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에 들어가던 1998년에 완공된 건물. 20년이면 오래된 것 같지만 이 동네에서는 나이가 별로 많지 않은 편이다. 3층의 네모반듯한 형태, 층마다 수평으로 길게 창이 이어지고 짙은 베이지색의 타일로 마감된 입면이 어디선가 본 듯하다. 상업건물마다 업보처럼 덕지덕지 붙어 있는 간판을 다 떼어내고 보면 이렇게 생긴 건물이 전국에 수두룩할 것이다. 다만, 1층에 있는 식당은 넓은 창으로 멋진 내부 공간이 들여다보여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외의 층은 간판도 별다른 외부 장식도 없어서 건물의 외관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고, 심지어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 짐작도 안 된다.
이 건물의 3층은 건축물대장에 주택이라고 명시되어 있지만 원래 집이 아니었던 공간을 집으로 용도변경 한 게, 그것도 대충 한 게 분명해 보인다. 문을 열자마자 사무실 같은 느낌이 들고 침실과 주방은 사무실 한쪽에 딸린 것처럼 보여서 편안한 보금자리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도 나는 여기를 생면부지의 동네에서 살아갈 안식처, 집으로 선택했다. 일생일대의 선택을 한 건지 폭풍에 휩쓸리고 떠밀려서 온 건지 모르겠지만 길은 정해졌다. 어디로 향하는지는 몰라도 길은 분명히 이어질 것이다.
서울에서 15년 동안 살면서 6번의 이사를 했다. 대부분의 서울 사람이 그렇듯 서울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서울에 내 집이 없다. 일을 찾아서, 경기도에서 서울로의 출퇴근이 너무 힘들어서 서울로 왔고, 내 나이 또래 직장인 평균이라 생각되는 연봉을 받으며 중소기업에 다니는 회사원으로서 감당할 수 있는 보증금 높은 월세와 전셋집을 전전했다. 계약기간이 끝나기 몇 달 전부터 집세를 올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시작되고, 이삿짐을 빼는 순간에도 무사히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전전긍긍하고, 이사를 마친 후 몇 달은 바뀐 집의 환경과 집 주소에 적응하느라 정신없는, 이사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긴 시간 겪는 지난한 과정이다. 셋집의 계약기간 2년 중 이사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익숙하고 편한 우리 집으로 지내는 건 1년 남짓 되려나. 마지막 집에서 5년을 살면서 이사의 고통이 희미해지지 않았다면 또다시 이사를, 그것도 서울에서 먼 도시로 이사를 선뜻 결심하지 못했을 것이다. 저질러 놓긴 했는데 자신은 없나 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생면부지의 도시에서, 내가 살고 싶은 곳에서 한 번 살아보겠노라고 다들 놀랄 정도로 호기롭게 선언하고 다니는 중이다. 동네방네 떠들어 놓고 안 가면 창피할 테니까 혹시나 이사를 포기하고 싶어질 때를 대비해서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기한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계약기간을 한참 남겨두고 집주인의 사정에 맞춰 내가 이사를 나가야 하는 상황임을 고려해 집주인이 다른 동네에 있는 자기 소유의 임대주택에서 방 하나에 거실 겸 주방 하나짜리 집, 사실상 길쭉한 원룸의 가운데에 벽 하나 세운 정도의 작은 집을 시세보다 저렴하게 빌려줬다. 계약기간은 내가 살고 싶은 집을 찾아서 나가고 싶을 때까지. 그렇다고 해서 시간이 무한정으로 주어지는 건 아니다. 동네도 집도 탐탁하지 않은 주거환경을 빨리 벗어나고 싶고, 회사를 그만둔 지 세 달이 넘으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 마음을 무겁게 누른다. 결정을 해야 할 때이다.
