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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작가 윤효재 Jul 06. 2024

청소년과 다수 철없는 어른?을 위한 21세기 전래 동화

토끼전 제2화

그때 뒤에서 천둥 같은 소리가 났다.

다다다다다!!


멧돼지 가족이 다시 등장한 것이다.

“아까 그 멧돼지다! 빨리 달려!” 거북 재상은 드리블 악몽이 되살아났다.

“저도 저놈들 때문에 몇 번 럭비공이 되었지요. 이젠 당하지 않을 겁니다. 꽉 잡으세요!” 자라도 손잡이를 꽉 잡고 자세를 낮췄다.

친척 자라는 능숙한 솜씨로 좁은 오솔길을 달렸다. 나무들을 요리조리 피해 갔다. 점점 멧돼지 가족을 유인했다. 바로 뒤에는 멧돼지 아빠가 킁킁거리며 가까이 따라붙었다. 사나운 뿔을 앞세워 들이받을 듯이 다가오고 있었다.

“쿠렁! 쿠렁!” 멧돼지는 비염 걸린 것처럼 거친 숨을 내뱉으며 쫓아왔다.

“좀 더 빨리!!” 거북 재상은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급좌회전할 테니 꽉 잡으세요!” 그리고 자라는 멀리 앞을 보며 외쳤다. “다들 준비해!”

저기 앞 오솔길 양쪽에 큰 나무가 있었고, 나무 뒤로 자라들이 빼꼼히 내다보고 있었다. 쿠우우웅! 멧돼지 가족은 며칠 굶주렸는지 큰 소리를 뿜으며 바짝 다가왔다. 자라는 좌회전하기 위해 약간 속도를 늦추더니 바로 급좌회전을 했다.

끼이익!!

멧돼지 가족도 다 같이 급좌회전을 하는 순간!

나무 뒤의 자라들이 양쪽에서 밧줄을 힘껏 당겼다. 바닥에 있던 밧줄이 팽팽해지며 아빠 멧돼지 다리를 걸었다.

우당탕탕탕!!

멧돼지 가족은 한꺼번에 뒤엉켜 엎치락뒤치락 나뒹굴었다.

거북 재상은 뒤를 돌아보며 통쾌해했다.

“아하하하하! 저 뚱땡이 가족, 낙법이 엉망이군.” 자라도 입을 크게 벌려 비웃었다.

아빠 멧돼지는 긴 코를 흙바닥에 처박아 코와 입에 흙이 잔뜩 들어갔다.

“키잉! 키잉! 카악! 카악!” 흙을 내뱉는 소리가 이번엔 축농증에 걸린 듯했다.

“킹! 카악! 킹! 카! 킹! 카!”

“킹카가 아니고 퀸카다, 무식한 멧돼지야! (여자)아이들 팬한테 어쩌려고 그래! 아하하하!” 자라는 또 한 번 크게 비웃었다.

자라는 속도를 늦춰 달리다 드디어 풀을 뜯고 있는 토끼를 발견했다.

“다 왔어요.” 자라는 거북 재상을 내려 주고는 “다음엔 용궁 투어 꼭 구경시켜 주세요.” 하며 킥보드를 타고 휙 가 버렸다.

거북 재상은 풀 뜯는 토끼 쪽으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토돌이였다. 토돌이는 느려 터진 거북 재상을 보자 속이 터져 껑충껑충 달려왔다. 그러고는 거북 재상 바로 앞에 섰다.

“축지법을 연마하셨나 봐요? 토끼님.” 거북 재상은 고개를 들어 한참 위로 쳐다보았다.

“슬로우비디오를 연마하셨나 봐요? 거북님.” 토돌이는 고개를 아래로 한참 내리깔며 쳐다보았다.

거북 재상은 듣기 거북했다. 자존심은 잠시 버려두고 시나리오대로 대사를 생각했다.

“숲속의 왕 맞으시죠?” 거북 재상은 고개를 조아렸다.

