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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디 리 Oct 09. 2024

산이 자장가를 불러준 날

33. 광교산 (2022.06.25 일)

산에 가자고 노래를 불렀더니 친구가 따라왔다. 무려 그녀의 첫 산행! 이날 온도는 27도, 습도는 85%. 덥고 습하니까 가만히 서있어도 금방 지칠 수밖에 없는데 도파민(친구를 실망시킬 순 없어!)을 연료 삼아 3시간 15분 동안 산을 탔다.


형제봉으로 향하는 길에 스크류바 2개(4,000원), 형제봉에서 얼음물 2병(5,000원)을 샀다. 산에서 돈을 만원 가까이 쓴 건 처음이었는데 얼굴이 익을 만큼 더웠기 때문에 전혀 아깝지 않았다. 초보를 데리고 갔으면서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형제봉을 지나 비루봉까지 걸어갔다. 비로봉에는 정상석이 없어서 다소 실망했지만, 맨들한 돌에 앉아 참외를 해치우곤 시루봉으로 향했다. 


#그녀와의 첫 산행, 신난다!


시루봉 도착 20분 전부터 친구가 '어떻게 걷고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이건 마치 핸드폰 게임을 하다가 '어, 내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지?' 의식하는 것과 똑같은 거야. 그럴수록 멀리 보고 아무 생각하지 마! 알겠지?'라고 중얼거렸다. 그런 나도 어떻게 걷고 있는지 모르는 건 매한가지였다.


초행길이라 힘들 수 있는 최단 코스가 아닌 완만한 코스를 골라 반딧불이 화장실에서 시작했는데, 잘못된 선택이었던 것 같다. 내려갈 때는 최단길을 선택해서 30분 만에 땅을 찍었다. 급경사라 무릎이 잔뜩 갈려서 시큰거렸다. 등산안내소에 도착해서 화장실에 갔다가 손을 씻고 있는 택시 기사님을 붙잡아서 택시를 탔다. 시작점인 반딧불이 화장실까지 걸어서 적어도 1시간은 걸렸을 거리였다. 


택시 안에서 미안한 마음에 '인왕산 갈걸..' 후회했지만 고된 산행을 후회로 얼룩지게 하고 싶지 않아서 입 밖으로 소리 내지 않았다. 난이도 중하 산행으로 시작했다가 난이도 상상으로 마무리한 광교산... 친구는 집에 가자마자 욕조에 물을 받아서 몸을 풀었다고 한다. 오랜만에 아주 일찍 침대에 누워 뒤척이지 않고 깊게 잠들었다고 하니 어쩌면 성공적인 매운맛 산행이었을지도.


#3시간 15분 후 시작 지점의 풍경


⛰ 궁금한 분을 위한 광교산 요약

• 산행 일자 : 2022.06.25 일
• 높이 : 582m
• 거리 : 8.6km
• 코스 : 반딧불이 주차장 - 형제봉 - 비루봉 - 시루봉 - 등산안내소 - 반딧불이 주차장
• 시간 : 3시간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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