낯선 도시에서 보금자리를 찾는 일은 예상보다 더 막막하다. 왕복 기차 요금만 해도 부담이 되니 방문 횟수를 최소화해야 하는데 인터넷에 정보가 공개되는 매물이 드물기 때문에 부동산에 직접 가는 수밖에 없다. 이 동네뿐 아니라 주변 지역까지 눈에 띄는 부동산마다 들어가 보는 거다. 이왕 서울을 벗어나는 거 서울에서 지긋지긋하게 살았던 다가구주택 밀집 지역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고 싶고, 작은 동네 안에서 고르자니 선택지가 얼마 없어서 아예 볼만한 집이 없을 때도 있었다. 주로 상업가로변 1층에 가게가 있는 상가주택, 한 층에 한 세대씩 있고 마당이 있어서 단독주택의 분위기가 나는 다가구주택을 찾아가 보았다. 오래된 집은 차마 그냥 들어가서 살 수 없을 정도로 낡았고, 최근에 수리된 집은 상대적으로 높은 집세만큼 좋지는 않았다. 단독주택이라고 소개받은 집은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좁은 골목에서 벽을 담장까지 확장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사실상 공동주택이나 다름없는 집들 한가운데에 있었다. 집 안에 들어가지도 않고 그냥 골목을 돌아 나왔다. 서울처럼 집이 많지도 않고, 그중에 마음에 드는 집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인데 아파트가 아닌 집을 찾는 건 훨씬 더 어렵다.
원래 그렇다. 서울에서 집을 구하면서 네 군데 이상 본 적이 없다. 예산에 맞는 집을 맨 처음 보고는 크게 실망한다. 계약기간 동안 내가 아무리 열심히 돈을 모아도 전세금은 항상 그보다 더 많이 올라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집을 보고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처음 집과 비교하게 되고, 세 번째 집을 보면 더 이상 좋은 집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셋 중 하나를 고르게 되는 것이다. 서울을 벗어나면 서울에서보다 더 좋은 집에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처음 세 군데의 집을 보고 나서 완전히 무너졌다. 서울에서와는 달리 세 번 만에 집을 찾지 못하고 이후에 몇 군데 더 봤지만 여기다 싶은 곳은 없었다. 포기가 빠른 나는 이제 낡은 집이 눈에 익고 도시가스가 없어도 살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하고 있다. 버스에서 내려 부동산으로 걸어가면서 마음을 정리한다. 넓고, 층고가 높고, 조용하기만 하다면 다 참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오늘은 꼭 결정을 하고 서울로 돌아가겠다고.
부동산에 도착하니 마침 먼저 온 손님이 있다. 기다리는 동안 사무실 제일 안쪽 벽 화이트보드에 적혀 있는 매물 리스트를 훑어본다. 여기도 서울과 다를 게 없네. 아파트, 주상복합, 오피스텔이 우선이구나. 다음은 상가. 그건 미술거리가 있는 동네답고. 그렇게 나와 상관없는 매물도 하나씩 살펴보는데 그중 하나에 눈이 번쩍 뜨인다.
‘○○식당 건물 3층 주택’
아, 거기! 이 거리에서 제일 멋지게 생긴 가게잖아. 지난 4월에 여기 맨 처음 왔던 날 늦은 점심을 먹었던 그 식당. 이 동네에서 제일 번화한 거리의 식당 위층에 있는 월세 상가주택이라……. 여태 조용한 전셋집만 찾다가 미처 못 봤구나. 번화가라고 해도 서울에 익숙한 나에게는 충분히 조용하고, 인기 없는 상가주택의 꼭대기 층이라 그런지 월세가 저렴하네. 서울에서는 원룸도 얻기 힘든 월세로 30평 가까운 면적을 쓸 수 있다니! 부동산에서 나와 미술거리를 걸어 집을 보러 간다. 식당이 멋진 공간인 것과 그 건물의 3층에 있는 주택이 어떤지는 별개인데도 불구하고 기대가 되네. 이렇게 고즈넉한 분위기의 거리에 있는 집은 어떨까, 층고만 높다면 내 돈을 어느 정도 들여서 고쳐도 좋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고 보니 살 집을 찾겠다며 이 동네에 방문했을 때에는 이렇게 들뜬 기분으로 미술거리를 걸으며 풍경을 살펴본 적이 없구나. 마음이 조급해서 안 보였겠지.