“숲속의 왕…? 하기야 호랑이가 죽었으니 비만 토끼가 왕 맞겠네요. 그놈 때문에 난 아싸로 살고 있지요.” 토돌이는 빨간 눈으로 거북 재상을 쳐다보았다.

“곧 용궁 투어 이벤트가 있습니다. 육지와 자매결연을 하여 토끼님을 초대하려고 합니다.”

“저를요?” 토돌이는 잘못 들었나 싶어 귀를 쫑긋했다.

“숲속의 왕이시니 일빠로 초대하는 겁니다.” 거북 재상은 뒤를 돌아 등을 보여 주었다. “여기 최고급 등딱지 좌석이 있지요.” 얼른 타라는 폼을 잡았다.

“잔치하면 용궁은 해산물밖에 없을 텐데. 제 입맛엔 영 안 맞아서….” 토끼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토끼님을 위해 최고급 토끼풀 요리와 이탈리아산 까르보나라를 준비했습니다.”

혼자 살아온 토돌이는 의심이 많았다. 그래서 알지도 못하는 용궁 이벤트에 선뜻 응하기가 조심스러웠다.

“근데 거북이는 느리다고 들었는데 용궁까지 가다가 저세상 먼저 가겠는데요?” 토돌이는 거북 재상 몸을 훑어봤다. 딱 봐도 1박 2일이나 걸릴 것 같았다.

“육지에서는 느리지만 바다는 헤엄치면 엄청 빠르지요. 박태환, 황선우도 저한테 안되지요.” 거북 재상은 네 발을 땅에서 저으며 자유형으로 휘젓는 폼을 보여 주었다.

그래도 토돌이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러면 저와 내기를 해서 이기면 따라가지요.”

“내기요?” 거북 재상 목이 쑥 삐져나왔다.

거북 재상은 걱정이 되었다. 달리기 시합이라도 하면 큰일인 것이다.

“당연 토끼와 거북이 하면 달리기 시합이지요.” 토돌이는 고개와 귀를 뻣뻣이 들고는 거북 재상의 눈치를 살폈다.

거북 재상 눈의 초점이 흔들렸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왜요? 저 같은 귀하신 몸을 그냥 데려갈 순 없지요. 다른 나라에서는 거북이가 이겼잖아요?” 토돌이는 다시 거북 재상의 얼굴을 슬쩍 살폈다.

거북은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좋습니다. 하지요. 급해서 빨리 끝내야 하니 저기 비탈진 언덕에서 합시다. 제 스케줄이 꽉 차서 다른 동물도 데리러 가야 합니다.”

“언덕이요…? 아하! 우리 토끼가 뒷다리가 길고 앞다리가 짧아서 내리막길에서는 잘 넘어질 거라 생각했지요? 하지만 전 상관없어요. 거북이가 빨라 봤자지요. 하하!!” 토돌이는 큰 앞니 두 개를 내보이며 웃었다.

“아니, 저… 그게 아니고요….” 거북 재상은 속마음이 들킨 척 표정을 지었다.

“우리 토끼는 낮잠만 안 자면 무조건 이기죠. 자, 빨리 언덕으로 렛츠 고!”

언덕을 올라가는 것 자체가 거북 재상에겐 힘이 들었다. 이미 헉헉거리며 힘이 다 빠졌다.

거북 재상은 언덕 아래 코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쳐다보며 머릿속으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음… 경사는 45도, 바람은 서풍, 중간 작은 바위 둘, 맨 밑에 큰 바위 하나, 오케이.’

“그럼 저기 밑에 큰 바위까지 먼저 도착하면 이기는 걸로 하지요. 전동 킥보드 타고 오기 없기!”

“좋습니다.” 거북 재상은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했다.

“하나! 둘! 셋! 출바알!” 토돌이가 쌩! 하고 먼저 출발했다.

토돌이는 뒷다리가 길어서 불편했지만 거북이한테는 충분히 이긴다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토돌이가 훨씬 앞섰다.

