. 아니, 자기네 마음에 쏙 드는 회의 자료를 만들어 오라고 할 거면 회의는 도대체 왜 하는 건지 몰라. 그냥 자료를 받아보면 되잖아. 회사의 이메일 계정에 접속한다. 여기까지는 뭐 늘 있는 일이라 생각이라는 걸 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된다. 그런데 메일 수신함을 클릭하는 순간 위가 굉장히 아프다. 마치 뱃속에서 수류탄이 터진 것처럼 '쿵쾅쿵쾅' 커다란 충격이 연달아 느껴지고, 폭발음만큼 큰 소리가 몸 밖으로 새어 나온 것 같다. 파티션 너머로 주변에 앉아 있는 동료들을 살펴보는데 어쩜 아무도 내 쪽을 신경 쓰지 않고 있다. 순간이긴 했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강한 통증이었는데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다니. 내가 헛것을 느꼈나? 여느 날과 똑같은 아침이고 특별히 위통이 생길 이유가 없기도 하지. 그렇지만 통증이 너무 크고 생생한데. 그리고 생각한다. 이제 쉴 수 있으려나. 이 정도로 아프면 큰 병인 것 같으니 그렇다면 일을 그만둔다고 해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하겠지, 하면서 묘한 희망이 일어난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치료와 회복이 불가능한 병을 진단받고 어쩔 수 없이 백수로 살게 되면 어떨까.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하고, 보는데 보지 않는 상태로 머릿속에 아픈 백수의 삶을 그려본다. 병원에 입원하지 않아도 된다면 괜찮지 않은가. 이웃집이 모두 비어 고요한 평일 낮에 집에서 늘어져 있다가 느린 걸음으로 장 보러 동네 마트를 다녀오는 길에 쏟아지는 햇살, 힘들면 누워서 쉬고 기운 나면 앉아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없고, 집이 지저분해도 게으른 나를 탓하지 않아도 되고. 그래서 몸에는 기운이 없지만 머리는 맑은 느낌. ‘근로’는 할 수 없어도 불편하게나마 일상생활이 가능한 정도로 아픈 삶이 지금보다 나쁠 게 뭐가 있지? 솟구치는 화 때문에 심장이 벌렁거릴 일도 억지로 참느라 이를 꽉 깨물어서 턱이 아플 일도 없겠지. 잠시 생각만 해 보는데도 설렌다. 새콤달콤한 사탕을 떠올리다 입 안에 침이 고이는 것처럼 말이다. 집 전세금을 쓰거나 대출을 받지 않고 병원비를 감당할 수 있다면, 통장에 있는 돈을 다 쓸 때쯤 완쾌돼서 다시 돈벌이를 시작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이르렀다가, 이게 뭔가 싶어 진다. 나는 병에 걸리고 싶은 게 아니라 힘들지 않게 살고 싶을 뿐인데.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 일이 뭐라고, 회사가 뭐라고, 남들이 나한테 책임감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게 뭐라고.


이제 위통은 이제 다 사라졌다. 발주처에서 보낸 이메일을 열어서 읽는데, 문득 화면에 어슴프레 비친 나의 그림자가 보인다. 자리에서 일어나 뒤돌아선다. 새하얀 벽에 새하얀 블라인드가 있다. 직원 중에 경력이 많은 순서로 앉은 창가 자리. 항상 블라인드에 가려지고 등지고 앉아 있어서 창밖을 본 기억이 없다. 가까이 다가가서 눈높이에 있는 부분을 양손으로 벌리고 그 틈으로 바깥을 본다. 바로 앞에 버스정류장이 있었구나. 조금 전에 내가 잔뜩 웅크린 채 땅만 보고 걸어왔던 그 길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네. 추운 겨울 아침의 풍경이 제법 활기차 보인다. 블라인드를 걷어야겠다. 조용한 사무실 안에 “드르륵드르륵”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직원들이 내 쪽을 슬쩍 보다가 이내 각자의 모니터로 시선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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