곧 건물 앞에 도착한다. 식당은 처음 보았을 때와 같은 모습이다. 다시 봐도 좋구나. 콩깍지가 씐 것도 기억이 미화된 것도 아니었어. 그런데 전체 건물은 원래 이랬었나. 식당도 작은 간판 하나가 두 개의 커다란 유리창 사이에 있을 뿐 외벽에 별다른 장식이 없는데 위층에는 아예 아무것도 없다. 수평으로 길게 이어진 창은 모두 닫혀있고 유리에는 밖에서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게 처리된 것 같다. 내부 공간의 분위기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이제 3층으로 올라가는 동선을 찾는다. 식당은 길에서 직접 출입하는 별도의 입구가 있고 그 외의 층에 도달하려면 건물 우측에 있는 출입구를 이용해야 한다. 출입구에는 양쪽으로 열리는 문이 둘 다 활짝 열려 있었다. 아무나 드나들 수 있으니 보안이 좀 걱정되는군. 상가건물의 숙명이랄까. 안타깝지만 감점.
출입문 안쪽에 바로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 게 훤히 보인다. 계단의 폭이 넓고 여유 공간이 충분해서 계단실의 면적이 넓은 편이다. 오기 전에 부동산에서 받은 건축물대장에는 건축면적이 30평이라는데 계단실을 빼면 실사용 면적은 26평 정도 될 것 같다. 아, 평이라는 단위를 사용하는 것이 금지된 지 15년이나 되었는데 아직도 ㎡ 단위의 면적을 굳이 3.3058로 나눠서 평으로 인식하고 있다니! ㎡ 단위가 훨씬 직관적이고 정확하다는 걸 알면서도 익숙하다는 이유로 불필요한 연산을 하는 미련한 습성을 반성하면서 계단에 올라선다. 낡아서 깔끔하지는 못하지만 넓은 창 덕분에 밝다. 계단실에서도 밖이 훤히 보이는 건 가산점이네.
걱정 반 의심 반의 심정으로 계단을 오른다. 벽의 페인트가 벗겨지거나 바닥재에 흠이 있는 것 같은 문제들은 노후한 건물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지. 건물주 입장에서는 건물을 보수하는데 목돈을 들이고 그만큼을 임대수익으로 회수할 수 없다면 최대한 손대지 않고 버틸 것이다. 이해한다. 반면 사용자가 일으키는 소음, 쓰레기, 흡연 등의 문제는 참기 힘들다. 다행히 지하에 있다는 디자인 사무실은 굳이 계단을 돌아가서 아래를 내려다봐야 보이는 정도로 있는 듯 없는 듯하고, 2층에 있는 어느 갤러리의 작품 보관소 겸 사무실도 상주하는 사람이 두세 명뿐이라더니 조용하다. 쓰레기도 담배를 피운 흔적도 없다. 계단이 옥상으로 이어지는데 문이 잠겨 있고 여는 일은 없어 보인다. 그러니까 3층 입주자가 아니라면 3층까지 올라올 일은 없겠다. 두 개 층을 오르는 짧은 시간 동안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면서도 마음은 이미 여기로 기울었다. 마침내 3층 주택의 현관 앞에 선다. 더 나은 곳은 없을 거야. 그런데 혹시 모르지. 집 내부에 도저히 참기 어려운 문제가 있을 수도 있으니.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 모르겠다, 봐야 알지. 보고 나서 장단점을 저울질해 보자. 부동산에서 알려준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문을 연다.
집이 비어있으니 나 혼자 가서 봐도 된다고 하기에 그래도 되나 싶었는데, 충분히 그럴 만하다. 아무것도 없고 눈에 보이는 게 전부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천장, 벽, 바닥으로 만들어진 직육면체 모양의 공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집 같지가 않다. 지난 몇 년간 건물주의 아들이 작업실 겸 주거 공간으로 썼다더니 아마도 그때 용도변경을 했나 보다. 건축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원래 사무소 같은 근린생활시설 용도로 만들어져서 오랫동안 사용하다가 최근에 주거생활을 위해 일부분을 고쳤다는 걸 알아볼 것이다.