하지만 거북 재상의 꾀가 한 수 위였다. 목과 네 다리를 몸속에 쏙 집어넣었다. 바로 비탈진 언덕으로 굴러 내려갔다. 럭비공이 되니 좋은 것도 있었다.

투둑툭툭툭!

처음엔 몇 번 통통 튕기며 굴러가기 시작했다.

다다다다다!

내려갈수록 가속도가 붙어 금방 토돌이 뒤를 쫓아왔다.

‘전화위복이구나!’

슉, 휭!!

“잉? 방금 뭔가 지나간 것 같은데?” 토돌이는 알아채지 못했다.

언덕에 작은 바위가 뽑혀서 굴러가는 줄 알았다. 럭비공은 데굴데굴 굴러가더니 맨 아래 큰 바위에 퍽! 부딪히고는 섰다. 이번엔 머릿속에 별이 폭죽을 터뜨리고 있었다. 거북 재상의 얼굴과 네 발이 쏙 나왔다.

“이런!! 저런 기막힌 작전이⋯.” 그제야 토돌이는 알아차렸다.

안 그래도 붉은 눈이 더욱 붉어졌다. 뒤따라 도착한 토돌이는 어이없는 미소만 지었다.

“거북님의 작전에 내가 깜빡 속았군요. 내 무덤을 내가 파 버렸네요.” 토돌이는 거북 재상의 작전에 감탄했다.

“어쨌든 내가 이겼으니 용궁으로 출바알!!”     

용궁으로 오면서 토돌이는 처음 보는 바닷속 풍경에 눈을 떼지 못했다. 많은 환영객들이 막대풍선으로 박수 치고 있었다. 수산물 시장에 온 듯했다. 순간 비린내에 자신도 모르게 코를 막았다.

현수막에는 “축! 환영! 갓토끼님! 폼 미쳤다!!”라고 걸려 있었다. 문어 재상이 맨 앞에서 여덟 개 다리를 흔들며 격하게 환영했다.

“다른 동물들도 오고 있으니 휴게실로 안내해 드리지요. 눈이 빨간 걸 보니 피곤하신가 보군요. 얼른 주무시지요.” 문어 재상은 서둘렀다.

“어… 좀 더 둘러보고요.” 아직 토돌이는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한편 오징어 재상은 여러 재상들을 불러 놓고 한마디 했다.

“저 토끼란 놈은 의심이 많고 꾀가 많다고 하니 실수가 없도록 지상 최대의 작전을 실행하시오. 또한 몸이 아주 날렵하니 먼저 잠을 재운 다음 밧줄로 꽁꽁 묶어야 할 것이오. 절대 실수가 있어선 아니 되오!”     

휴게실은 편안했다. 곧 문어 재상이 주전자에 담긴 차를 가져왔다. 그 뒤로 복어 재상이 볼을 잔뜩 부풀린 채 따라 들어왔다.

“이 차를 마시면 잠이 잘 오실 겁니다. 한잔 하시지요.” 문어 재상이 찻잔에 차를 따랐다. “온다고 피곤하실 테니 바로 푹 주무시고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용궁 투어 하시면 됩니다. 자! 원샷!” 문어 재상은 긴 팔로 차를 토돌이 쪽으로 슬쩍 밀었다.

“난 아직 잠이 안 오는데 자꾸 잠을 자라고 하니 참….” 토돌이는 찻잔 속을 유심히 보고는 코를 벌렁거리며 향기도 맡았다. 그리고 곁눈질로 쳐다보았다.

“왜요? 독이라도 넣었을까 봐요? 그럼 제가 원샷하지요.” 곧바로 복어 재상은 찻잔을 집어 들더니 목구멍으로 털어 넣었다. 돌발적인 행동에 토돌이도 멈칫했다. 문어 재상은 찻잔만 유심히 살펴보았다.

“흑!!” 갑자기 복어 재상은 지느러미로 목을 감싸며 문어 재상을 쳐다보았다.

‘내 예상대로 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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