월세가 저렴한 이유를, 몇 달째 임차인을 찾지 못해 비어 있는 이유를 단번에 알겠다. 건물이 오래된 걸 숨길 수 없는 건 둘째치고 집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26평(도무지 86㎡가 입에 붙지 않아서) 정도 되는 집이라고 하면, 그게 아파트든 오피스텔이든 연립주택이든 다가구주택이든 내부는 다 비슷하게 생겼다. 집값에 따라 층고가 좀 더 높은지 낮은지, 창이 좀 더 큰지 작은지, 마감재나 설비가 비싸고 좋은지 싼 거 대충 썼는지 하는 스펙의 차이가 있을 뿐 기본적인 생김새는 다 거기서 거기다. 그런데 이 집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면서 집의 전체 분위기를 만드는 거실이 원래의 근린생활시설 모습 그대로이다. 흰색 페인트가 칠해진 벽, 가로로 넓은 창과 알루미늄 블라인드, 커튼박스도 반자도 없이 높은 천장에는 온풍기와 에어컨 기능을 겸하는 설비가 붙어 있다. 바닥에 데코타일이라는, 이름은 타일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단단한 장판에 가까운 바닥재가 깔려 있어서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면 영락없이 사무소다. 안쪽에 있는 침실은 사장실이나 회의실, 주방은 탕비실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해 보인다. 26평 정도의 집을 찾는 사람이 여기 와서는 놀라고 실망했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생긴 것뿐 아니라 기능 면에서도 집으로서 한참 부족하다. 일단 냉‧난방이나 취사를 기름과 전기로 해야 한다. 다른 층에서는 안 쓰는 도시가스를 3층에서만 쓰자고 들이는 비용이 아까웠겠지. 그래서 기름보일러를 설치했고, 기름보일러로 난방을 하자니 도시가스에 비해 연료비가 더 많이 들뿐 아니라 바닥에 난방시설을 설치하는 데 꽤 큰돈이 드니까 대신 전기온풍기를 설치했고, 온풍기로는 부족해서 석유난로로 난방을 해야 하는 집이라니. 침실은 그래도 방이니까 신경을 쓴 건지 보통의 집처럼 벽지가 붙어 있고 천장에는 커튼박스가 있는 반자가 있고, 바닥에는 원목마루를 흉내 낸 장판이 깔려있다. 굳이 몰딩도 티 나게 붙어 있고. 붙박이 가구 하나 없는 걸 보면 가구가 거의 필요 없을 정도로 짐이 없었거나 방이 온통 가구로 꽉 찼거나 둘 중의 하나였겠다. 방의 네 벽 중에 하나에는 문이, 두 개에는 창문이 있어서 벽에 붙여 가구를 놓을 데가 마땅치 않은 상황이니 전자가 유력하겠지. 전에 살던 사람이 어지간히 집에, 살림에 관심이 없었나 보다. 주방은 있기만 하면 된다는 듯 식탁 놓을 자리도 없이 싱크대만 조촐하게 있는 것도, 2구짜리 전기레인지뿐인 것도 그러한 추측에 확신을 더한다. 발코니가 없는데 빨래는 어디에 널고 재활용품은 어디에 모아두었던 걸까.
주택으로 용도변경하고 오래 살지는 않은 듯 고친 부분이 비교적 깨끗하지만, 벽지도 장판도 싱크대도 모두 저렴한 셋집에서 보던 것들이다. 세를 놓을 것도 아니고 건물주 아들이 살 건데 왜 그랬을까? 오래 살지 않은 게 이유일까 결과일까? 그리 궁금할 것도 없다. 집에 대해 별 생각이 없고 평생 살 것도 아닌데 돈을 많이 들이기는 아까웠겠지 뭐. 사무실 반 집 반인 이 공간을 본 사람들은 뭐 이런 집을 소개해 줬냐면서 부동산을 원망했을 것이다. 월세가 저렴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면서. 다 알겠는데, 나 역시 이 집이 ‘마이 스위트 홈’으로 그려지지 않는데, 이상하게 나는 여기가 마음에 든다. 좋은 집은 이미 포기했고 그저 넓고, 층고가 높고, 조용하면 좋겠는데 이 집이 딱 그렇기도 하잖아.
무엇보다도 넓은 창이 주는 첫인상이 너무나도 강렬했다. 창문이 없거나 있어도 없는 듯이 가려져 있는, 시간도 날씨도 가늠이 안 되는 공간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서 그런지 나에게는 ‘창 결핍증’이 있다. 그러니 이 집에서 시원하게 뚫린 창을 보고 한눈에 반할 수밖에. 길에 면한 벽의 중간쯤부터 위로 약 1m 정도 높이, 가로로는 6m 남짓하게 벽 전체에 이어져 바깥 풍경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는 창은 감히 꿈도 못 꿔본 거다. 길에 서서 바라보았을 때에는 도무지 내부가 짐작되지 않던 탁한 갈색의 유리창이 안에서 보니 투명하다. 마침 길 건너편에는 유료주차장이 있어서 건물 1층 높이의 작은 관리실, 담장과 차양만 있기 때문에 전망이 아주 좋다. 주차장 뒤편으로는 가끔씩 다가구주택이 불쑥 솟아있지만 그래 봤자 4층이고, 저 멀리 대로변에 있는 높은 건물들은 시야를 가리지도 않고 집안이 들여다보일까 걱정되지도 않는 거리이다.
딱 봐도 저렴해서 선택했을 알루미늄 블라인드는 아마도 햇볕이 불편해서 설치했겠지. 기밀한 시스템창호가 아니라서 바람과 소음이 새고 알루미늄 새시라 겨울에 결로가 생기겠지만 다행히 2중창이다. 두꺼운 외벽의 안쪽과 바깥쪽에 각각 창이 있고 그 사이에 좁은 공간이 있는 형태이다. 그 외에도 이웃 건물과 면하는 양 쪽 벽에도, 구릉지를 깎아서 생긴 옹벽과 마주하는 뒤 쪽 벽에도 폭 1.5m 정도의 창문이 일정 간격으로 군데군데 나 있다. 그러니까 이 집은 창문부자다. 게다가 그 많은 창이 다 2중창이라니. 어느 건물주가 안 그렇겠냐만, 비용절감을 위해 무척이나 노력한 것 같은 건물주가 창문에는 이렇게 인심이 후하다니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창문부자인 공간은 ‘창 결핍증’이 없는 사람이 봐도 매력적이지만 편안하고 아늑한 집을 원한다면 단점이 된다. 탁 트인 전망과 채광, 프라이버시와 보안은 서로 반비례하니까. 게다가 냉‧난방에 취약한 꼭대기 층이니, 더위는 잘 참는다 치고 석유난로와 전기온풍기로 겨울을 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좁은 집에서 도시가스보일러를 틀고 살면서도 어디서 가스가 새는 거 아닌가 싶게 가스요금은 많이 나오고 집은 추웠는데.
집으로서는 결격사유가 너무나 큰데 그래도 여기에 있으면, 여기서 일상의 시간을 보내면 하루하루가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그래, 작업실이면 되겠다.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는 작업실. 작업실이 있는 집을 얼마나 꿈꿔왔던가. 남이 만든 집 중에는 내가 살고 싶은 집이 없다며, 살고 싶은 집의 평면을 그리곤 했잖아. 나 혼자 사는 집이고 거실 대신 작업실이 있는 집이었지. 무슨 작업을 할지 모르겠지만 넓고, 넓은 창이 있고, 넓은 작업대가 있는 작업실. 가끔 가족이나 친구를 초대하면 작업실이 거실이 되고 작업대는 다이닝 테이블로 변신하는 그런 작업실. 주말에 출근하기 싫어서 일거리를 싸 들고 집에 가면 일하다가 자꾸 집안일이 신경 쓰이고 쉽게 늘어지곤 해서 재택근무에 대해 회의적이었는데, 여기는 작업실이 주요 공간이고 집이 딸린 식이라 효율적일 것 같다. 서울살이 내내 시달렸던, 길고 험난한 출퇴근길이 눈앞을 스친다.
모든 과목을 잘하는 모범생처럼 주거에 필요한 모든 기능을 문제없이 수행하는 집을 꿈꿔왔던 내가 이렇게 상가건물 3층에 있는 집 같지 않은 집을 보금자리로 선택할 줄은 몰랐다. 그것도 한눈에 반해서. 이 동네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 도시로 이사 오겠다고 결심하면서 우습게도 어떻게 먹고 살 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일단 집을 구해 살면서 뭘 하면 좋을지 알아보자는 생각이었고, 실제로는 아무 생각이 없는 무모한 결정이었다. 담대하고 확신 있는 척했지만 마음 한구석은 불안이라는 돌덩어리에 무겁게 눌려 있었는데, 당장 수입이 없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막막한 상황에서 저렴한 월세로 집과 작업실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는 합리적인 이유를 대고 마음이 조금 편해져도 될 것 같다. 무슨 작업을 할지 아직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이 공간이 그 작업에 맞는지는 모르지만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무모한 상태이긴 하다만.
아, 그런데 이전에 살던 사람은 여기서 무슨 작업을 했을까? 특별히 설치한 것도 없고 가구마저 전부 치워져 있기 때문에 단서가 없지만, 벽이나 바닥 어디에도 쓸리고 베이고 묻은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 걸로 봐서는 책상이나 책장 정도가 있었을 것 같은데. 사무실처럼. 특별한 설비가 필요 없고 흔적이 남지 않는 작업이 무엇일까? 글을 썼을까? 작가였나? 작업실 겸 주택이었다는 건 부동산중개사가 한 말이니 막상 전 집주인은 ‘사무실’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건축법상 용도가 주택이어도 사무소로 쓸 수 있으니까. 고등학교 때 친구 아버지가 단독주택인 집에서 세무사 업무를 하셨던 기억이 난다. 친구네 집에 갔다가 사무실의 모습을 한 거실이 보고 무척 놀랐었지. 그렇다면 사무실과 작업실의 차이는 무엇인가. 아, 쓸데없는 생각을 뭐 하러 이렇게 상세하게 하고 있는지…….
어쩌면 친구 말이 맞는 것 같다. 내가 바라는 집을 찾을 게 아니라 적당히 골라서 거기에 맞춰 살면 된다는. 몇 년 전 친구에게 그 말을 들었던 시절에 이 집을 봤다면 이건 집이 아니라고 했을 것 같다. 계단을 올라오다가 그냥 돌아서 나갔을 가능성도 높다. 집 앞에 도착할 때까지 혹시나 뒤에 누가 있는지 계속 돌아보는 것도, 추위를 견디느라 집안에서 두툼한 점퍼를 입고 마스크를 쓰고 지내는 것도, 눈에 띄지 않는 벽에 결로와 곰팡이가 생기지 않았는지 매일 확인하는 것도 지긋지긋했으니. 그런데 이제 ‘침실이 딸린 작업실’을 선택했으니 그 공간에 맞춰 잘 살아야겠다. 인연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언제 어떤 상황에서 만나는가에 달려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제 그 인연이 사람과 사람 사이뿐 아니라 사람과 공간 사이에도 적용된다고 믿게 되었다.
‘인연이네, 우리.’
이 공간과 나의 인연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1층의 식당일까, 그전에 이 동네, 이 도시일까. 어쩜 그보다 더 전에 퇴사를 결정하지 않았으면 이 도시에 안 왔을 테니 그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나. 그런데 왜 회사를 그만두려고 했더라…….
밖으로 나와 부동산으로 향하다가 뒤돌아본다. 이제야 건물 출입구 앞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건물보다 훨씬 높은 키에 풍성한 가지를 넓게 퍼뜨리고 있는 게 보인다. 그 나무가 이팝나무라는 건 알아보지 못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